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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후기인상주의 後期 印象主義 Post-Impressionism(영)

1>후기인상주의 개요

1.영국의 미술평론가`로저 프라이`Roger Fry가 1910~1911년 겨울에 런던의 그래프론 화랑에서 가획한 `마네의 후기인상주의전`이란 표제에서 유래한 명칭.

2.특정한 예술운동,단일한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고 모네,피사로등의 인상주의와 단순한 점묘주의로서의 신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전개된 보다 견고한 화면구성을 강조한 경향과 표현 내용을 중요시 하려했던 경향의 작가들을 말한다.

3.순간적,감각적 자연의 인상과 빛의 변화를 순수하고 생생하게 포착,밝고 동적인 화면을 창조 해 사실주의를 완성한 인상주의에 반해 후기인상주의는 사물의 내면적 정신성과 본질을 근원 적으로 파악하려 했다.

4.사물을 확고 부동한 견고한 형태로 만들어 그 안에서 질서를 찾았고, 강렬한 원색 평면적 넓 은 면들의 형태로 꿈 사상을 상징적으로 현존시켰으며,타오르는 정열적인 형태의 율동과 격 렬한 색조로 인간의 심상을 형상화 시킴으로써 결국 고호,고갱의 영향으로 야수주의와 표현 주의가 성립되었고 세잔느의 조형의지의 발전으로 입체주의가 태동되어 현대회화로 이어진다

2>후기인상주의의 발생과 배경

1.사진기의 발명으로 회화에서 재현이라는 목적을 잃고 회화만의 표현이 있음을 눈뜨게 되자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인 것이나 과거나 미래의 여러가지 것들이 있음을 인식하게 됨.

2.인상주의 감각적 특성과 무정형성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양상들은 다양한 동시에 뚜렷한 차 이를 갖고 있기에 포괄적으로 말하기 힘들며 비평가`로저 프라이`도 양상의 본질적 개념 정의 보다는 후기 인상주의라는 두리뭉실한 용어로 한정시켰다. 이 용어가 그러한 작업들이 시작된지 25년이 지난 후에야 사용되었다는 점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 한다.

3.그러나 1910년에 만들어진 `후기인상주의`라는 신조어는 지각 경험을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선 작업과 사고와 직관의 관념적 영역에 비교적 구체적인 표현을 부여하고자 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4.1886년 8회 마지막 인상주의전 이후 나타난 두가지 경향은 신인상주의 경향과 상징주의 경향 인데 신인상주의가 직관적 빛의 탐구에서 과학적 탐구로 논리적 계승의 측면이 있다면 상징 주의적 경향은 인상주의 이념과 방법의 극복으로 나타났다.

5.후기인상주의는 뚜렷한 형성 시점이 없는데 고갱,고호는 얼마동안 신인상주의를 따른적이 있었고 세잔느는 신인상주의 형성 이전부터 작품을 해왔기 때문이다.

6.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며 진리를 이성적인 것이 아닌 비합리적인 것에서 찾았던 것처럼 진 보적인 화가들은 계몽주의에서 야기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시대(1789~1815)이후 서구 문 명을 주도해 왔던 낙관적 공리주의에 회의를 갖고 인상주의에서 절정을 이룬 사실주의 전통 을 포기하고 감각의 외부세계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을 포함한 새롭고 완전한 본질을 추구했다

7.현실을 넘어 이상적인것,낭만적인것에 보는것을 넘어 상징적인 것에 그리고 감각을 넘어 사 고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 하였고 점증하는 지각과 그것을 미술로 옮겨 넣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려는 내용에 조응하는 형식을 파악하는 수단 이었다.

8.아카데믹한 원리와 사실주의 전통을 파괴한 새로운 미술가들은 인상주의 보다도 훨씬 충격적 인 그림을 산출했고 미술의 세계와 실제사회를 대폭 분리시키는 간극을 만들어 냈다.

