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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 참고문헌2호 2000년 5월호


참고문헌 2.구경꾼, 구매자 그리고 제작자-관객에 대한 생각들 (마사로즐러-권행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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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글의 목적은 관객에 대한 문제들을 이론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포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관객'은 관객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미술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관객이 속해 있는 그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파악될 때만 의미가 있다.

사진은 마치 고급 미술계라는 정상을 향해 돌을 굴려온 마지막 시지프스와 같다.따라서 사 진의 관객에 대해 다루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미술계에 사진이 흡수되면서 사진 관객과 미 술계 간의 관계가 변화 되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술 관객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을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계급이다. 사회 계급은 관객과 문화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다. 미술가와 관객사이에서 매개적 역할을 담당 하는 것이 사진이며,그 속에서 계층에 따라 단순히 전시를 보러오는 사람과 그것을 구매하 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간의 관계가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의 미술가의 지위가 결정된 것은 유럽귀족이 몰락하면서 예술가들이 귀족들의 직접적 후원을 받는 대신 자유시장체제 속에 편입되면서 부터이다. 모더니티라는 이데올로기로부터 파생된 결과의 하나가 낭만주의이며 이는 오늘날 대중에 대한 작가 고유 의 태도 즉 관객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결정짓는 주요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관객에 대 한 무관심은 작가들의 주요 특징이 된 동시에 서구미술을 지배하는 모더니즘 이데올로기의 핵심요소가 된 것이다. 오늘날 작가들이 기존의 '미술계'바깥의 사람들과 관계를 변화시키려 한다면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자신들이 미술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다 면밀하 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특히 철저하게 정치성을 지향하는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작가들이 고려해야 하는 것은 관객에 대한 접근방식의 문제이다.이 를 위해서 미술 기관들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사진이 전시,판매,비평이라는 고급미술의 체계 속으로 편입되어가는 상황속에서 사진제작,출판,배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의 문화적의미가 변화되고 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관객의 특징

'관객'에 대해 논의 해야 할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 논의를 시작해 보라. 물론 미술(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것)의 사회적 자리매김이 문제시 되지 않는 사회도 있다.그러나 후기 자본주의 문화에서는 분절 즉 사회적 삶에 대한 신화와 현실 사이의 분절이 명확하게 나타나며 사회계급들간에 '진리'를 규정하려는 갈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미술에 대한 이론적 주장과 실제적으로 그것을 제작, 분배하는 행위 사이에 엄청난 모순이 존재하 고 있다. 즉 문화에 대한 예술이 인간의 형이상학적 실체로서 역사적 시기와 제작을 위한 여타의 상황들은 물론이고 제작자, 후원자의 계급까지도 초월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술은 정신적,형이상학적 진실을 최고의 경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그 반면에 현실속에서 고급예술은 이러한 신화를 공공연하게 버리고 문화적인 이해관계를 맺고 '상류계급'의 생활 과 거대자본에 결탁하고 있다.

중략!!-여기에는 미국의 국내기부금예산으로 건축,미술,무용,미술관기금등 어느분야에 얼마 만큼 투자를 하고 있는지를 나타낸 도표와 주보조금의 액수 여기는 심포니와 오페라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그리고 한스하케의 미술관 참관과 교육정도를 조사한 설문결과와 직업정도, 경제력을 알아본 결과를 도표가 같이 있었다.

