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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메일메거진 2호 1999년


 

Christos와 jeanne-Claudes

CHRISTOS 와JEANNE_CLAUDES,벽(The Wall),1999


 

"포장작가"로 알려진 크리스토 부부가 독일의 오버하우젠의 공업용 가스 탱크를 빌어서 공간가로지르기 기법의 설치 "The Wall"을 선보였다. 크리스토 부부가 쌓은 장벽은 여러가지 색을 칠한 만 삼천개의 오일 드럼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의 45%가 노란색,30%가 오랜지색,그리고 전체의 2-6.6%가 그이외의 색으로 이루어지도록 고안했다.이 장벽의 높이는 26미터이고,68미터 폭의 구조물이다.또 이1927년 피터 베렌스(Peter Behrens)에 의해서 설계된 가스탱크는 오버하우젠지역에 가장먼저 생겨난 저장고로서 높이 117미터에총 216.5리터들이의 용량을 가지고 있었고,철판으로 만들어진 실린더모양의 관통형 건물이었다.과거에는 이 가스탱크를 코르크가스 저장탱크로 사용했다고 한다.이 가스 탱크가 송상복구된 이후로 IBA 엠숴 공원으로 포함되어 보다고상한 품격을 지닌 예술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기 시작 했다. ("불과 불꽃전(Feur und Flamen)"이 이곳에서 있었음) 그리고 이전시는 오버하우젠 성(schloss oberhausen)의 "란트 마르켄 예술(Landmarken- Kunst)"한 행사로 기획되어졌다.

 가스탱크위에서 오버하우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다가 독일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을 물씬 느끼게 하는 루어지역의 산업시설 공장 지대를의 풍경을뒤로하고 있었다. 이 가스 탱크의 10층에레베이터를 내려 난간아래로 내려다보면 크리스토 부부의 장벽을 볼 수있었는데, 루어공업지역의 한 가스탱크안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는 시각적 충격을 갖게 했다.사람하나 크기 정도의 석유드럼통이 마치 분필조각을 쌓아 놓은 것 처럼 작게 보였다. 이곳 10층에서 부터 관람자들은 천천히 내려오는 에레베이터를 타고 눈앞에 편쳐진 장관을 목격할 수있었는데, 아래에 내려와 올려다본 장벽의 장관은 위에서 본 것과는 정반대로 그야말로 나 스스로가 작은 한 인간임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었다.