3>후기인상주의의 양식적특성과 전개

1.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에서 보여졌던 분할주의의 `분석`대신에 외면보다 내면에 관심이 고조 되면서 `종합`으로 향하게된다.

2.인상주의가 외면했던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태도는 인상주의가 부정한 사물의 고유색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3.후기 인상주의의 인물별 특성

1.폴 세잔느(PAUL CEZANNE,1839~1906)

*엑상프로방스 지방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0세기 미술의 실험적 작업의 개척자로 간주될 수 있다.

*사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한 그의 조형관의 특성은 자연의 내부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성이나 기하학적 방법은 과거 그리이스, 르네상스 미술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순간의 분석이 아닌 견고하고 완전한 실제 즉 영원한 색채, 영원한 구축을 제시했다.

*표현상의 특이점은 인상주의적 감각공간과 전통적 입체공간의 조정을 성립시킨 것인데 시각적 공간과 이지적 공간의 종합을 시도 하였다는 점은 새로운 조형공간의 언어가 있게 하였다.

*세잔느는 이미 1870년대말에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인 형태와 구성을 무시한것으로 보여진 인상주의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었고 물체의 입체감과 색채와의 관계,균형잡힌 화면 구성,사물의 형태들간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그는 색채와 형태의 관계에 있어서도 색채가 풍부할 때 형태도 충만하게 되며,색채를 중심으로한 종합적 회화를 구상 한다는 것이 그의 특론이었다.윤곽선에 의해 볼륨이 나타난다는 것에 반대하여 색채에 의해서만 표현된다고 주장하였다.

*확고부동한 질서와 공간을 찾으려 하여 구,원추,원통으로 자연 대상을 환원시켜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태로 보았다.

*그의 화면구성의 기본은 항상 고전적인 균형에 두면서도 대담한 데포르마숑이 나타나며 부피와 질량감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과 동시에 깊은공간은 그 부산물로서 얻어질 수 있게하였다.

*이지적인 방법론을 택한 세잔느는 그의 작품속에 공존해왔던 여러경향 즉 바로크주의,인상주의,고전주의,및 초기 입체 주의등의 경향등을 조화있게 종합시키는 데 성공하고 추상예술등의 20세기 미술의 방향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

*상선의 선원에서 해군으로 나중에는파리에서 주식중개인으로서 비교적 안정된생활을 누리는 가운데 취미로서의 미술이 1876년 살롱전에 내는등 점차 전문화되어 1883년에는 완전히 그림에만 몰두하여 직장도 포기하고 카미유 피사로 소개로 인상주의 소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는 인상주의에 반발하기보다 이탈하려 했다.대담하고 장식적인 구도법과 평면적으로 칠하는 강하고 산뜻한 색채효과, 관념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현존시키려는 지향등을 완전히 그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인상주의의 분석적 방법이나 시각적 진실 대신에 종합적 방법과 꿈,이상,상상력을 폈다.분할된 필촉,점묘에의한 뉘앙스 대신에 크게 구획된 원색의 단일한 색면,평면적 구성형태를 굵직한 윤곽선으로 테두리 짓고 화면은 평면적,장식적이며 그것에 상징성을 부여헀다.

*그는 인상주의에서의 서로 상반되는 강렬한 색을 대비시킨 것이 아니라 서로 이웃하고 있는 색채들의 울림을 좋아 했다. 평평한 색채들을 윤곽선으로 돌렸으며 아라베스크를 사용했고 인상주의의 기교를 자신의 새로운 방법과 섞었다.

*`인상주의자들은 눈 주위에서 미를 찾으려하고 사상의 내부까지는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하고 그에게 테마와 형상을 제공한 것은 그의 상상력이지 자연이 아님을 주장하여 외부의 재현 보다도 심리적인 내용을 담은 표현을 탐구했다

*사물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통하여 현존시키는 지향성을 나타낸 그는 공간구성에 있어서 구심 원근법 대신 평행 원근법을 사용했으며 공기 원근법도 무시하여 전,후경의 밝음을 역류시켜 날카로움을 더 했다.색채의 대비 효과를 집요 하게 시도하면서 평면성과 장식성의 회화로 몰고 갔다.장식성의 회화는 양탄자그림에서 평면적회화는 공간적 형상을 없앤 벽화풍의 평면성에서 느껴지는것과 유사하다.

