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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메일메거진 14호 2001년 02월호


다른 모습의 나. 20세기 말의 예술

Ich ist etwas Anderes Kunst am Ende des 20. Jahrhunderts

첫번째호

뒤쎌도르프 쿤스트 잠물룽에서

유우숙(뒤쎌도르프대 미술사.)

*옆의 그림을 클릭하면 뒤쎌 도르프 쿤스트 잠물룽으로 연결됩니다.


올해 2월 19일부터 6월 26일까지 뒤셀도르프의 Kunstsammlung에서는 또 다른 나 또는 다른 모습의 나란 의미로 번역할 수 있는 Ich ist etwas Anderes 라는 제목아래 전 전시관을 채운 거대한 전시가 진행되었다. 전시의 제목, Ich ist etwas Anderes 란 문장은 불란서 시인 Arthur Rimbaud 가 17세에 그의 옛 웅변 선생님앞으로 보낸 편지에 쓴 유명한 귀절 "Je est un autre" 를 인용해서 독일어로 조금다르게 번역, 사용되었다.

어느 누구나 적어도 한번쯤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기가 바뀐 급변하는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복제가 가능하고, 인터넷 속에선 무수하게 가장된 존재들이 우리의 현실생활을 혼란케한다. 이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문제는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으며 예술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60년대 이후, Pop Art와 Fluxus 운동과 함께 등장한 자기표현의 다양한 형태들은 전통적인 자화상의 형태를 벗어나게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제작되어진 자아, 정체성을 다룬 여러 다른분야의 작품들 즉 회화, 조각, Body Art와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그리고 비디오 작품 들이 선을 보였으며, 작가들이 자신의 모습을 단순화 시키는 것에서부터 변형 파괴시키는 과정까지 여러 예술적인 가능성의 영역안에서 자신의 나(자아)를 나름대로 각기 다르게 나타내려고 시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예를 들면 가상의 이력서를 사용해서 제 2의 자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자신을 반영해 본다거나, 많은 수로 복사된 자아 속에서 또는 변형된 자신의 모습속에서 은밀히 자신의 자아를 해채 해 보려는 시도들, 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속에서 볼 수 있는 임의의 한 인물을 등장시킴으로 해서 잊혀질 수도 있는 자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자리에선 그곳에 전시되었던 모든 작품들을 다 소개할 수가 없으므로 본인 임의로 작가들을 선별했으며, 특히 비디오작품과 그를 이용한 설치작품들은 그 공간에서 관객이 직접경험을 하지 않으면 작가가 의도하는 효과를 최대한 전달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설치장면만을 슬라이드를 통해서 전달해야하는 단점을 아쉽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의 홍보역활을 했던 다니카 다키치(Danica Dakic)의 작품을 첫 작품으로 전시를 돌아 보도록 하자.

1) 다니카 다키치(Danica Dakic)의 자화상(Autoportrt)

다니카 다키치(Danica Dakic)는 1962년 옛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의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88년부터 2년간 뒤셀도르프의 미술학교에서 수학 그 리고 그곳에서 작업을 하며 살고있다. 자화상(Autoportr t) 이란 제목의 1999년에 제작된,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 설치된 이 비디오 작품에서 우리는 한 여인의 초상을 볼 수 있으며 눈 의 위치에 눈 대신에 또 하나의 입 그러니까 위 아래로 두 개의 입을 가진 얼굴을 볼 수 있다.

거대한 화면 앞에 서면 이 초상의 두 입에서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다카치는 자신의 눈을 덮는 마스크화장을 한 후에 동화 이야기하는 모습을 비디오 촬영했으며, 그 후에 얼굴의 약간 어색한 형태를 컴퓨터로 다시 약간 교정을 하고 작업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보는 것 대신에 말하는 것을 강조한 이 작품의 두 입은 독일어와 유고슬라비어로 각기다른 동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디오 촬영을 위한 마스크 다니카 다카치 Autopotraet,1999

