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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0년12월 서간(메일)토론 1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을 우리눈으로 읽고 우리의 시각을 찾고자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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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문형!

어제 전시는 잘 끝났나요? 가보지 못해 죄송해요.어제 프랑크프르트에서 저희가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 먹어서 올라오는 길에 보니 벌써 오픈 시간이 지났더군요.뒤쏄도르프까지 가면 9시가 넘어서야 도착 할것 같아서 그냥 뮌스터로 곧바로 올라왔습니다.다음주 중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연락을 드리고 한번 내려 갈까해요.사실 요즈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군요.어제는 프랑크프르트 현대미술관에서 Szenewechsel전을 보았어요.카테리나 프릿체의 검은 사제복을 입은 조각작품이 인상적 이었어요.언젠가 카톨릭교회에서 만난 수사의 검은색옷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감으로 빛났던 기억을 떠 올렸습니다.새까만색이 주는 힘은 정말 신비에 가깝더군요.갔었던 일은 잘되었구요.내년 4월에 저희 필름클라쎄 프랑크프르트 현대미술관의 옛 세무서 건물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지금은 라이프찌히 학생들이 전시를 하고 있는데,미디어에 깊이 치중되어 있는 작업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시를 보고 올라오는 길과 저녁을 먹으면서 같이 갔던 현정이와 정민씨 와 함께 형과 엇그제 나누었던 대화를 나누었어요.요몇일 제가 가진 대화의 테마는 " 서양 예술론의 한계적 상황과 동양 예술관에 대한 오해"입니다. 자꾸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독일이라는 사회속에서 겪게되는 문화적 충격과 특히 예술 이해의 차이에서 기인한 개인적인 갈등때문입니다.이런 문제해결을 위해서 제가 접근한 방식은 익히 말씀드린대로 미술사적 분석과 이론적 이해를 먼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기저기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 카타로그등의 문서자료를 분석해서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을 쓰는 일들은 사실 제게 있어서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점을 찻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우선 독일을 포함한 서양의 현대미술의 제 문제가 어디에 있으며 이것을 어떤 식으로 극복해 가는가?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거지요.이 과정에서 저는 제가 가진 서양예술에 대한 몇가지 오해를 찻아내게 되었고 그것은 저를 포함한 동양,혹은 한국인의 전통적 예술관으로 부터온 것임일 부인할 수 없어 졌습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서양의 예술관이 동양의 예술에 대해서도 동일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그런한 오해의 예로 들었던 것이 장자의 "도정의 비유"입니다.소를 잡는 도정이 처음에는 기술을 보다 새련되게 하기위해서 반복되는 숙련을 가졌는데, 시간이 흘러 어느순간 칼이 뼈와뼈를 가를때 전혀 날을 상하지 않는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죠.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서구의 아방가르드를 우리식으로 정착시켰고,그 예로 우리나라의 앙포르멜 회화를 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서구의 앙포르멜이 비정형을 추구했다면 우리의 것은 반복되는 작업을 통한 한국적 정신 혹은 동양정신의 구현에 있었다고 봅니다.이것은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서구미술의 실험으로서의 인포멀리테트와는 구분되는 것이죠.우리의 앙포르멜은 훨씬 더 서예나 사군자의 예술적 정신성에 가깝습니다.이것은 최소한 제가 학교를 다닐때 한국에서 그부류의 작가들로 부터 들었던 숱한 가르침으로부터 연유한 판단입니다.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미술계는 서구의 아방가르드를 수용했고, 우리방식으로 정착시켰습니다.이것은 어찌보면 서구미술에 대한 깊은 오해로 부터 기인하기도 하고 순수한 우리미술의 근거를 찻는 기초로서 기능할 수 도 있습니다.

