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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물 1호 5월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전해 드립니다.회원등록을 하시면 전시와 관련해서 혹은 현대미술관련 여러가지 테마의 발제,그리고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등 다체로운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돈과 예술

테마와 관련해서 메일메거진 다섯번째 주요요소 (Das fuenfte Element-Geld oder Kunst)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jean luc cornec,one Money,일 달러짜리 지폐위에 덫그림.

발제를 시작하며

내가 클럽의 토론 첫번째 테마로 "돈과 예술"을 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유학을 처음 나오던 1996년 가을학기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예술을 해보겠다는 의지에 부풀어 있었던 나는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테마와 그에 걸맞는 기술을 배워 스스로 내 작업을 쓰고 그 작업이 읽혀 지는 이른바 새로운 예술어법에 맞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당시 국내에 많은 작가들의 작업들이-지금도 별다를것 없는 상황이겠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혹은 형식주의에 치우쳐 있어서 한가지 모티브를 발견하면 그것의 조형적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예술로서 정당성을 갇고 있었고 ,새로운 예술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서구미술의 단순한 형식적 차용에만 머물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예술이 가지는 콘텍스트를 읽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고,그게 된다면 나는 스스로 내 작품을 쓰고 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리고 작업의 새로운 언어들을 배우기에 열중하면서 그리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작업을 공개하면서 내작업을 이제 나는 좀 이해할 만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중에 하나는 "님의 작업을 한국에서는 이해하지 못해요.보통사람도 물론이고 ,미술계의 종사자들도 모두에게 한마디로 독일에서 유학하신 분들의 작업은 난해하고 어려워요.그리고 너무 독일적이고 개념적이죠."그리고 어떤이는 "독일에서 유학하신분들은 왜 독일미술을 하지요"라고 물어옵니다. 또 한편으로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졸업하신 학생들이 쿤스트아카데미를 들어 가기위해서 어려움을 겪는 반면에 지방대 출신들이나 한국에서 유명세와는 연관이 별로 없는 학교출신들이 아주 쉽게 합격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이걸 학력 파괴로 봐서 긍정적으로 보고 말것인가?아니면 우리 미술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독일식 기준을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의 출발점이었다.또한편으로 유학을 시작하며 나는 남관이며 이응로며 한국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어떻게 나에게 자리를 매겨야 할지를 고민스러워 했다.유럽의 화단에서 한국작가로 예술혼을 불태웠던 사람들...그들은 왜 서예를 추상화하고 동양화의 기법을 응용한 그림들을 그려야 했을까?나 스스로에게 젓어드는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이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갇게 했던 것이다.시간이 지나면서 왜 서구인들이 나에게 한국인임을 강요하고 있는지,혹은 나 스스로 한국인이어야 하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지를 생각했다.독일인이라고 서구미술계에서 독일미술을 해야하는법은 없을텐데도 말이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여기 학생들과 교수들로 부터 '한국적이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도 한국에서는" 독일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독일은 독일의 미술계를 구성하는 규칙이 존재한다.그속에는 우리와 같은 외국유학생들에 대한 오리엔탈리즘도 작용한다.한국에는 한국의 미술계를 구성하는 제도의 힘이있다.그 속에는 서구 미술을 보는 남다른 법칙이 존재한다.

결론은 제도가 가지는 차이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돈과 예술"이라는 테마 앞에서 왜 제도를 들먹일까? 하고 의하해 하실 분도 있겠다.우리의 미술을 제도론적 입장에서 기술하기에는 미비한것이 많고 우리미술제도는 더 비논리적인 것이 자리잡는고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이겠지만 본인은 이 테마를 통해서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 제도 ,화랑제도 등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우리미술계의 변화를 진단해보고 싶다.누군가 국제적인 작가가되기 위해서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작업과 서구 미술계의 필요를 충족시켜줄만한 접촉점을 찻아야 한다.나는 요즈음 한국 젊은작가들이 서구화랑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작가들의 작업실을 돌아보고 한국작가를 발굴한다는 정보에 혹해서 관심을 보이는 작가들을 보았다.그러나 독일교수들의 어설픈 진단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우리미술계는 아직도 서구의 70년대를 넘어서지 못한다.또한 누군가 우리미술계의 참다운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도 제도를 향한 투쟁의 고삐를 놓아서는 않되겠다.서구의 여성주의 미술운동이 미술관제도에 대항하여 지금의 지위를 누리기까지는 제도에 대한 투쟁이 필수적이었고,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운동이 제도로 흡수되어 실패한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이제 우리미술제도의 중요한 부분에 자리를 잡고 그들의 취향을 관객들에게 행사하고 있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제도의 확장

