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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에 대하여..>


"현실과 발언"창립선언문

삶과 현실과 미술로서의 발언 우리는 오늘날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기존 미술형태에 대하여 커다란 불만과 회의를 품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기나름의 모순에 빠져 방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의 자각은 우 리들로 하여금 미술이란 진실

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 미술가에게 주어진 사명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그것을 어떻게 다해 나갈 것인가 등등의 원초적이고

도 본질적인 물음으로 다시 되돌아가 게 하고 있으며 새로운 방향을 차자 보려는 의욕을 다지게 합니다. 돌아보건대, 기존의 미

술은 보수적이고 전통 있는 것이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이든, 유한층 의 속물적인 취향에 아첨하고 있거나 또는 밖으로 부

터 예술공간을 차단하여 고답적인 관념의 유 희를 고집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와 이웃의 현실을 소외 격리시켜 왔고, 심지어는

고립된 개인의 내면적 진실조차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 왔습니다.그리고 소위 화단이라는 것은 예술적 이념이나 성실성과는 거

리가 먼 이권과 세력다툼으로 어지럽혀져왔으며,많은 미술인들은 이러한 파벌싸움 에 알게 모르게 가담함으로써 스스로를 욕

되게 하고, 미술교육을 포함한 전반적 미술 풍토를 오 염시키는 데 한몫을 거들어 왔습니다. 우리들 자신들 대부분 이제까지 각

자 외롭게 고민하는 것만이 최선의 자세인 듯 생각해 왔으며, 동료들과의 만남에서까지 다만 편의적이고 습관적인 데서 벗어나

지 못함으로써 공동적인 문제해 결과 발전의 가능성을 포기해 버리려 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

해 보자는 것이 여기에 함께 모인 첫번째 의의입니다. 나아 가 미술의 참되고 적극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참신하고도 굳건한 조

형이념을 형성하기 위한 공동 의 의식의 심화와 연대감을 조성함으로써 새시대를 향한 예술의 전개에 창조적인 역할을 발휘하

겠다는 뜻으로 우리는 이 모임의 의지를 다짐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모임에서 내세우는'현실'과 '발언'이라는 명제는 우리가 앞

으로 모색해야 할 방향에 대 한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함축하고 있다고 봅니다.

1.현실이란 무엇인가? 미술가에 있어서 현실은 예술 내부적 수렴으로 끝나는가, 혹은 예술 외부적 충전(充電)의 절실함으로 확

대되는가? 이문제로부터 현실의 의미에 대한 재검토 및 미술가의 의식과 현실의 만남의 문제.

2.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현실인식의 각도와 비판의식의 심화, 자기에 뿌리내리고 있 는 현실의 통찰로부터 이웃의 현실

, 시대적 현실, 장소적 현실과의 관계,소외된 인간의 회복 및 미래의 긍정적 현실에 대한 희망

3.발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언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누가 발언자이며, 무엇을 향한 발언인가?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

한 발언인가? 발언자와 그발언을 수용하는 사람들과의 관 계는 어떤 것언가?

4.발언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어디서,어떤 효율성의 기대아래 이뤄져야 하는가? 발언 방식의 창의성, 기존의 표현 및

수용방식의 비판적 극복,현실과 발언과의 적합성과 상호작용. 이러한 물음들의 '현실과 발언'이라는 명제 안에서 끊임없이 추

구되어야 한다는 전재 아래, 우리 의 모임은 보다 폭넓은 대화를 통해 각자의 창의성이 모아져 공동적 이념의 형성으로 발전하

리라 믿습니다. 이와 같은 취지에 기꺼이 찬동하는 동인들의 모임을 만들고자 합니다.