한국을 다녀온 우리반의 한 독일애가 인사동에서 본 작품들에 대해서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서양적이고 유럽적인 예술품이 걸려있는데,어떤 전시장은 지나치게 조잡하고 키취적이어서 곧바로 문턱에서 나오고 싶었다.그러나 어떤 다른 전시장에서는 이것이 혼합된 아주 묘한 한국성에 매혹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나는 인사동에서 그것을 쉽게 구분해 내기 어려웠습니다.그것은 내가 지금것 서양미술을 오해하고 있기때문에 생겨난 문제일 수도 있고 나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우리것을 구분할 눈을 잃어버렸기 떄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말씀드렸던 "서양인의 동양예술 오해" 는 같은 나의 오해를 구분시켜 주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아래그림은 일본작가 카츄오 카타세의 설치작업입니다.그가 저희학교 교수 채용 공개강의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햇읍니다."저는 동양철학과 하이데커 철학을 바탕으로 작업해 왔습니다.저는 음양사상을 이야기하고 나는 음의 미학,그림자의 미학,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부정의 미학이며,존재의 미학인 동시에,있음과 없음으로 부터오는 음의 세계입니다.나의 음은 그늘이며,동시에,땅이고,여성을 상징합니다.나는 그것을 푸른색으로 표현합니다."그의 이와 같은 발언에 한 독일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참 우습군요.어떻게 파란색은 하늘을 상징하지 땅을 상징합니까?"이런 당혹스러운 질문을 세련된 독일어로 대답할 바를 찾지 못했던 일본 예술가를 더 미궁에 빠드린것은 그를 도우려는 의미에서 던진 슈네켄부르거 교수의 조언에서였다."선생님의 파란색은 무색을 의미합니다.그렇게 이해하시면 될겁니다."마치 아방가르드의 미학이 비예술을 자리에두고 신비감을 못이겨 했던 것처럼 그의 파란색을 비슷한 위치의 신비감으로 베일을 씌워 보려는 시도같았습니다.파란색이 그늘과 음의 상징으로 이해될때,나는 아주 쉽게 공감했지만 대부분의 독일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가 봅니다.그후 좀 더 그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과 질문들이 있었으면 내가 가슴한 구석이 서늘하게 느끼는 아쉬움을 갇지 않았겠지요.솔직한 제 판단으로는 그들에게 동양의 난해한 예술을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느낌을 받았을때,그자리에 있는 나 스스로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첫째는 저런 서양인들의 예술에 매료되있는 나와 스스로 나의 전통에 무지해 설명할 방도를 찻지 못하는 나의 실체를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후 저는 독일인들의 동양예술 오해에 대한 분노보다 더 그들의 무관심에 놀랐고, 스스로 동양예술을 오해하는 나와 나의 서양예술 오해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같은 문제는 동양적 사상을 자신의 예술로 추구하는 서양작가들에게도 같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지난달 작가연구 "볼프강 라입"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지요.볼프강 라입의 꽃가루 작업에 대해 대한 루돌프 자그마이스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나는 언젠가 파리에서 마크 로드코의 현기증나는 회화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의 색채들은 어디론가 촛점을 잃고 사라지다가 나를 엄습해오는 것을 느꼇습니다.당신의 꽃가루작업은 같은 현기증을 느끼게 합니다.아마도 당신이 마크 로드코와 최소한 색채사용에 관한 것에서는 공통성이 있으리라고 보는데요"그는 대답했다."예 당연히 제 작업은 마크로드코와 연관성이 있습니다.동시에 저는 로드코의색채를 아주 깊이 연구하고 색채만의 세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아주 큰차이를 봅니다.제게 있어 꽃가루들은 색소가 아닙니다.그리고 우유는 흰색의 액체가 아닙니다.저는 절대로 이브클라인처럼 그의 파란색을 하늘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아주 다른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이브클라인은 아주 멋진 그림들을 만들었지요.로드코도 또한 그런 그림들을 그렸고 그러나 제게 있어서 바로 그 차이는 :꽃가루가 꽃가루인 동안,우유가 우유인 동안은 그림은 하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유는 어떤 색채도 혹은 색의 강정을 유발하는 물질이 아니라 단지 우유일뿐이라는 것입니다.아마도 이것을 위해서 제가 6년동안이나 의학을 공부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저는 이것을 의학에서 찻았습니다.의학은 생명그 자체와 관계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로 부터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이해 할 수있습니다.의학이 인간의 존재를 뒤로하고 물질적인 신체에 제한되어 있을때 ,우리는 완전히 절망하고 말것입니다."

위의 예는 서양적 사고가 가지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의 한계를 보게해줍니다.그리고 동양적사고를 담을 그릇을 찻기 힘들어진다는 사실도 찻게됩니다.더 나아가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을 씀과 동시에 똑같은 방식으로 미술제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습니다.이것은 미술제도를 아주 조직적으로 나누고 범주화하는 서양인들의 합리적 능력을 확인하게 되는 거지요.저는 한동안 서양의 개념미술을 우리 말의 "의미성"이라는 단어로 자주 맞바꿔 생각하곤 했던 오류를 바로 잡을 수있었는데, 그것은 개념적이란 것은 다분히 개념적 실험,혹은 학문적 연구활동(Wissenschaftliche Forschungsprojekt)으로서의 개념미술에 더 가까이 가는것 이었습니다.이런 범주화하는 능력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저는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규칙을 형성한다고 보았고, 따라서 예술제도에 입문하려는 수 많은 서양예술가들과 미술대학 학생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죠.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작업을 통해 상을 받았다거나 인정을 받게되면 '그는 예술제도의 공백을 보고 있었거나 공격을 했군.''그의 작업은 지금의 유행하는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있거나 들게 될거야'라는 예감같은거 말이죠.여기서 예술이 숨쉴 수 있는 틈은 아주 적어 질 수 밖에 없어요. 왜냐면 모든 것이 제도에 예속되고 구속된 자유의 표현에 불과하니까요.