Global Human AG,Ethik Aktie,1993

한동안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걸어온 길을 정리하면서 아방가르드란 하나의 어린아이 놀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드랬다.아이들이 모여서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땅다먹기의 규칙은 한뼘으로 그어진 반원에 그것도 귀퉁이부터 시작해서 세번을 손으로 튕겨 반워안에 들어오면 돌아들어온 땅만큼은 소유하게된다. 일단 성공을 하면 계속해서 실패 할때까지 기회가 주어진다.어느날 아이들의 놀이판에 네오나르도 다빈치가 등장했다. 그는 세번의 기회는 너무 적다고 주장하며 다섯번으로 할것을 주장했다. 그래야만 더 정확히 땅을 먹을수 있다는것이 그의 주장이었다.그러던 어느날은 세잔이 나타나서는 그어진 사각형의 틀이 너무 작다고 우겨댔다.그래서 사각형밖으로 나가도 죽지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아이들은 놀기 시작했다.그것을 보던 피카소는 너희들의 놀이는 너무 유치하다 아예 우리 운동장 전체를 다쓰자고 배짱좋은 주장을 했다.아이들은 운동장을 휘집고 다니며 놀았다.그러던 어느날 뒤샹이 나타나서는 아이들이 운동장 전체를 쓴다고 재미있어 하지만 하고 있는 놀이가 땅따먹기 임을 보고는 이제부터 축구를 하자고 제의를 했다.온동네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차고 놀았다.그뒤로는 배구를 하자는놈, 농구를 하자는놈, 이제는 운동장 말고 집에서 놀자는 놈,동네를 다 쑥대밭을 만들자는놈,그동안 없었던 놀이들이 죄다 몰려 다니고 있다.이러한 현상을 빗댄 톰 울프의 "등집고 뒤어넘기"는 지난호 메일메거진에서 한번 언급한바 있었는데, 새로운 경향이 다가오면 그것을 뒤어넘은 또다른 경향이 다음시대의 예술계를 장악하는 현상을 정확하게 꼬집은 비유이다.예술을 이해하는 숱한 이론들이 있지만 예술제도론에 근거한 예술이해만큼 현실적인 것은 드문것 같다. 이와같이 20세기 미술사의 변화는 제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제도는 미술사의 변화와 함께 생존했다.

예술가상의 변화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예술가에 대한 개념은 반고호 같은 근대적 낭만적 인간상이다.예술가는 항상 고뇌에 잠겨 있으며, 그는 돈대신 예술을 택하고 빵을 사는 것보다 물감을 사는 것을 우선으로하는 고집스러운 인간이다.그는 예술에 관하여 처절하게 고민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때로는 광적이고 정신병환자처럼 보통사람과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이즈음 되면 하나의 종교가 가지는 도그마처럼 예술은 작가들의 순수성을 강요하게된다.이러한 예술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에게 누군가 그의 예술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자신이 서명만하고 내다 팔았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사기 행각이 어디 있겠는가?예술가는 개성이 가득한 고뇌의 상징인 예술품이 돈이라는 저속한 가치와 맞바뀐다고 하는 것 자체도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의 독창성을 가늠지을 예술품자체도 그의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가 의문스러운 것이다.뒤샹이 한 변기회사의 제품을 자신의 레디메이드라고 이름 붙여 전시에 출품했던 1919년 미국의 병기창고전의 충격이 아직도 우리에게 소화가 되지 않은채로 맴돌고있으며,한 모델의 몸에 서명을 한채로 자신의 작업으로 제시한 피에르 만조니의 괴기스런 행각은 그저 아방가르드의 한 웃지 못할 행각정도로 이해하고 말았던 것인가?예술가가 예술가 스스로를 창조적인 천재로 혹은 사회로 부터 인정받을 만한 존재로 대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재는 예술품을 신성시 하는것이고 예술품에대한 경의는 작품값을 터무니없이 결정하거나 예술품의 거래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츄어 예술가와 전문적인 예술가를 구분하는 기준에 경제적영향력을 무시할 수없다.그가 아무리 좋은 작품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그의 주요 생계 수단으로 예술품이 거래 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시대의 프로예술가가 될 수없다.일례로 독일에서 예술가로 체류하는 비자를 획득하려면 한해에 일정 금액이상을 예술품거래로 충당할 수 있어야 예술가 자격으로 독일에 체류 할 수있다.그렇지 않은 사람은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이러한 우리시대의 기준을 따르면 반고호는 역시 아직도 예술가의 대열에 들지 못한다.독일의 총체예술가 팀우릿츠는 하노버의 지방 세무청에서 "취미예술가"로 등록되었다.이유는 그가 예술가로서 정해진 작품판매액을 달성하지 못했기때문이다.