독일어로된 동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흉내를 잘내는 어느 한사람이 아무도 살지않는 곳에 마른 풀들로 집들을 지어놓고는 마치 사람들이 그곳에 사는 듯이 그 집들 앞에 불도 지펴놓고 각 집에 들어가 각기 다르게 즉, 웃고 우는 아이의 목소리로 또는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로, 할머니의 목소리 등으로 흉내를 냈다. 이 소리들을 들은 어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 사람만을 보자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 흉내를 잘내는 사람은 자신외에는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대답하지만 그 사람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그때 이 흉내를 잘내는 사람이 하는말: 당신의 귀를 믿지 말아요. 잘못 들을 수 도 있잖아요. 눈을 먼저 믿어요. 눈은 속이지 않아요. 여기 나외에 또 누군가를 볼 수 있어요? 이 동화의 내용은 시각과 청각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감각의 확실여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 작품앞에 선 관객은 마치 이 동화 내용속에 등장하는 지나가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한 얼굴에서 두 목소리를 듣게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동시에 그렇게 함으로 그 사람들에게 그들의 감각을 확실케 해준 흉내를 내는 사람을 작가와 비교할 수 있다. 유고스라비아(보스니아)어로 이야기되는 동화도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기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관계가 있다. 온갖 나라에서온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존재하는 섬에 한 표류자가 등장함으로서 그동안 평안했던 섬의 조직이 파괴된다는 내용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옛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적인 상황도 다룬듯하다.