1979년 12월 '현실과 발언' 발기인 일동

< 민중미술 15년展 >

<1>전시개요:1994년 2월5일부터 3월16일까지 열렸던 '민중미술15년展'은 과천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3백여명의 개인및 집

단이 참가하여 4백여점에이르는 작품이 1600평 의 전시장을 가득 메웠던 국립현대미술관 사상 최대규모의 전시회로 기록되고

있다. 이전시회는 미술전문지뿐 아니라 각 신문사및 K.B.S.등 방송매체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일반인들에도 상당한 관

심을 갖게 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 정도로 지금껏 제도권 미술 밖에서 태어나 냉대와 탄압을 받으며 성장해 왔던

민중미 술이 국립 현대미술관의 초대로 기획되어진 것은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평가 되어지고 있다.

<2>민중의 개념:민중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민중의 개념을 살펴 보기로 한다. 미술평론가 원동석은 민중은 살아있는 사

람들의 실체이므로 그 개념을 규정하려는 노력 역시 구구한 해석과 논의의 다양성을 불러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학문적

필요성과 함께 학문의 한계를 벗어나 있음을 전제하면서 몇몇의 이론가들을 인용하 여 그 개념에 접근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백낙청은 민중,민중의식을 인간해방운동의 주체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처한 구체적 현실과 역사적 기능에 대한 과학

적 해명이 불가피하다는 논지를 펼친다.

*비판->그러나 중요한 것은 학자들의 시선에 비친 민중이 아니라 민중 자신의 삶이 드러내는 힘과 지향성,즉 실천과 직결되는

살아있는 활동의 발현이라고 말하고 학문 적 탐색은 보조기능이다

* 한완상은 민중은 "정치적 통치수단과 경제적 생산수단과 사회 문화적 군림수단으 로부터 소외"된 존재로서 지배집단과의 관

계에서 파악된다고 보고 현대사회에서 주 체성을 갖지 못하도록 무기력하게 객체화된 민중은 사회학적으로 대중(mass)이라

고 부른다.그러므로 참된 민중은 깨어있고 의식화된 시민이며 자기권리를 주장할 줄 아 는 공중(public)이기도 하다는 것이며

나아가 지식인도 민중의식을 깨우치는 동참자 로서 합류한다면 민중자신의 모습이 된다고 정의 했다.

*비판->그러나 민중은 깨어있기도 하고 잠자기도 한다.그리고 지배, 피지배의 관계 는 절대적, 영구적인 것은 아니므로 민중은

깨어있음의 소중함과 지배당하지 않는 삶의 가치를 제기함에 의해서 살아있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 박현채의 민중개념은 물질적 소유관계에 의한 층차, 즉 자본가층을 제외한 생산 계층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지식층을 포함하

고 있다.

*비판->이것은 경제학적 계층개념의 구분으로 눌림을 자각하는 심리적 통찰은 간과 하고 있다.예를 들어 대학생층은 민중의식

실천의 연대감을 일으키는 가교적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것 처럼 민중은 신분적 계층구별로 고정될 수 없는 가변성,잠정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와같이 원동석은 민중의 개념을 여러 학문적 접근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개념 을 규정하려는 노력 자체가

학문적 한계를 넘는것 임을 인식하여 '생동하는 실체로 서의 민중'의 개념으로 비판적으로 정의하였다.

<3> '80년대 민중미술의 이념과 흐름 -(현상과 인식 1988.여름호 곽대원의 글중발췌)

80년대 들어 그동안 현실과 고립돼 있었던 미술계는 점차 젊은 세대들에 의하여 시대반영의 표현주의 물결이 흐른다. 80년대

중반까지 '새로운 미술운동'이라고 불린 것처럼 미술의 형식과 내용은 전면 적으로 재검토 되면서 말 그대로 민중미술의 대중

화 작업이 전개된다.그것은 지금까지 전개되었던 기존의 미술계에대한 강력한 대항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운동의

출발은 미술의 표현과 창작을 제한하려 하는 외부와의 싸움을 의미한다. 미술운동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은 곧 미술의 사회적