고급문화의 소비의식에 대한 이러한 간단한 통계 조사를 통해 관객과 그들의 수입정도, 직업유형, 문화에 대한 주인의식들을 대략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이러한 방법은 관객의 범위 가 어떻게 교육받은 부르주아들로 한정되는지를 보여주는데 매우 적절하게 이용된다.그리고 여론조사의 경우 하층계급들이 배타적 감정과 위협감을 보여준다.그러나 이러한 통계 조사 만으로는 수입과 계급간의 냉혹한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가 없다.오로지 문화이론만이 이러한 관객구성문제를 설명해 줄 수있다. 그리고 사람들과 미술형태들과의 관계에서 그 토대가 되는 미술에 대한 관념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주관적으로 만들어진 것 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문화이론의 필요성을 뒷받침 해준다. 사실 모든 가치판단이 그러하듯이 고급미술의 사회적 가치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간의 분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비록 고급문화의 의미를 미데올로기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것을 자명하고 자연스러우며 문명화된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드는 것이 지배논리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급문화의 특징들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뒤에 저급문화가 자리잡고 있어야 만한다. 이같은 고급문화 또는 예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관념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은 그 문화에 속하는데 필요한 태도들이 '만들어진 것'이며 그 태도들을 얻기 위한 조건이 '복잡하고'누구나 그것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미술관객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 을 위해서는 관객층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관객층에서 가장 광범위한 관객층은 구경꾼들이다. 이들은 '관객'이란 용어가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로서 대부분 소문과 보도를 통해 고급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전통적인 근로계층 즉 사무근로자,기술자,서비스업 종사자가 이 집단에 속한다.이들은 학교에서 예술이 '가치' 있는 것임을 배웠을것이며 따라서 예술에 대해 일종의 종교적 감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실제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급미술에 대해 이들이 지니고 있는 빈약한 지식은 계층간의 분리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고급미술의 속성인 초월적 고고함이란 그것을 '이해하고' 소유하는 사람,즉 실제적 관객이 지니는 속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으로 인해 구경꾼 집단은 스스로 고급문화에 참여할 자격이 본질적으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본분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급문화를 실제로 소유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주지하다시피 그들은 바로 흰색 넥 타이에 턱시도를 입은남자,바닥에 질질 끌리는 모피를 입은여자,록팰러가,휘트니가,케네디 가,러시아계 발레리나,국제적인 제트족,국제 사교계 인사들,경제계 인사, 대기업주와 그들 의 부인,딸들이다.그들은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는데 능하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능력으로 언제든지 새로운 작품들을 재빨리 사들여 투자가치물로 전환시킨다. 그들 자신의 문화 영역 내에서 그들은 당연히 가장 앞서간다.

이처럼 미술을 고급문화로서 규정하고 소유하는 사람들과 고급미술에 위축되는 사람들 사이 에는 미술이 고양된 감정의 증거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새로이 부상한 부르주아지라 불리는 신종 전문 관리직 계급으로서 이들의 특징은 임금 노예화된 노동계급에 비해 자신의 이익을 철저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자신보다 높은 계층인 부루주아지가 누리고 있는 문화적 특권을 열망한다는 점이다.이 신종 프로부르주아지가 누리고 있는 문화적 특성이었던 자유가 지금은 현격히 제한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 따분한 세상 관계 속에서 자신만은 자유롭다는 증거로 문화적 허영에 집착한다.

작가와 관객의 매개로서의 시장

고급문화의 관객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보다 세밀하게 구분될 수 있다.즉 관객은 단순한 관객과 그 관객 중 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으로 나뉘어진다. 사실 이러한 구분을 하는 것은 서구사회에서 지배계층과 예술가 사이에 후원관계가 존재했을 때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구매자들 이 미술생산에 직접관여 했기 때문이다.18세기 말까지는 작품의 관객이 곧 구매자였으며 그 외의 다른 관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원제도의 쇠퇴와 함께 작가들은 귀족으로부터 해방된 생산이라는 미사여구를 만들어 내면서 자유경쟁시장 속으로 들어갔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후에 더 자 세히 언급하겠다.)여기서 다시 한번 이데올로기는 모든 사람이 관객이자 시장이 될 수도 있고 둘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으며 그에 적합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관객과 시장 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그 리고 미술이란(그것의 사용가치)물질적 존재를 초월하며 심지어 그와 대립 된다고 까지 주장해 왔다.미술의 경제적 가치(미술의 '교환가치')에 대한 논의는 전문 세미나와 관련 잡지에서 다루어질 뿐이었다.(그리고 그러한 논의의 궁극적인 판단기준은 취미로서,'당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사시오'라 는 틀에 박힌 결론을 내린다.이 결론은 그들을 속물근성에서 구해주는 수 단이 된다.)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의 실상은 신비화 되어 왔다.그러 나 우리는 여기서 시장이 지닌 몇 가지 특정적 요소들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지금도 미술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토대가 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돈 많은 컬렉터들 (법인단체를 포함한)이다.이 거대 컬렉터들-지금은 사진수집가도 포함된다 -은 작품에 대한 투자외에도 미술관과 화랑 채입자들, 큐레이터들에게 상 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종종 미술관과 기부금 기관의 위원이나 보관위원 역할을 한다. 그들은 또한 현대미술품을 미술관에 기부(또는 판매)함으로써 세금을 줄이기도 하고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작품중 기부한 것과 같은 자각의 작품들의 금전적 가치를 올려 놓기도 한다. 사진분야에서 현재 두각을 드러내는 컬렉터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도록 사진사를 짜맞 출줄 아는 사람들이다.이러한 것들이 바로 일반 관객에 미치는 시장의 영향력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층 부르주아지 밑에는 장식하거나 즐기기위해 또는 사회적 지위를 가장 크게는 투자가치를 위해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상당 수있다.이 소자본가들은 시장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시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모든 자본이 경기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만 자본주의의 경제변동에 보다 더 종속되어 있는 것이 대자본이 아나라 바로 이 소자본들이다.

