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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0년11월 작가연구 11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을 우리눈으로 읽고 우리의 시각을 찾고자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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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구 11호

에바와 아들레 Eva and Adele

독일의 작가연구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됩니다.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하고 있습니다.

 

바와 아들레가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80년대 후반이다 .1988년 여름에 찍힌 사진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그 이후로 이들은 미디어 안의 거주자로 중요한 미술행사 때마다 보게된다. 마르쏄 뒤샹의 "과연 우리는 비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들은 공동의 삶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그들의 신체수치는 알려져 있어도 그들의 비오그라피는 알려지지 않았고,지금까지 예술논쟁이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현대미술에 대해 기술하는 저술가들이 에바와 아들레를 포함시키지 않았고,그들의 작업은 결국 그들의 출현이었다.어떻게 자신을 미디어화하는가?그리고 대형 미술전에 출현 하는 것이다.주로 그들이 살고 있는 베를린에서 자주볼 수 있었다.1991년 봄에 그들은 처음으로 그들의 신체 출현으로 부터 벗어난 예술작품을 출품한 전시에 참여했다.파란 받침에 한 폴로라이드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아무것도 아닌 그리고...)이란 제목으로 :니콜라우스 존네 갤러리 베를린.그들의 두번째 전시는 1996년 세대의 슬라이드 프로젝터설치였는데,동시에 알수 없는 사진들이 벽에 쏘아졌다.(90년대 시점으로본 코불렌즈 풍경이란 제목으로 베를린에서 있었다.그리고는 모든 다른 전시들은 지금까지 거부해 버렸다.요즈음 처럼 전시 행사가 작가들에게 중요해지고 도 이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를 선정하는 큐레이터나 전시 기획자들의 권력이 강해지는 때에 이들처럼 세계 주요미술 행사에 초청장 없이도 참가하며 그 어느 작가들 보다도 주목을 받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살고 작업한다.거기에 따른 기록이 존재한다.행위적인 실제에 대해서 말한다면 에바와 아들레는 거기에서 제외된다. 왜냐면 그들은 논스톱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예술작품은 그들의 삶이다.그들의 의상은 시대를 추정하기 힘들고 소비문화나 성구별 조차도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분명히 여성적 속성을 의상(코스츔,호화로운 장식,진주 ,화려한 장신구)을 통해서 전달하며 ,오히려 성적으로 무감각한 속성을 (대머리,화화로서의 화장술)을 통해서 전달한다.그들은 절대 바지를 입지 않고,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항상 아주 진지함을 동반하며 ,그러는 동안에 항상 미소를 띄고 있다.대화를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표시한 적이 전혀 없었다.그들은 서로 보충해주거나 아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을 말하곤 했다. 에바는 때로 아들레의 이름으로 말하기도 하고 아들레는 또 에바의 이름으로 말하기도 했다. 아무도 그들을 서로 따로 다니는 것을 본적이 없다.그들의 "동류 의식"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에바와 아들레로 구분해서 기록하는 것을 피하고 아래와 같이 인터뷰를 기록한다.

"당신들의 이름 에바와 아들레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비슷하군요 .그런데 당신들은 언제 만났습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미래에서 부터 왔고,과거로 부터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비오그라피는 우리의 작업이지요.우리가 있는 어느 곳이든지 그러니까 미술관인 셈입니다. 우리는 오래 아는 사이면서도 동시에 여러해 동안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만남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어떤 결정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교육과 디플롬 학위를 포기햇습니다.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의 공동생활을 예술품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당신들은 통상적인 비오그라피와 아주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던데요?"라고 묻자,"그것은 작가의 약력을 근거로 작가를 신뢰하는 미술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습니다.우리는 결국우리의 공동작업을 신뢰합니다.우리의 그동안의 활동에서 나온 164개의 그림액자는 앞으로 다가올 에바와 아들레의 조형물이 되었습니다.그전에 만들어진 모든 작업들은 베를린에 있는 적당한 장소로 보냈습니다.거기는 "자유 넘버 24Freiheit Nr 24"입니다.그것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지요.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태워버리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FUTURING"입니다."

"그때부터 당신들은 예술적 인물인 "에바와 아들레"로 살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에"예,우리가 예술품으로 들어내고 주장하는 우리외모의 추상적인 형태는 각자의 성별 정의에 대한 권리를 확고히 합니다.이것이 우리의 출현과 우리삶의 중심사상입니다.에바와 아들레는 우리의 사생활이지요.우리는 예술가입니다.에바와 아들에라는 작품은 우리가 이중으로 그리고 우리의 출현의 예술성으로 전달되는 그림들을 기초로합니다.우리는 이작업들이 불분명하게 이해되어지는 그런 특정요소들을 포기했습니다.우리는 길거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지나다는 행위 혹은 우리가 서로 다로 다니는 행위를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자기절제를 요구하는 구속이며 동시에 자유입니다.우리는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기에 우리는 이 구속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오히려 반대로 이런 구속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 보여 줍니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통해서 미디어 공간:완전히 측량불가능한 분야 ,에 다다랐습니다."하고 묻자"우리는 그저 나타납니다.그리고 사진을 찍도록 내버려 두지요.이 전시는 미디어안에서 진행됩니다.그러나 사진사가 자기아이에게 우리의 사진하나를 보여주었고, 그리고 또한 예술관련기사에도 실렸습니다.우리는 대중매체와 개인사진을 구별하지 않습니다.중요한것은 그 사진이 생겨났고 또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에바와 아들레의 여행

에바와 아들레가 여행을 하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당신들의 우주선은 어디있소?" 혹은"어느 혹성에서 오셨소?" 모든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처다봅니다.