존재 확인과 그실천성을 담보하려는 데 큰 목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80년대 미술은 현실의 사회적 모순구조를 반

영하 려는 노력을 보이면서 구체적으로 미술

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 그리고 시대현실의 삶 이란 무엇이고 이에 대한 미술의 서술적 형태는 어떻게 창작되어져야 하는가 하

는 지극히 당연한 관점을 갖고 고민하였다. 대체로 80년대 미술의 현실참여로 부각되는 집단으로는 우선 '현실과 발언'이라는

동인을 꼽는다. 그것은 이들의 취지문에서 80년대 미술의 성격을 어느정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집단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한 현실주의 미학을 전면에 걸고 현실이란 미술가에 있어서 무엇인가,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발언이란

무 엇을 의미하고 발언의 방식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이전의 미술가들에게는 보지 못했던 적극적 현실의식을 발견한다. 창립 전

부터 미술회관 측의 전시 취소를 받았던 '현발'은 이후 80년대 젊은 작가들 과 함께 민중미술의 결정체를 만들어나간다. 제 5공

화국 들어 당국은 문화예술에 있어 소위 의식화 경향이 있음을 주목한다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 그중에 김경인(인하대 교수),

임옥상(전주대 교수), 신경호(전남 대 교수), 강광(인천대 교수), 홍성담(화가) 등 5인을 불온작가로 규정, 이들의 작품 을 압수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계에 나타난 새로운 움직임은 점차 현실에 있어서 미술인이 가져야 할 사명가적 입장을 강조하면서

미술의 주체적 인식을 다져나간다. 그리하여 82년부터 미술계의 흐름은 기존 미술계의 작가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젊은 작 가들

이 중심이 된 수많은 전시회가 나타난다. 80년대 초기부터 82년까지 살펴보면 '현실과 발언전'(80), '홍성담 개인전'(80), '이철

수 판화전'(82), '신학철 개인전'(82), '현실과 발언 테마전-행복의 모습'(82), '문영태 판화전'(82), '임술년전'(82), '화가.조각

가 19판화전'(82), '82년 문제작가 작품전'(82) 등이 기존 미술의 조형방식과 다른 전시성격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흐름 은 기존

미술계에서 조금씩 변화되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82년에 가서 다 시 관념적 작업으로 되돌아가버린다. 유홍준은

82년 1월 4일부터 '한국현대미술 모색 전'이라는 4부에 걸쳐 기획된 전시를 보고 새로운 미술운동의 작가와 70년대식 실험미

술경향이 혼합된 대전시였다고 평가하면서 이후 이들은 다시 82년에 '서울다큐멘전', '제1회 젊은 의식전', '상식.감수성, 또는

예감전',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 '한 국현대미술 80년대 조망전', '청년작가 13인전' 등의 기획전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관

념성을 우려하였는데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전시회 제목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기존 조형질서를 거부한 다음에 찾아오는

혼미스러운 양상들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82년에 나타난 이와 같은 경향은 그동안 경직구조로 일관되어 왔던 미술계의 전환기

적 변화를 드러내 주었다. 이러한 양상은 85년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차츰 민중 미술이 명확한 성격으로나타나는데 미술그룹은

'두렁', '광주자유미술인회', '시대정 신', '서울미술공동체', '실천', '임술년', '현실과 발언'의 역할이 컸다. 84년에 들어서면 민

중미술의 대중적 정착작업이 벌어지는데 당국의 유화국면으로 각 민중문화단체가 만들어지면서 이들과 연대하여 사회참여의

미술이 확산된다. 그리하여 미술계 내부에 있었던 막연한 현실관은 점차 현실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문 제를 심화시키면서 삶을