자본주의 경기가 침체되면 작품의 구매유형이 바꾸게 되고 그로 인해 일반관객이 접하게 되는 작품의 유형까지 변하게 된다.예를들면 최근에 화상들은 (전시회를 개최해 주거나 심지어 작가에게 월급을 주는 방식으로)행위미술을 포함해서 현재 유행하고 있는 미술을 지원해 왔다.이러한 유의 미술은 거의 안팔리거나 전혀 팔리지 않는다.그러나 미술계에서 유행하는 흐름으로 주목받게 된다.그렇게 되면 화상은 그의 후원력과 박식함으로 유명해지게 된다.반면 그들의 고정수입은 뒷거래,말하자면 미국인상주의 그림 같은 것의 뒷거래로부터 나온다.통화가 긴축될 때는 투자의 양이 줄어들고 투자가들은 잘팔리는 품목들인 역사물들에 대부분 매달린다.일반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화상들은 안팔리는 물건에 대해서는 지원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상황이 보다 긴 주기에 걸쳐 불투명해지고 투자가들이 경제적으로 정치적 불안을 느끼게 될 때는 -지금처럼-수백만달러의 자금을 소유하고 있는 기관을 비롯하여 많은 투자가들이 미술에 몰리게 된다.소규모 투자가들은 주식시장과 저축성 예금을 피하고 '수집품'또는 '유형자산'을 산다.이러한 유형자산에는 보석,금,(크루거랜드가 유명하다)부동산,오래된 배 그리고 도자기,골동품,은과 도기같은 고급공예품 등의 예술품 그리고 작고한 작가의 옛날작품-최근에는 포도주와 사진도 포함된다-등이 포함된다.특히 컬렉터들의 영향으로 신진인 작가의 그림이나 조각의 가격이 상승한 것처럼 보이며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그러한 작품을 사기도 한다.이와같이 경제적 불안시기에는 후원성 구매가 축소되는 반면 투자면에서 안전한 구매가 급격하게 증가된다.달러가 하락하면 외국의 투자가들은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미국미술이나 '수집품'들을 찾는다.그리고 이러한 품목의 시장을 확대시키고 포토리얼리즘같은 특정애호품에 치중한다.(동시에 매우 재정상태가 나쁜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외국경매자들이 거장의 작품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화상들이 팔리는 작품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고 상품성이 없는것에 대해서는 지원을 줄이게 되면 미술관과 비상업적인 화랑에서도 상품성이 없는 전시는 줄어든다.이렇게 되면 미술가들도 그러한 작품은 제작을 하지 않게 된다.비록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르치는 일이나 정부보조금-가 안팔리는 작품을 줄어든 양만큼 계속 생산하게 하고 유통시키게 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제작경향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안전한 쪽으로 편중되기 시작한다.어쨋든 작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구경꾼으로 서의 관객은 어떤 종류의 현대미술이 지원을 받게 되고 생산될 지에 대해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대중의 반응이 다소나마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가령<투트왕>전 <인민공화국>전 같은 문화-공예품 전시 들이다.기부 기관과 기업 후원자들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대신 대중의 인기를 노리는 이러한 사이비 대중주의 전시를 하는 미술관의 움직임에 편의에 따라 지원을 한다.