에바와 아들에(그들은 미래에서 왔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캠핑.

히피시대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다.캠핑버스로 여행을 하는 것은 단지 재정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것이다.우리는 이 위대한 여행을 이렇게 보잘것 없는 자동차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캠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긴장을 유발시켰다.왜냐면 우리의 출현준비,메이크업과 의상,이 모든 것이 백프로 똑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지 않으면 일상적인 캠핑복차림으로 출현했으리라.이런 상황은 아주 많은 고행을 감수해야 했다.좁은 캠핑버스안에서 자라나는 털을 주기적으로 깍아주는 일과 또 피부관리를 하고 메이크업을 해야하고 옷들을 입고 이것들을 나르는 일들말이다.우리의 모든 짐들은 우리가 생각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두 이 버스안에 들어갔다. 그것은 우리가 아주 잘 정돈하고 꼭꼭 싸두어서 가능한 일이었다.여름에 우리가 그늘진 장소를 얻지못해 태양이 곧바로 내리쬐는 자리에 서기라도 한다면 차안은 섭씨 40도가지 올라가고 우리의 모든 일상사를 끝장낼 지경에 이른다.그러면 우리는 아침일찍 일어나 어디로든지 돌아다니다가 아주 늣은 저녁이 되어서야 견딜만한 온도가 되면 차안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이것은 아주 불편했다.

호텔.

호텔방에서는 모든 옷들을 어디든 앉을것 아래로 처리해 버릴 수가 있다.그리고 따뜻한 목욕을 즐길 수가 있고 다른 공간들을 돌아다닐 수가 있다.이것은 캠핑장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지금가지 우리가 겪었고 보여주었던 고행들은 캠핑버스안에서 진행되었던 것이고 ,이것은 아주 신경을 곤두세워 항상 물건들을 정돈해야 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요구했다.왜냐면 우리들의 공동생활이 아주 서로 밀접되어 있고,아주 쉽게 위기를 가져 올 수있기 때문이다.그렇게 보면 캠핑은 아주 엄청난 어려움 이었다.우리는 캠핑중에 주의해서 보았다.사람들이 아주 엄청나게 싸우고 가족파탄으로 까지 이르는 것들을 ,우리는 캠핑을 하며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엄청난 요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오랜시간을 이렇게 여행하며 눈에띄는 출현을 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벌써 아주 쉽지 않은 삶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도중에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변화를 주었다:우리의 처음 시작은 캠핑형태의 여행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부분적으로 전시에 초청을 받고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우리가 초대가 되면 우리는 그 도시에서 가장 비싼 방에서 머무를 것을 요청합니다.그리고는 우리는 체험을 하지요 이런 사치스런 생활과 모든 안락함 것들을 갖춘 부유함과 집도 절도 없었던 캠핑장에서의 생활이 주는 대조적인 느낌들을..

집도 절도 없는 신세.

이렇게 신경을 곤두 세우고 항상 주변을 정돈해야 하는 삶임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돌아와 잠을 잘 수있을 때 까지 우리는 어딘가 다른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을 줄곧 받곤 했다.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11월의 "아트 콜로네"에서 열시간을 버틴다는 것을,날씨는 엄청 춥다.우리는 우리 대머리가 잘 보호되고 있는 지 항상 주의해야 하지요.아무것도 없이 떠돌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쉽상이지요.그렇게 떠돌다가 쾰른을 조금 벗어난 캠핑장에 도착하면 차는 꽁꽁 얼어 있고, 먼저는 차에 난방부터 해야 하지요.이런 때면 우리는 차안에 말 없이 앉아서 "오 맙소사 ! 우리는 참 가난한 예술가들이구나!" 이런 화려한 메쎄에서의 축제와 일상에서의 추위가 주는 대조는 아주 극단적인 것이었지요.그러고 나서 잠자리에 들면 누워서 자동차 의 두껑창 사이로 나무들을 보고, 거친 바람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마치 밖에 누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우리가 차에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차가 동시에 아주 집처럼 편안하고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아도 우리는 집도 절도 없는 신세라는 처량한 느낌이 들게 되지요.

이런 "내집처럼 편안함"이란 단어에 또다른 설명 : 우리가 낯선 지역을 여행을 하며 전혀 알지 못하는 지역에서 위험을 감수하게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동떨어진 상황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여행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정말 은폐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그들은 여행복장을 하고 다른 여행객들의 부대속에 합류합니다. 그리고는 단지 그들의 국적만을 간신히 인식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자신을 노출한 채 많은 수의 사람속에 섞여 버립니다.에바와 아들레가 여행을 하면 사람들은 묻습니다."당신들의 우주선은 어디있소?" 혹은"어느 혹성에서 오셨소?" 모든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처다봅니다.