주제로 한 전시가 나타난다. 현실로부터 소외된 미술과 삶을 창작과 수용의 문제로서 다룬 '삶의 미술전'(1948. 6. 5 - 12)이 그

것이다. '삶의 미 술전'은 젊은 작가 1백 5명이 아랍미술관, 관훈미술관, 제 3미술관 등 세 곳에서 전시 를 갖고 80년대 진보적

미술운동의 몫을 했던 소집단의 작가들의 총합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다소 자유주의적 요소가 보인다. 예컨대 취지에 나

와있는 '개인의 자 유로운 삶과 공동체 삶의 조화를 꾀하는 총체적 삶의 맥락속에 미술을 정립한다'는 말 은 미술이 그렇게 하

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점을 밝히 지 않은 전시형태가 대대적인 연합성만을 가질 뿐이었다. 따

라서 이 전시회는 80년대 중반에서 확인한 작가와 소집단 미술운동의 연합체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은 전시는 84년 8월의 '해

방 40년 역사전'이 열리면서 우리나라 전반의 역사적 삶을 더듬어 보는 데, '삶의 미술전'이 창작과 수용의 문제를 갖고 현실의

소통으로서 삶의 문제를 다루 었다면 '해방 40년 역사전'은 미술운동의 조직적 성격으로 4개월간 지역전시를 통하여 민중미술

의 인식을 깨우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85년 벽두에는 '서울미술공동체'가 창립돼 2월 8일부터 17일까지 열흘간의 전시를

통하여 민중미술의 대중소통전시를 기획한다. 이 전시는 주로 젊은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기획되었는데 화가, 평론가, 민속연

행인 등과 함께 대단위 프로그램을 갖고 작품 판매전을 갖는다. 이 전시는 85년 1월 12일 선거기간에 개최됨으로써 풍요로운

미술 잔치를 연상, 관객과 작가가 함께 어울려 전시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기도 했다. 85년에 들어서는 민중미술이 새로운 전

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해가 된다. 즉 당국의 공권력에 의하여 미술전시가 저지되는데 1985년 7월 13일부터 아랍미술관에서 개

최된 '20대의 힘전'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원홍 문공부장관의 불순한 문화예술경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7월 20일 경주발언과

함께 같은 날 종로 경찰서는 아랍미술관에서 전 시중인 '20대의 힘전' 전시장에 난입하여 36점의 작품을 강제 철거하면서 다음

날 항의 하는 작가 19명을 연행한다. 5명의 작가를 입건한 이 사태는 곧 여론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면서 민중미술 찬반의 <조선

일보> 지상토론까지 전개되는데 당국의 수사초점은 당시 삼민투와의 연계사실이었다. 이 문제가 의외로 확대되어 여론의 비판

을 받은 당 국은 조사를 다시 축소하는 촌극을 빚기도 하는데 압수된 작품을 살펴보면 광주 사태 와 군사쿠대타로 정권을 잡은

제 5공화국의 실체, 그리고 해고 노동자와 임투문제, 노 동자 연대투쟁 노조탄압 등을 다루었다. 이 사태 이후 민중미술을 전개

한 작가들은 미술운동의 조직적 대응방식과 민중미술 의 미술가 대중조직의 필요성을 논의하면서 1985년 11월 22일 미술가와

평론가 1백 50 여명이 모여 '민족미술협의회'를 발족시킨다. 이것은 분명 해방이후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변화였으며 80년대

미술운동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려는 민중미술이었음이 확 인되었다. 민족미술협의회의 출범 이후 미술은 뚜렷하게 분단현실

의 모순구조를 표현하면서 자 주적이고 민족적인 미술형식을 건설하는 실천력을 꾀한다. 해마다 8월이 되면 '민족통 일과 민중

해방전'을 주최, 이러한 몫을 하여 나가는데 87년에는 당국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 박종철군 추모 '반고문전'에 대한 평가는 접

어두더라도 해방이후 미술인들이 시국현실에 대하여 처음으로 양심선언적인 전시회를 가졌다는 데서 80년대 미술의 성 과로

남는다. 1987년 9월 제주에서 전시중이던 민미협 주최 '민족통일과 민중해방 큰 그림전'의 작품 일부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