미술계의 관객에 대한 태도

지금까지 작가의 결정권 너머에 있는 실제적 관객집단에 대해 살펴보았다.그러나 작가들이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관객 이외의 관객 또는 시대가 다른 시기의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적 토대를 논의할때 관객의 종류를 세분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판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이처럼 관객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해진 것은 19세기 초 유럽 의 낭만주의 운동 초부터 비롯된 것으로서 이는 귀족정치가 쇠퇴하고 국가의 후원이 사라지는 상황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이 상황속에서 미술가는 어떤 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개념이 새로이 형성되었다.이 견해에 의하면 미술가는 망상가이다.그리고 창조성의 원천인 천재성과 영감(또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정신의 내적인 힘)은 작가의 의식적 통제를 벗어나 있으며 그의 관객은 '그자신'이다.한편 이와 다른 관점에 의하면 미술가는 일종의 과학자로서 객관적 사실 또는 미술,취미,인식, 매체 그 자체 등등 다양한 것들의 가능성을 개발해서 동료 작가들에게 제시하기 위해 '조사' '탐구''실험'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주된 활동은 작품제작이며 판매는 평범한 세상에 적응하는데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된다.

이때부터 작가들은 이전 시기의 귀족적 질서가 고급미술에 부여한 규범에 대항함으로써 자신의 주제와 양식을 더욱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이제 그들은 새로운 프티부르주아지 계급이되어 다른 계급이 아닌 바로 자신이 속한 계급의 관객과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게 되었다.그러나 그 체제 내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주변적위치와 정부 엘리트와의 새로운 반목으로 인해 작가들은 부루지아지 세계관이 전체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에 반대하고 ,상업화되어가는 문화에 대항하는 투쟁에 참여하였다.그러나 전시와 판매의 문제는 미술가들이 지속적으로 거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메우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었다.미술에서 해방(자유)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 즉 시장체제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게 된 시기부터인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미술의 여러 다양한 보헤미안적 아방가르드 경향들은 모두 부르주아지 문화를 거부한 부르주아지 문화였으며 동시에 시장과 나아가 부르주아지 관객을 경멸해 간 일련의 흐름들이었다.19세기 말과 20세기의 미술운동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저항문화의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았다.(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기도 했다.)대부분 후기 입체파로 불리는 '모더니즘'의 여러 형태들에 있어서 그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20세기 중엽 미국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전파한 극히 제한된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에서는 더 이상 미술작품과 그 외적 문맥 간의 관계가 회복 될 수없을 정도로 단절된다.

1940년대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고급문화에 대한 지배적 담론은 모든 형태의 저항문화의 역사를 그것이 혁명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거대한 형식주의 경향으로 왜곡시켜 왔다.그리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와 관객이 미술형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노동계급을 관객으로 삼거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연대를 보여주는 미술가들(또는 실제 그들의 적, 즉 번성하고 있는 아카데미'부루지아지 현실주의자'와 시장을 위해 작업하는 이들)은 이 역사 안에서 중화된다.기껏해야 프랑스나 소련의 혁명과 당시 일시적으로 무정부주의적 해방에 도취되었던 과도기의 경우에서만 미술과 정치가 연결될 뿐이었다.

신업자본주의가 공고화되던 시기에 미술의 본질에 대해 만들어진 정교한 담론은 관객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모더니즘은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에 의존하여 관객과 시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토대 위에 집을 지었다.그리고 취미의 능력이 그것을 짓는 건축가가되었다.'취미'는 칸트가 <판단련 비판>에서 예술에 대한 반응을 다른 모든 인간의 반응들(식욕,성욕,도덕성,종교성을 포함)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다. 칸트철학의 전통에서 미적인 것은 취미의 만족 이외의 어떠한 목적이나 결과를 갖지 않는다.그리고 다른 모든 관심들은 불순한 것이라 하여 제외된다.이 논의에서 중요한 문제는 관객에 대한 책임의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다시 말해 이러한 책임에 대해 금지는 예술가가 부르주아적 사회질서에 동화되지 못하고 결국은 그 자신과도 타협하지못하는 반항적 존재로서 예술가라는 낭만적 상과 관련되어 있다.자본주의 발전 시기에 대중문화 속에서 일반 예술가들이 괴짜,현실부적응자, 기것해야 운좋은 사기꾼(경제적 성공 때문에)으로 표현되는 비동정적 견해 뒤에는 이러한 예술가 상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으로 인해 사회적 엘리트와 전문가 관객층들만이 고급미술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상황이 강화되어 온것이다.