돈과 예술을 매개로 제도를 농락하는 작가들

쿤스트 포름이 정리하고 있는 돈과 관련된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함부르크 한 겔러리에서 자기가 그린 위조지폐를 관객들과 교환하고 있는 마리아 피쉬안

1920년 쿠르츠 슈비터즈는 "메르츠 쿤스트(Merz-Kunst)"라는 제목의 첫작업을 전시한다.같은방법으로 그는 자신의 시를 "메르츠 시(Merz-Gedichte)로 체계화 시킨다.그리고 잠시후에 총체예술성격의 설치작업을 하노버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메르츠 바우(Merz-Bau)"로서 제시한다.이 메르츠의 개념은 "콤메르츠 은행 (Commerz Bank)"의 콤메르츠에서 온것이다.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다다이스트들은 언어적으로 이미 완결된 소재(여기서는 은행의 이름)을 원초적인 의미를 벗겨내고 다른 의미화 해버린다.이 결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콤메르츠"라는 이름은 라틴어원상 "거래"라는 뜻에서 왔다.슈비터츠는 이 은행이 표방하는바 "쎅스는 먹는것과 마시는것 다음의 세번째 기본 욕구이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돈을 벌어들인다."라는 한스-디터 톰슨의 선언을 바탕으로한 거대은행의 영리행위를 우스꽝스러운 단어 장난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와같이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돈은 아주중요한 테마가 되었다.돈을가지고 보여준 작업중에 인상적인 작업들을 소개한다.팀우릿츠는 100마르크 짜리 지폐하나를 노르웨이 화폐 -스웨덴-덴마크-영국-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스페인-오스트리아-유고슬라비아-그리스-미국-카나다-멕시코-브라질-호주-일본-독일 화폐의 순으로 환전했다.1984년 같은 은행에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결국 6마르크 75페니히를 남기고 끝나게 되는데,이 작업은 "한스의 행운(Hans im Gluek)"이라는 독일 동화에서 처럼 더좋은 것을 찻아 바꾸고 또 바꾸고 하다보니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되었다는 이야기를 빗댄 작업이다.환전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오늘의 은행시스템을 교활하게 욕심장이 한스를 속여먹은 사람들에 비유한것이다.

그리고 함부르크에 사는 여류작가 Maria Fisahn은 1993년이래로 그녀의 위조지폐를 만들어왔다. 이 돈들은 독특한 색깔과 독특한 종이들로 만들어져 있는데 ,여기에는 그녀의 직인이 찍혀 있다."나는 나의 돈을 마르크나 달러와 맞바꿉니다.그리고 행위와 거래를 맞바꿉니다.그리고 나는 기록사진가,저술가,친구와 이방인에게 돈을 지급하고,도움을 주신분들이나 수고한 분들에게는 급여를 지급하지 않습니다.저는 돈을 선물로 드립니다.돈을 맞바꾼사람들과 선물로 준사람들의 명단은 엄청나게 길어요..."라고 말합니다.보이스로 부터 사사받은 그녀는 1996년까지 3년동안에 600장의 서로다른 돈모티브를 그렸고 비단과 종이, 헝겁따위에 찍어냈다.1996년에는 14번째 인쇄된 손수건을 찍었는데,이른바"돈빨래"였다.그녀의 작업은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긍국적인 목적이라고 말하면 너무도 현실적인 돈을 그리고 그돈은 곧바로 시장에서 유통가능한 형태로 바뀌버린다.예술가에게 주어진 합법이란것이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Lisa Brice,sex Kittens!,Chesp,1993

슈테판 미헬이 붙인 동전을 떼려고 애쓰는 신사.