 처음 크리스토가 이와 같은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1958/59년에 "포장된 오일 드럼통"작업에서 기인하는데,1962년에 파리의 Rue Visconti에 드럼통으로 쌓은 바리케이트"철로만든 커튼"에서 더 발전 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크리스토가 1966/67년 크뢰러 뮬러 미술관에서 설치했던 피라미드모양의 "56개의 오일드럼통"으로 이어졌고 1968년 카쎌과 오텔로 1973년 아브다비에서 오일드럼통 작업들을 선보였었다.그 중에 무엇보다도 뉴욕에서의 "담"과 "철로만든 커튼"에 서 가장 깊은 근원을 찾을 수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가스탱크의 지하층에는 크리스토 부부가 지난 1992년에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포장할때 있었던 일들을 자료화한 기록자료 전시가 있었는데, 1970년대 이후 환경을 대상으로 조각개념을 확장한 크리스토를 비롯한 환경미술가들의 집념과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높이 사게 했다. 10년이 넘게 독일의 정치가들을 상대로 로비활 동을 벌여 결국에는 자신의 예술을 실현해낸 크리스토 부부의 기록영화는 아주 감동적이었다.더욱 재미있는것은 크리스토의 베를린 국회의사당 포장 계획을 앞에놓고 저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앞세워 실랄한 논쟁을 벌이는 독일 국회의 안건 처리 장면이었다. 이미 독일에서는 자신의 정치색을 분명히 알수 있을만큼 정계의 유명한 인사들이 이와같은 예술가의 엉뚱한 계획에 대한 반응을 보면, 기민당의 보수적 정치인들은 포장이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무언가를 포장한다는 것은 은닉하는 것이요.부끄러운것을 가리는 일이다.'그런고로 독일의 정치를 상징하고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독일의 국회의사당을 포장한다는 것은 독일 민족과 독일 정치를 기만하는 것이고 이것을 허락하는 것은 독일 정치사에 남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민당 대표의 말은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토 부부에게 표를 던지는 것을 돕기에 충분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나는 우리시대의 예술이 어떤의미를 가지고있고 그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10년이 넘도록 굽히지 않고 아무도 인정하지않는 데도 불구하고 지켜나가 오늘과 같은 국회의 논쟁의 안건으로 삼을 수있다면 ,나는 그의 신념을 존중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15일동안의 베를린 국회의사당포장,.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포장된 예술가의 작품을 벗삼아 사진도 찍고 춤도 추며 한판 축제를 벌였다.그것을 위해 크리스토 부부는 그들의 청춘을 던졌다.처음 자신의 예술계획에 들떠 국회의사당을 찾았던 크리스토 부부는 젊음의 의기가 차 있었으나 완성된 포장을 보고 환히 웃는 그들의 얼굴에는 옅은 주름이 퍼져 있었다.지금것 나는 환경작가들을 환경을 바꾸는 확장된 개념의 예술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으나 다른 한편 그들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예술가에게는 정치적 수완이나 경제적 능력이 뒤따라야 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미학적 예술가적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인간에게 감동을 줄수있는 것은 신념을 가진 인간의 신념이 아닐까? 생각했다.

 쿤스트 포름의 안드레아스 댕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그의 작업에 있었던 정치적 파괴력이 사라졌다.오늘날 그들의 설치작업을 위한 동기부여는 상징적 기능과 함께 진부한 것이 되었다.크리스토가 만든 파리 시절의 Rue Visconti에 마든 벽은 알제리 항쟁에 격분해서 무명의 반 파시스트가 벽 에 쓴 단어"파시스트는 지나갈 수없다!(Le Fascisme ne passera)" 바로 그자리에 설치한 "비웃는 커튼"이었다. "그리고 그당시의 여러 미네랄 원료회사의 빈 오일 드럼통의 사용은 마지막을 만났다.손톱자국하나 나지 않은 번쩍이는 오일 드럼통은 사용된 흔적도 없고 재활용을 기다리고 있다.관객들이 보다더 잘 감상할 수있도록 하기위하여 리프트를 설치하고 , 내용적인 의미과 설치의 형태 또한 상대화하고 ,100미터 의 높이가 깡통의 집합을 감동적으로 보여 주는것, 얼마나 관람자에게 친절한 행위인가? 1962년 그가 파리의Rue Visconti에설치 했던 깡통들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최소한 그의 깡통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하여 혁명적 차단을 의미했었다.그들의 카타로그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다."우리시대에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는 우리산업의 기초적 에너지를 위하여...

날카로운 잡지사 기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서 지금의 크리스토와 같은 작가들이 있게하는 서구의 미술계와 비평의 힘을 절감하게 되었다.형식주의적비평의 시각에서 보면 크리스토부부의 오늘의 작업은 과거의 작업을 더욱심화 발전시켜 미적 기교의 세련됨과 확장된 스케일,그리고 적합한 공간의 설정과 그 기법면에서 대가 다운 설치의 새국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를 칭찬할 수있다.그러나 그의 개인사와 그의 작업에 스며있는 정치적 기질들을 제대로 읽고 그를 칭찬해왔던 이에게는 안들레아스 댕크에게서와 같은 아쉬움을 갖게 하는 작업이었다.


  크리스토 부부의 장벽 작업과 일본과 미국에서 파라솔을 설치한 환경작품 을 담은 카타로그의 표지
 
 
  크리스토 부부의 벽앞에서 우리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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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Mail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1999-11-02호
발행원 : 백기영
독일의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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