취미에 대한 논의는 판단에 대해 미심쩍은 태도를 취한다. 다시 말해 판단은 작품에 대해 일종의 계산되지 않은 , 타고난 반응으로 거의 그것에 대한 공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눈앞에 보이는것의 의미에 대한 정상적 판단기준은 부인되며 특히 작품과 세계-특히 사회-와의 관계는 파괴된다. 그리고 기호체계 그 자체가 대화의 주제가 된다.작품앞에 선 관객은 그들의 외부의 상을 인식함과 동시에 제한된 지식체계를 통해 그것의 기호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작품앞에서 자신의 반응이 허용될수 없음을 알게 될 때 흔히 사람들은 "나는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그러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는 안다."라는 변명과 자기비하를 함으로써 그 상황을 벗어나곤 한다. 고급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타고난 감수성'(취향)에 의한 것이라고 찬양하는 것에 비하면 과연 관객들의 취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바가 없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처럼 미술행위와 그 담론을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모더니스트 미국비평가들은 부르주아의 고급문화와 보다 광범위하게 이해될수 있는 문화 간의 대립을 아방가르드와 키치의 대립으로 보았다.그리고 아방가르드를 어떠한 사회구조의 변화도 요구하지 않고 상상의 해방을 통해 신비적으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라 가정했다.그리고 해롤드 로젠버그와 같은 이들은 '비평공동체'가 말하는 예술의 가지에 대해 비난하면서 대신 특이하고 별다른 의미가 없는 미술을 선호했으며 수많은 삼류작가들은 이 도그마를 모방하고 윤색하여 대중화 시켰다.이 유명한 비평노선은 30년대 미술계의 진보주의에 반발했던 반 스탈린주의자들의 적대적 반응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술의 관심사들

어떻게 미술가들과 여러 문화종사자들이 천재, 고립 그리고 형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라는 복음을 폐기할 수있을까? 관객의 구성방식 문제와 관련하여 몇가지 개입되는 문제들이 있다.예를 들면 미술의 목적이 무엇인지(이에 대한 금지에도 불구하고)자문해 보아야 한다. 가령 즐겁게하기,기분전환시키기,미화하기,만족시키기,안정시키기,설득하기, 교육시키기,훈도하기,신비화하기,공격하기,사회화하기,이들중 몇가지는 이윤추구,기부금 얻기,명성얻기 같은 미술이외의 다른 목적에 따라 부수적으로 나온것들이다.

조잡한 대중매체 제작에서부터 가장 심오한 미술 창조에 이르기 가지 모든 미술은 정치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데올로기적이다.모든 예술은 문화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지배적 신화를 묵묵히 지지하거나 그에 도전한다.2차 대전 무렵부터 맥카시 기간을 거쳐 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사상적 고갈의 시기였다.이 시기 동안 미술계는 사회적 내용의 작품에 대해 매우 폐쇄적이었다.그러나 60년대 문화적 이단들을 따라 등장한 정치 성행의 미술과 함께 중립주의자 중심의 단일문화는 파괴되었다.단순한 이데올로기들과 그것을 조장하는 언론에 반대하는 문화이론들이 파괴되었다.단순한 이데올로기들과 그것을 조장하는 언론에 반대하는 문화이론들이 세인의 주목을 끌었으며 이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던 실천 미술들이 보다 발전 되었다.