1995년과 1996년에 슈테판 미헬은 1년간의 뉴욕 거주 예술가 지원금을 받고 뉴욕에 거주하게 되는데,이 기간동안 슈테판 미헬은 월스트리트의 번화가에 125쎈트 짜리 동전을 강력본드로 여기저기 붙여 놓았는데, 지나가는 신사들이 이것을 한번 떼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장면들을 모아 보여주었다.한 부랑배는 이 동전이 잘떨어지지 않자,망치와 연장을 들고와서 바닦을 두두리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화상과 관객

마사 로즐러의 글 마사로즐러,구경꾼 그리고 구매자 화상 그리고 제작자-관객에 대한 생각들은 미국 미술계를 구성하고 있는 제도상의 문제점과 그속에 얽혀있는 관계들을 분명하게 설명해준다.불경기에 화랑과 구매자들의 변화 인플레가 다가오면 구매층은 안전한 작가들 유명세가 있는 작가들에게 몰려든다.어떤 화랑과 미술관들은 새로운미술을 의도적으로 지원하는데, 그들은 몇년후에 그 분야의 정보나 작가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관객의 취향은 화랑과 미술관에 의해서 조작되어진다.미술잡지사들은 화랑들에 의해서 통제되는데, 이유는 미술잡지사들이 그들의 광고에 의존하고 있기때문이다.대기업은 미술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그들회사의 로고를 자랑하기를원하고 작가는 그들회사의 자랑이된다.

결론

예술가들의 토론거리중에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미술계의 비화라든가?제도가 가지는 문제에 대한 비판들이다.그들은 자신의 예술혼을 불사르기이전에 돈과 관련된 수많은 비화들을 들먹이며 의기소침해하거나 예술논의를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사실 건설적인 예술논의를 형성할 여유가 없었던 우리의 미술계에서는 더더욱 제도문제를 이야기하면 미협이나 정치꾼들의 예술과 무관한 논쟁거리 즈음으로 미루어버리기가 쉽다.그러나 서구의 미술계에서 우리가 예술가들이 이와같은 제도의 틈에서 자신만의 놀이를 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미술제도는 또다른 전환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뀐다.제도는 오늘날 예술가들의 좋은 작업장이고 운동장이다.우리나라와 같이 아직 제도적 기틀이 명확하게 형성되지 않은 문화적 기반에서 제도의 건설적 기반들을 마련해 갈수있다면 이것으로 우리의 논의는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발제가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 화랑제도를 언급하는 수준에서 머물렀고 다른 글들을 조합해서 정리한것에 불과하다.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분석이나 이론적 비평을 조합한 국내 미술계의 체계적인 연구작업들이 진전되기를 기대해본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참고문헌

다섯번째 주요요소 돈이냐 예술이냐?전시의 카타로그 ,Das fuenfte Element-Geld oder Kunst.jan.2000,dunont.(독문)

juergen raap,Kunst forum international 149 호 ,테마 -돈의 운명,중에서 mony makes the world go round( 돈이 세상을 돌린다.).(독문)

juergen raap예술과 자본(kunst und Kapital),.(독문)

마사로즐러,구경꾼 그리고 구매자 화상 그리고 제작자-관객에 대한 생각들,시각과 언어,1998년 이영철이엮은 현대미술지형도의 444-478 페이지. (국문)

강태희,워홀에서 드렐라 까지:엔디워홀의 유산,(현대미술의 문맥읽기 ),1995년 미진사.(국문)17에서 34페이지 까지

 

위의 테마 "돈과 예술"에 관한 클럽토론회가 클럽대화방에서 2000년 5월 31일 수요일 독일시간으로 오후 3시 한국시간으로 저녁10시에 있습니다.클럽의 회원이 아니신분들은 회원가입을 하셔야 합니다.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대화방에서의 토론자료는 다시 메일메거진으로 발송됩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물 1호 5월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전해 드립니다.회원등록을 하시면 전시와 관련해서 혹은 현대미술관련 여러가지 테마의 발제,그리고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등 다체로운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