이런 이야기 끝에 현정이는 두가지 문제를 지적해 주었어요. 하나는 부분적이고 협소한 예들로 서양예술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예술계의 시스템은 범주화되어 있는 체계이기 이전에 마치 우리의 삶이 다양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처럼 단순한 형태로 칼로 잘라 이해할 수 없는 복합적인 정신운동의 총체이다.라는 것이죠.현정은 정확하게 내 생각의 문제를 지적해 주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미술을 포함한 서양미술이 지나치게 범주화를 즐겨하는 나머지 현대미술의 숱한 개념들이 각자의 방향성에 맞게 체계적인 범주들을 형성하는데,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이란 이러한 범주안에 빈공간을 찻는 일종의 학문적 연구활동(Wissenschaftliche Forschungsprojekt)가 아니겠느냐?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어요.오히려 이런 곳에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예술을 신봉하는것은 어찌보면 순진무구한 꿈이라는 것이었죠.그러기에 서양예술은 자칫하면 개념적 유희 혹은 실험적인 장난에 불과하며 우리의 예술관과도 전혀 맞지않는 무지하고 단순한 헛점투성이의 사고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까지 다다랐지요.마치 서양의학이 인간의 신체를 신체로만 제한하기에 생명을 이야기 할 수없다는 볼프강라입의 지적에서 온 서양 의학의 한계를 같은선에 두고, 인간의 신체를 생명과 우주로 이해하려는 동양적 사고에로의 전환을 설득력있게 주장할 논지를 얻은것 처럼말이죠.

현정은 거기에 또하나를 덫붗였어요.실험이 단순한 실험이 아닐 수 있고, 우리가 말하는 기의 단련은 곧 실험의 또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그안에서 예술가의 창의성을 찻는것 우리는 그것은 "도"라고 칭하고 이들은 "창의성"으로 부르는 그 어떤 힘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지요.

현정이의 말은 아주 일리가 있었어요. 정말 유럽의 미술관에 들어설 때마다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표현,실험에 정말 기가 팍팍 죽을 정도 였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이런 저런 말을 덫붙인다해도 피카소의 회고전에 걸린 많은 그림들을 보며 그의 창의성앞에서 두손을 들지 않을 사람은 없을거라는 거죠.그러나 저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회의적인 질문을 덫붙였는데,피카소의 전 생애를 흐르는 작가적 창의성이 때로는 브라크시기에 그렸던 그의 그림과 브라크의 그림들을 전혀 구분할 수 없을 때,무색해 짐을 느낀다구요 .서구미술의 집단적 발전과 범주화는 "예술의 종말"을 자초해온 전개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범주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합리적이고 극단적인 분석만이 가능했을테니까요. 저는 이러한 분석으로 나온 결과들은 당연 한계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들은 그떄마다 중심적인 속성을 버리지 못하게됩니다. 언제나 문제안에 들어있는 셈이죠.그것은 우리의 삶을 단순히 평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것입니다.꽃가루를 노란색이라고 확신하는 것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후 저는 현정이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 나역시도 지나치게 서양적 사고로 범주화된 예술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는 형태의 작업들을 찻기 시작했어요.그 예로 볼프강 라입의 작업을 찻아내게 되었어요.그의 작업이 가지는 정신성을 미술사적인 범주로 이해하려던 루돌프 자그마이스터를 무색하게 만들었죠.그의 작업에는 그 이상의 깊이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어쩌면 그가 그의 존재 ,그가 다루는 물질의 총체적인 의미성으로부터 그의 예술을 끌어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나서 저는 곧바로 형의 벤트라거에서의 작업을 생각했어요.오랜 수도원의 지난 유물들을 파헤쳐 거기서 나온 물건들을 형이 구운 도자기에 담고 그속에 담겨진 유물과 도자기가 다시 파손되어 그자리에 무너져 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작업 말이죠.역사와 삶이 느껴지는 비록 서양의 역사속에서 형,즉 동양인이 행한 작업이지만 이 작업은 깊은 형의 존재성과 형의 도자기의 존재성을 확증시켜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나는 형의 작업과 같은 것이 이들의 범주속에 담기 어려운 또하나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형과 함께 이야기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이후에 현정이와의 대화를 정리해 본겁니다.두서없는 이야기를 읽어주셔셔 감사하구요.언제나 그 모습그대로 형의 삶이 단순한 일상이 아닌 형의 존재를 드러내는 생명으로의 예술적 창의성안에 날마다 머무르기를 기원합니다. 이 내용은 형이 허락하신다면 인터넷의 제 홈에 올리고 싶군요.

백기영 올림.(독일의 현대미술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