소련의 잛았던 문화실험기에 발전했던 정치성행의 미술을 분류하는 방식에 다르면 정치미술은 그 의도에 따라 세가지로 분류 될 수 있다. 즉 소작인의 투쟁,건강상의 위협,파업처럼 시급한 현실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와 개인의 자유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의미 ,경제구조,문화적 전략들처럼 이론적인 문제들을 폭 넓게 교육하기 위한 것으로 구분된다. 우리는 '선동','선전' 이란 말에 대해 으례껏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사회문제를 다룬 초기의 참여미술을 불신하는데 이미 익숙해 있다.그러한 참여미술들은 주먹을 꽉 쥔 초스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선전,선동의 작품들만이 조야하고 ,이데올로기를 공격하는 작품들만이 즉각적으로 거부당한다고 할수는 없다. 초기의 선전, 선동적 작품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적합하게 복원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사진의 경우 과거의 정치적 작품들이 완전히 합법화 되었던 예들은 수없이 많다. 이론적으로 보면 국가선동주의자 의 작품들은 가장 심하게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가장 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가장 받아들여기기 어려운것은 국가를 상대로 그러한 것을 선동하는 행위이다.대규모로 선동했던 농업안정행정기관이나 좀더 일시적이긴 했으나 최근의 예인 법원조사의 작품은 즉시 예술로-대부분 작가 대 작가라는 해체적 방식으로 흡수-되었다.

모더니스트들의 이론적인 작품들이 잘 보여주듯이 이론적인 것은 속물근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으며 고급문화에 가장 쉽게 동화된다.이론적인 것이 그자체 이론에 몰두하여 형식주의적 아카데미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그러나 대중 관객에게 제시해야만 하는 것은 결국 이론적인 문제들이다. 미술과 실제 사회와의 관계에서 그 토대가 되는 것이 이데몰로기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그자체가 결국 이론 즉 문화이론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어떤 유형의 작품을 좋아하느냐는 그 작품이 어떤 유형의 작품이냐에 달린 것이아니라 그 작품의 내용(형식을 포함한) 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는 것이다.다라서 '관객'은 변화하는 실체이다 관객의 구성은 누가 그것을 보러오느냐에 달린것일 뿐 아니라.작가가 어떠한 유형의 작품으로 누구에게 그리고 왜다가가고자 하는지에 달려 있는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미술계의 구조를 이루는 관객과 작가들 간에는 소극적인 관계가 강요되고 있다.

미술 기관과 지원

'미술계'에는 고급미술을 생산하는 미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구매하거나 지원하는 사람들,전문 출판사와 물리적 공간을 포함해서 소비자와 작품을 연결 시켜주는 기과들,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 이 포함된다. 미술계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관계들의 집단이며 여기에는 관련된 사람들간의 개인적, 사회적인 모든 거래가 포함된다.화랑체제는 이러한 미술계의 토대가 된다. 화랑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그 세력을 펼치고 있고 모더니즘의 관념에 따라 재단된 것이다.다시 말해 미술의 유일하게 합법적인 환경은 미술 그자체 이듯이 화랑은 미술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관계와도 상관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화랑은 미술의 세속적 사원으로서 그 속의 미술품은 종교의 세속적 대체물이다.화랑 문 위에는 "여기 들어오는 사람은 세속적 관심을 버리시오"라는 보이지 않는 금언이 있다.이 패러다임 내에서 작품은 관객과 무관한 존재가 되며 관객은 단지 화랑측이 제공하는 작품을 '방문'할 뿐이다.(소수만이 작품을 물리적으로 소유 할 수있다.)작가/작품/화랑/관객. 이 연쇄적 패러다임은 관객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연대감을 잘라내 버린다. 따라서 정치적인 관심을 지닌 미술가들은 그들의 대항적 작업이 이러한 패러다임을 존속시키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술담론의 주된 활동 무대인 미술잡지들은 -실제는 상업잡지들-정보를 통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그럼으로써 국제적인 판매전략을 통해 진정한 '지역 주의'가 살아남지 못하게 만든다.)잡지에서 비평과 리뷰는 모두중요한 요소이다. 70년대 초반 주요 잡지 였던 <아트 포름>이 사진에 대한 많은 기사를 게제한 것은 사진이 미술계로 보다 가까이 진입케하는 역할을 했다.잡지와 화랑간의 관계는 밀접하며 금전적 관계가 암시적으로 이루어지는경우가 대부분이다.미술비평과 리뷰가 화상으로부터 사주 받은 사람들이 쓴 과대선전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새삼 비판할 필요도 없다.이러한 현상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만연해 있는듯하다.그러나 잡지들은 광고 화랑의 광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것이 현실이다.1975년 에서 76년 사이에<아트포름>은 '새로이' 변신을 시도하기 위해 사진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별다른 입장없이 무분별하게 문화비평을 실었다가 기득권을 가진 미술계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었다(실제 미술계의 특권자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잡지의 편집방향을 장악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일이 있자 화랑들은 즉시 광고를 철회했고 이로 인해 <아트포름>은 해체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화상들은 <아트포롬>의 전시리뷰가 구매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이 부족하고 몹시 감상적으로 되고 있으며 이전의 미학적 우위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들 했다. 이일은 결국 편집진이 물러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상업화랑 외에도 미술작품이 전시되는 곳은 여러 곳이다.미술관은 물론이고 비영리 화랑을 운영하는 기업체, 학교, 노동조합같은 기관도 여기에 속한다.보통 이러한 기고나들 내에서 화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되지 않는다.다시 말해서 그들이 운영하는 화랑의 존재이유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대기업들은 물의를 일으킬만한 작품들은 의식적으로 피하고 여러경향을 선진적으로 주도해가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예술'을 후원하고자 한다. 즉 그들은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받기를원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그들의 상표를 붙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다라서 이것은 후원이 아니라 판매이고 선전이다.기업이 운영하는 화랑의 관객은 일반 화랑의 관객과 구성면에서 비슷하지만 보다 주변인들이 많이 포함된다. 그들이 제공하는 입장권은 고급미술이 사회적의미를 지속적으로 고취 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와 시가 보조하는 미술관은 중재적 역할을 한다. 시민의 권리를위임받고 있는 그들은 안전하게 가능한한 넚은 관객층을 상대로 하는 전시를 한다.그러나 그들이 모든 층의 문화를 지역의 수준과 관계없이 전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60년대 불안기에 많은 미술관들이 '공동체 지향적'이란 명목하에 전시회를 열어서 지방의 작품,대중문화, 민족특유의 유산 그리고 현존하는 민속미술등 각종 것들을 뒤섞어 전시했다. 그러나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토마스 허빙의 <내마음의 할렘>이란 전시가 실패로 끝난일은 고급문화에 속한 사람이 소수문화를 대규모로 전시하려 했을 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대변해주는 일례라 할 수있다.