하여 작가를 구속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국은 <백두산 산자락 아래>라는 작품에서 진달래가 이어지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

로 노동 자와 농민이 낫으로 성조기를 찟고 불태우는 모습을 민중봉기에 의한 북한의 대남통일 전략과 일치한다하여 작가인 전

정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검사구형 징 역 3년, 자격정지 3년), 이에다 화가에게 주는 징벌인 자격정지 2년까지

구형하였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재판과정에서 미술표현과 창작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면서 진달래가 북한의 국화냐 아

니냐하는 이적표현들에 대한 쟁점이 벌어져 결국 진달래는 북한의 국화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였다. 아뭏든 87년도의

민중미술은 유례없는 당국의 탄압을 받는데 민미협 만화분과위원장 인 손기환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당국에 의해 민미협

은 가장 경계해야 할 주요불 순단체로 지목되어 안기부, 문공부에 명단이 오른다. 민중미술은 87년에 들어서 가장 지배계급의

본질을 폭로하는데 앞장선다. 6월 민주 화투쟁 때 급증한 대형 걸개그림이 그것이다. 이한열군 영결식에 나타난 <이한열 부 활

도>(최민화 작)를 비롯하여 <해방의 햇새벽이 떠오를 때까지 하나되어 나아가세>(여 성그림패 '둥지'), <6월 항쟁도> <분단인>

<들춤>(최병수 작), <민족통일과 민족해방 도> <민족통일염원도>(최민화 작), <노동해방 만세도>(민미협 걸개그림패), 이 밖에

미술교사들이 제작하여 교육민주화 토론회 때 사용한 <교육민주화는 우리 손으로>(홍 선웅, 정진석, 박상대 작) 등의 걸개그림

은 현장에 나부낌으로써 대중정치집회의 분위 기를 북돋워 주기도 하였다. 한편 87년과 88년엔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에 관한

민주열 사들의 분신, 혹은 투신 자살이 많았는데 미술인들은 즉각적으로 이들의 영정을 제작 하여 <이석규 열사도> 혹은 <최덕

수 열사도> 등 고인의 죽음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면 서 대형 걸개그림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맺음말 지금까지의 한국 미술계를

간략히 훑어보면 80년대 미술의 특수성은 상당히 돋보인 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 출발부터 왜곡

되어 온 미술관 념은 아직도 제도권 일각에서 근대미술의 본질을 정당한 예술적 가치라고 믿고 있는 미술인들이 득실대고 있는

것을 볼 때 심히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체제미술이라고 하여 그것이 전부 잘못된 미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 만 그동안 지배층의 고급문화로만 안주하여 왔던 체제미술이 현실에 참여하고 표현하 는 것은 잘못된 미술관이라 생각하고

교육시키는 엄청난 사실 자체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미술계에서는 80년대의 민중미술을 사회주의 이데

올로기의 수단적 산물 혹은 대중선전 선동의 시각물에 불과하다고 몰아붙이지만 이에대한 반론은 지면상의 제한으 로 각설하

더라도 이들이 언제 제대로 된 미술을 표현하면서 지난날의 우리 현실을 보 여 준 것이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이제 한국 미술은 몇몇 작가나 이론가에게 맡겨질 것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으 로 새롭게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 < 현상과 인

식 > 1988. 여름호

'민족미술협의회' 창립선언문

민족미술협의회 오늘의 민족미술은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공동체적 삶의 실천에 동참하면서 예술 문화의 발전에 참답게 기

여하는 창의적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에 서서 민족미술이 요구하는 과제를 알고 있는 우리는 뜻

을 같이하여 이 자리 에 모였다. 이에 민족미술을 지향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창조와 수용의 공감 영역을 실천하고 확산하려는