2) 소피 칼(Sophie Calle)의 자서전적인 이야기(Autobiographische Erzaehlungen - Der Ehemann)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파리근교 말라코프와 뉴욕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이 전시에서 칼은 크게 확대되에 액자에 들어있는 흑백사진 아홉 개와, 그 사진의 내용을 설명하는 작은 액자들을 전시했다. 칼은 1989년 뉴욕의 한 빠에서 한 남자를 알게되며, 1992년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같은 해에 헤어지는데, 그녀는 그 사연을 간략하게 설명해서 사진과 함께 전시했다. 옆의 사진은 전시된 상화의 사진이면 조그만 액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1.만남:1989년12월 어느 빠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뉴욕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는 내게 자기집에서 묵으라고 제안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는 자신의 주소와 집 열쇠를 주고는 이내 사라졌다. 그날 밤 그의 침대에서 혼자 보냈다. 우연히 담배갑 밑에 놓인 종이를 발견했는데 그위에 '새해의 결심:거짓말 하지 않고, 물지 않기' 이것이 내가 가진 그에 대한 유일한 자료였다. 파리 도착 후 나는 그에게 고맙단 인사의 전화를 했다. 그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했고, 그래서 우리는 1990년 1월 20일 아침 아홉시에 파리의 오를리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오지 않았다. 1991년 1월 10일 열 아홉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그렉 쉐퍼드요. 오를리공항에 한해 늦게 도착했오. 날 만나 주시겠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2.볼모: 나는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첫 약속에서 그는 일년을 늦게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가 돌아가려 했을 때 나는 그가 다시온다는 보장을 하는 것 무엇인가를 주라고 요구했다. 일주일 후에 그는 내게 19세기에 그려진 작은 그림을 보내왔는데; 그림제목은 '연애편지'였고, 의아하게도 나와 닮은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은 제일 소중한 물건이었다고 그는 내게 적었다. 그 다음해 1992년 1월 18일 우리는 반지 두 개를 빌리고, 증인 한사람을 구한 후에, 라스베가스의 604번가에 있는 "Drive-up- wedding-window"에서 결혼했다. 결혼선물로 난 그에게서 그 그림 '연애편지'를 받았다. 내겐 단지 남편만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머문다는 사실을 보장하진 못했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3.싸움: 1992년 3월 10일 화요일 11시 그는 내얼굴을 향해서 다음의 물건들을 던졌다: 빈 주전자, 조그만 도마, 둘이 앉을 수 있는 노란 소파, 방석네개, 부르스 나우만 카탈록 그리고 약한 벽에 구멍을 낸 까만 전화. 그리고 나서 난 그가 내게 요구한 순종을 하는 수 밖에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13시경쯤엔 언제 싸웠냐는 듯 했지만, 벽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흔적을 없애기 위해 나는 우리의 결혼사진을 그위에 걸었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4.건망증: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자세히 살펴볼 수 는 있지만, 남자들의 눈동자 색이라든지 성기들의 형태나 크기들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것들을 익혀두는 것이 결혼한 여자의 의무라고 항상 다짐했다. 한심한 건망증과 싸워 이긴 보람:그가 초록색 눈동자를 갖졌다는 사실을 난 이제 알고 있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5.라이벌: 그에게서 편지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어느날 난 흰 종이위에 "소피"라고 씌인 내 이름을 읽었다. 가슴이 부풀었다. 결혼식 후 두달이 지난 어느날 그의 타자기 밑에 있던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종이를 살짝 쳐들었을 때, "지난밤 네 편지와 사진에 키스한 사실을 네게 고백해야해"란 문장이 눈에 띄였다. 난 종이를 좀더 들쳤고 "너는 첫 눈에 반한 사랑을 믿느냐고 내게 물었었지. 내가 대답을 해줬는가?" 란 문장을 읽었다. 이 편지는 내게 씌여진게 아니었다. 맨 꼭대기에 H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그 H자에 줄을 그어 지우곤 S자를 써 넣었다. 이렇게함으로 마침내 난 내가 한번도 받지 못했을 연애 편지를 받았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6.가짜 결혼식: 라스베가스를 지나다가 길가에서 한 즉석 결혼식에선 내가 다른 수많은 여자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은밀한 소원, 즉 웨딩 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이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말라코프라는 동네에 있는 교회의 계단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기위해 1992년 6월 20일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우리는 진짜 시장을 모시고 가짜 시청에서하는 결혼도 했으며, 결혼축하 파티도 했다. 쌀, 사탕들, 흰 면사포,... 빠진게 하나도 없었다. 이 가짜 결혼식으로 나는 내삶의 참 역사를 완성했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7. 불화: 그는 영화만드는 게 꿈 이었고, 난 그와 함께 미국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와 함께 떠나기 위해서, 나는 그에게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 둘에 대한 영화를 찍는 것은 어떻냐고 제의 했다. 그는 동의했고, 우리는 1992년 1월 3일 그의 회색 캐딜락을 타고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9개월 후,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때였다. 영화촬영은 아직도 완성이 되려면 멀었던 때, 나는 차안에서 앞으로 의자를 끌려다가 그밑에서 까만 플라스틱 봉투를 발견했다. 그 속엔 그렉이 손으로 직접써서 H라는 사람에게로 보내졌던, 모두 1992년의 발송날인이 찍힌 24장의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 그 편지들이 왜 다시 그렉앞으로 돌아왔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는 차안의 의자밑에 그 편지들을 숨겼던 것이다. 그 편지들을 다 읽고나서, 그중 두 장의 편지는 내가 뺐다. 한 편지엔 "10월이 되면 난 자유로운 사람이 돼" 그리고 다른 편지엔 "네게로 향한 열정이 없었다면 소피와 나사이에 애는 생기지 않았을꺼야" 라고 씌여 있었다. 나는 그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루도록 도와줬는데 그는 나대신 다른사람에게 고마워 했다. 몇일 후에 그는 "소피, 당신이 내 삶의 한 부분이 될꺼란 사실을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과 당신은 내게 이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란 것을 알아주길 바라오."라고 씌여진 편지를 내게 전해 주었다. 난 그 말을 믿을 수 가 없었으며, 그의 말대로 이뤄지게 해주자고 결정했다: 10월이 되면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야.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8. 이혼: 나는 내가 남자인 상상을 한다. 그렉을 그 사실을 얼른 알아 차렸다. 그래서 였는지 내게 오줌을 누여달라는 제안을 했다. 그것은 우리의 의례행사가 되었다. 나는 그의 뒤에서서 손이 가는대로 바지의 단추를 풀고, 그의 성기를 꺼내서 제대로 잘 잡아 소변을 누인다. 그후 다시 잘 제자리에 집어 넣고 바지의 단추를 마저 채우는 것 이었다. 헤어진지 얼마 안되었을 때 내가 그에게 그 의례행사를 기념촬영 해놓자고 제안했고, 그도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Brooklyn에 있는 사진 스튜디오의 카메라 앞에서 그를 도와 플라스틱통안에 소변을 보게했다. 그 날 저녁, 나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소피 칼 ,자전적 이야기(남편).1992

 

 

9. 다른 남자: 그 사람 내 맘에 들었다. 그러나 첫날밤 이후에 그를 바라보는 것이 두려웠다. 난 아직도 그렉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 사람은 내 침대에 적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내가 쫒기것에 겁이났다. 난 눈을 감기로 했다. 어둠속은 무서웠다. 어느날인가 난 내가 왜 침대속에서 눈을 감지 않으면 안되는 지를 말해버렸다. 그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몇달 후, 내가 드디어 그렉의 환상에서 벗어 났을 때, 그때부터 나는 그 사람을 제대로 보려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날이 마지막밤이 될 줄을 난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은 가 버렸다. "돌변하는 일들은 어쩔 수가 없을뿐 아니라, 왜 일어났는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이글은 4회로 나뉘어서 연재될 예정입니다.그 중 첫번째 호를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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