현대미술관은 시립미술관에 비해 상대하는 관객이 한층 더 제한되어 있다.모더니즘의 크레믈린이며 록펠러 가의 사업인 뉴욕근대미술관은 미술관 건물, 그들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상대하는 사회집단 면에서 볼때 현대미술관의 전형이라 할 수있다. 이 미술관의 사진 담당 큐레아터인 존 스차르코우스키 덕분에 미술관의 지배력은 현대뿐아니라 과거의 사진사에 까지 확장되었다.

미술관과 비영리화랑은 데모크리스의 칼이라 할 수 있는 검열을 받는다.이 검열은 미술관장과 큐레이터의 해고 ,모든 재정지원의 삭감 또는 보수적 위원회의 형태로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불경기에는 '진보적' 작품(그래서 시장가격이 낮은) 을 전시 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해지고 개인 기부금이 삭감되며 미술은 관료화된다.미술관 상황이 열악해지자 많은 미술관들이 공예품들과 모조품들을 판매까지 했다.이러한 사업이 번창하게 되자, 미술관이 지닌 흠없이 완벽한 이데올로기에 틈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많은 비평가들이 비난을 했다.1976년 12월 6일자 <뉴스위크>지의 보도에 의하면 "뉴욕타임즈지의 미술비평가인 힐튼 크레이머는 이러한 미술관 사업이 모조품들로 후원자를 유혹해서 미술관이 지녀야 할 '신성한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기업후원의 형태가 관료화로 발전하는 것은 좋지 못한 징조이다.왜냐하면 이로 인해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관객의 취향이기 때문이다.기업의 후원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최대한 넓은 미술관 관객에게 알려지기를 원하며 확실한 승자,즉 기존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지 않는 미술가만을 후원하고자 한다. 즉 기업은 대중문화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상업화된 작품의 전시를 후원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소수의 공동체 공간, 특히 '제 3세계'공동체 공간에서는 노동계급만을 관객으로 하여 정기적인 전시가 이루어진다.여기에 전시된 작품은 공동체 내에서 만들어진 작품인 경우가 많다.(물론 이것이 미술 '공동체'의 진실이다.)그리고 이 작품들은 어떤 기회를 통해 화제가 되거나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러 형태의 화랑 중에서 과격하고 저항적인 작품이 가장 쉽게 전시 될 수있는곳이 바로 이곳일 것이다.전문대학과 도서관 화랑들도 전시를 할 수있지만 대부분 질이 낫고 진부한 고급미술만을 전시 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화랑 체제는 미술의 방향이 상품을 만들어내고,사적인 작가정신을 지향하고 매체와 양식이 일관성을 지니면서,일반화된 내용을 지향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60년대 중반 미술계에서는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뉴욕의 화랑체제에 대해 대규모의 반발이 일어났다.이러한 작업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당파성을 피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시금 여러 사회상들을 소재로 한 것들이었다.몇몇 작가들은 미술의 상품성에 반대하기 위해 안팔리거나 대량복제가 가능한 작업을 시도했고 '행위'미술을 하는 이들도 나왔다.그러나 몇년 후 미술시장의 경기가 호전되자 이러한 미술시장의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기존의 화랑들(이후 소호 등지에 지점을 개관한다.)이 새로이 변신을 했고 수많은 상업화랑들이 개관을 했다.이것은 미술이 얼마나 상품생산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유지되어 왔는지를 알려주는 간접적인 예이다.