의지를 널리 표명한다. 우리는 서로 합심 협력하여 우리 삶의 유대관계를 드높여 예술 문화에 관여되는 모든 권익과 복지를 도

모하고 정진하는 단체 로서 민족미술협의회를 창립하기로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협의회의 결성이 미술문화에 새로운 장을 여는 길임을 자부할 때, 해방 이후 제도미술권이 빌려온 갖가

지 억압적이고 장애적인 요인을 극복하여 민주적 삶에 기여할 것을 믿으며 이를 다짐한다. 돌이켜보면 제도미술은 민족의 분단

된 현실 속에서 분열, 갈등, 모순이 심화되어 있 는 삶에 대하여 필연적인 자각의식을 기피하여 왔으며, 이를 해방하려는 모든

진지한 노력을 오히려 방해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우선 역사의 눈으로 훑어보더라도, 오 늘의 제도미술은 민족사의 쓰라린

수난이었던 일제시대의 악랄한 식민제도를 답습하여 다시 재탕한 산물에 불과하였다. 일제의 권력이 비호하는 제도미술 속에

서 출세한 미 술인들이 침략전쟁의 하수인 노릇을 하였던 파렴치한 행위를 추호의 반성은 커녕, 해 방 후에는 중추적 세력으로

남아 화단을 장악하고 권력의 현실에 영합하는 제도적 양 식의 형성과 미술교육의 방향을 오도하고 오염시켰다. 그리하여 제도

미술은 진정한 삶과 미술의 기능을 분리하여 삶의 소외와 수용의 단절 을 극대화시켰으며 비판의식을 거세한 현실의 미화작업

을 순수주의, 심미주의, 예술지 상주의, 현대주의 등 온갖 형식미학의 논리로써 자기 보호의 틀을 만들기에 급급하였 다. 또한

전통미술의 본질을 왜곡하여 민중이 담당한 역할을 무시하였고 서양미술의 추세를 기준삼아 이의 추종방식이 전통과 현대의

결합인 것처럼 선전하는 정예주의, 외세주의 발상을 풍미하게 하였다. 온갖 형식주의가 난무하는 화단의 폐쇄적 풍토 위 에서

미술인구는 증가하여도 모순의 혼란을 헤쳐나가려는 돌파구가 막혀 있는 상태이 다. 다행히 80년대에 들어서서 이같은 제도미

술의 한계를 비판하고 미술 본래의 기능을 되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열기에 찬 운동이 발아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전개

를 보여주는 동안 드디어 그 숨통이 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할 과제가 너무나 많고 개인의 힘만으로는

벅찬 한계가 있어 모 두의 지혜와 능력이 합해지는 일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차례 논의 와 중지를 모아서 민

족미술협의회의 창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본 협의회 를 통하여 우리의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소명의식을 확인한

다.

첫째, 민족분단의 현실과 삶을 갈라놓은 제도적 억압장치와 방해공작으로부터 벗어 나서 냉엄한 통찰과 행동을 통하여 공

동체적 삶, 통일의 삶으로 가는 길을 다같이 모색하는 일이며

둘째, 민족미술의 창조적 발전을 향한 다양하고 통일적인 이론과 실천을 통하여 참 신한 동참미술인들을 발굴하고 여러 장르의

풍성한 작품의 수확을 거두는 일이며

셋째, 창조나 수용이 조화롭게 만나지며 함께 나누는 통로로서 민중적 삶이 함께하 는 수용의 운동과 교육의 실천방법을 다각

적으로 확대하는 일이며

째, 본 협의회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 권익옹호, 복지향상 등 모든 제반 사업활 동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홍

하고 실천할 것이다. 민족미술협의회가 아니라 민족미술의 진로를 여는 중대한 사명감을 짊어지고 나갈 것임을 민족의 이름

로 널리 선언하는 바이다. 1985년 11월 22일 민족미술협의회 창립발기인 일동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 학생들의 전시를 읽고 우리의 시각을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독일 현대미술 관련 정보 메일메거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