이방인은 우리 스스로가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낯선지역에서 낯선사람들과 그리고 낯선문화를 아주 빨리 배워야 했다.안전하게 여행을 하기위해서라도..캠핑버스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기능을 했다.그것은 우리가 회복하기 위해서 언제든지 다시 그리로 기어 들어갈 수 있는 모태와 같은 기능을 했다.우리는 낯선세계의 밖에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의 믿음직한 안식처를 이 안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우리는 이 버스안에서는무엇이 거기에 존재하는지 모든 것을 안다.우리는 우리의 식기들을 가지고 있었고,우리가 일상적으로 필요로하는 용품들이 있었다.그리고 우리는 더우기 매일 우리의 시각적인 일기로서 자동차 폴로라이드사진을 차안에 붙였다.

결론

오늘날과 같이 미술이 작가 개인의 체험의 한계를 넘어서 집단화 하고 더 나아가 국제적인 미술행사들이 기획되어지는 때에 이러한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자나 큐레이터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이런 행사에 초대 받지 못한 작가들은 이런 무대에서 자신의 예술을 이야기 할 기회를 얻지 못하며 예술가들은 항상 이들의 은혜를 입어 자신의 작업을 보이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에바와 아들레는 이런 행사에 초대받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상관하지 않고 거기에 간다. 그리고는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들여다 보던 관람객들의 시선을 뺏어 버린다.(사실 이제 그들은 이런 국제 행사에서 서서히 초청장을 받고 있다.)그리고는 이 행사를 취재하던 취재기자와 미디어를 상대로 취재하도록 유혹한다.결국 이 행사의 어떤 작업들 보다도 그들은 주목을 받게 되며 유명해지고 싶고.주목받고 싶은 작가의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이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대단한 비판을 유발할 곡예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작업이 아닌 다른이로 부터 그려진 그림이나 찍혀진 사진을 작업으로 끌어온다.그들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사진과 편지들이 그들의 삶을 증명해주는 증거가 되고 이들은 동시에 예술품을 제작하는 작가가 아니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그들의 작품으로 제안할 근거들을 제시해 준다.눈에 띄는 예술가 ,에바와 아들레를 아는 사람들은 그들과 사진 찍기를 즐기고, 찍힌 사진들은 하나의 추억으로 자신의 사진첩과 에바와 아들레에게 보내지게 된다."미디어 조각"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그들의 작업은 보이스의 "사회 조각"과 매우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길버트와 조지의 "살아 있는 조각"과 비교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아주 단호히 "우리는 길버트와 조지처럼 강박관념을 가진 "삶의 조각"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으로서의 예술"을 추구할지언정 "살아있는 조각"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거부해 버린다.나는 에바와 아들레의 작업을 통해서 워홀이 미디어 안에서 자신을 스타로 성공시켰던 전략의 다른 독일적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의 작업은 서구미술계의 제도가 가지는 한계를 공격한 단적인 예이다."미디어 조각" 은 "사회조각"의 다른 표현이지만 더 "미술제도 조각"이라는 불순한 이름에 더 가까와 보인다.길버트와 조지가 예술의 한계성에 대항한 일종의 비예술로서의 얼굴에 부론즈 칠을 한 "노래하는 조각"은 이들의 확장된 개념의 작업에 비교하면 정말 유치하게 여겨진다.조각품처럼 뻣뻣하게 서있으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그러니 그들의 강박관념이 담긴 "노래하는 조각"은 에바와 아들레 앞에서 "가엽은 조각"이 되고 만다.당시 예술개념과 제도에서 충격적이었던 그들의 행위는 이제 "가렴한 행위"가 되어 버렸다.그러나 최소한 내게 있어서 에바와 아들레는 길버트와 조지의 또다른 강박관념을 들어내준다. 그것은 워홀이 죽을때 까지 미디어 앞에서 마치 자신은 하나의 코카콜라 병인 것처럼 ,산업사회의 소비품의 하나인것 처럼 연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죽기전에 자신의 제산들을 교회에 기부했고,그의 거짓말들에 스스로 가책을 느꼈던 예술가의 삶을 보면서 ...그는 "삶으로서의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지배받는 삶"을 살았다는 앞뒤가 바뀐 가련함을 느낀다."예술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바와 아들레에게 진정 그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이번호에 실린 에바와 아들레에 관한 기사는 쿤스트포름 136호 "여행의 미학"에 실린 페터 헤업스트로이트와의 대화를 인용 ,번역한것입니다.에바와 아들에의 여행은 137호 "예술가여행 부도"에 실린 " 노마디스무스(방랑자)와 사치 사이"를 인용 ,번역한것입니다.

* 작가연구에 자료가 필요하신분들은 메일주세요.함께 연구하고 배우는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이 되겠습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2000년 11월 작가연구 11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발행원 :백기영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m/k.pe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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