미술가 반란부대들 특히 여성미술가들이 공동 화랑들을 조직한 것은 이러한 화랑체제를 벗어나 보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들에서였다.이러한 노력 속에서 나온 것이 작가들 스스로 전자매체와 인쇄매체를 보다 많이 이용하고 유포시킬 수 있게 된 점과 '대안공간'의 출현이다.공동 화랑조직에 자그그을 준것은 페미니스트들이었다.여성들에게는 화랑이나 미술관에서의 전시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제도권에서 여성들을 배제시키려해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미술계 바깥뿐아니라 미술계 내부의 관객 모두에게 다가가고자 했다.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미술계에 뿌리박혀 있는 남성우월주의적 권위를 송두리째 흔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공동화랑은 중개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많은 양의 자본과 시간을 요 할때가 많다.이 공간을 기존의 똑같은 관객을 상대로 명성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매체와 인쇄매체의 비용도 역시 만만챦으며 이것들 역시 상업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그 속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힘까지 고갈 되어 버린 것은 아니다.

대안공간이라는 것은 큐레이터 체계에 대한 반발이자 극상류층 관객에 대한 경멸에서 나온 것으로서 때로는 뉴욕바깥에서 뉴욕의 지매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기위한 것이기도 했다.이것은 본래 소수의 관객들이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살 생각없이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생산자로서의 관객-따라서 이 공간은 '예술가의 공간 '이라 불리기도 했다)민주적 방식으로 작품과 아이디어들을 교환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원래의 이데올로기적 도전력을 잃어버리고 이미 적정수준으로 제도화되어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방식은 무기력하나마 무정부주의적 철학을 가지고 있는 한편 주의 지원을 받는 모순을 안고 있다.이 공간은 화상들의 시험적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상업광고의 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영악한 화상과 여타의 다른 이들은 예술적 자유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주류 화랑에서 전시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이 공간을 이용하기도 하는 것이다.뿐만아니라 다시 보수적 재정은 대안공간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많은 대안공간들이 작은 결과를 위해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과소비를 해왔었다.)그들이 소수화되고 재정이 어려워짐에 따라 용기를 내기란 더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이후 사진에대한 글들은 생략했습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다른 참고문헌 찾아보기

다섯번째 주요요소 돈이냐 예술이냐?전시의 카타로그 ,Das fuenfte Element-Geld oder Kunst.jan.2000,dunont.(독문)

juergen raap,Kunst forum international 149 호 ,테마 -돈의 운명,중에서 mony makes the world go round( 돈이 세상을 돌린다.).(독문)

juergen raap예술과 자본(kunst und Kapital),.(독문)

마사로즐러,구경꾼 그리고 구매자 화상 그리고 제작자-관객에 대한 생각들,시각과 언어,1998년 이영철이엮은 현대미술지형도의 444-478 페이지. (국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물 참고문헌 2호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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