*자신의 구원과 현대 미술가들의 구제가 근대문명및 서구 고전 문화에서 벗어나 보다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삶의 유형으로 회기 하는데 있다는 신념 속에서 너무 오염된 서구 문명을 떠나 타이티섬등의 원주민의 삶 속에 들어가 인간의 원초적 미지의 세계에를 찾아갔고 원주민의 순수 소박한 강렬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유럽미술의 수법과 문제를 초월했다

*고갱은 야수파를 예고했고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에영향을 끼쳤으며 부조 디자인 채색꽃병등에도 관심을 가져 목판화등에서 의 새로운 방법은(강하고 대조적이며 원시적인) 독일표현주의의 그래픽 미술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

3.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1853~1890)

*네델란드의 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화방점원으로서의 얼마간의 체험과 신학 수업후 광산촌의 전도사 생활에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1880년 브뤼셀,헤이그,앤트워프에서 공부한 후 1886년 인상주의 화가들과 만난다.

*1888년 타오르는 태양을 그리기위해 아를르로 옮겨 제작에 전념했고 1889년 한때 고갱과 고동생활을 했으나 곧 헤어졌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요양중에도 제작은 계속되었고 1890년에는 건강의 회복기미가 보여 오베르 쉬르 오와즈로 옮겨와 작품을 계속 하였으나 끝내 권총 자살로 생애를 마쳤다.

*고호미술의 구심점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두가지 실체의 진리를 어떻게 연결 시키느냐에 있었고`자연 자체에 부각된 인간` 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입장에서 그는 예술자체 보다도 인간자체에 관심을 두었다.따라서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킨 밀레 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고 화가가 되기를 결신한 고호는 에술을 선을 행하는 다른 방법(예를 들면 목사로서의 삶이 그에게 거부되었을때 인간적 구원의 다른 방법)으로 택하였다.-그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어떤 순수한 예술적 정열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개혁에 대한 자신의 설교를 구체화 시키기 위하여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고호는 정직하게,정신적으로 살기를 원했으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기보다 이기적 목적을 버리고 저속을 초월하여 성실 하게 인류를 위해 사는 숭고한 인간애가 있었다.그러나 그는 인생을 작품을 위해 내걸었고 그것에 의해서 그의 이성은 침몰해갔다.그는 보잘것없는 사물들에 주목했으며 하나의 필촉 하나의 색채까지도 그의 정신상태를 이야기 하고, 그의 생애를 말하고 있다.그의 그림은 결코 전시된 적도 없고 팔아본적도 없었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욕구의 분출이 아니라 자아가 지니는 보편적 심정의 표출까지 도달하고 그가 창조한 색과 형은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것으로 자연형상세계를 자신의 시각세계로 바꾸어 자신의 심리적 내용을 담았다.

*그의 그림은 필촉은 다이나믹해지고 수평 수직 구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율동적 필치의 종합체로서의 방식이 완성되고 있 다.고호의 데포르마숑은 형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비젼의 심리적 요청이다.굴절,동요,요철등에 의해 세계를 보는 방식은 바로크적이며 평면적인 색면없이 장식적 체계마저 거부한 화면은 굴절,동요,곡선으로 자유로운 발전을통해 구도가 만들어 짐을 볼 수 있다.

*어떤 원리나 원칙에따라 작품활동을 하고자 의도를 가진 바 없으나 야수주의와 표현주의의 기원이 되었고 세잔느 고갱과 함께 현대미술의 터전을 닦아 놓았다. (독일의 현대미술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