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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메일메거진 14호 2001년 05월호


다른 모습의 나. 20세기 말의 예술

Ich ist etwas Anderes Kunst am Ende des 20. Jahrhunderts

마지막호

뒤쎌도르프 쿤스트 잠물룽에서

유우숙(뒤쎌도르프대 미술사.)

*옆의 그림을 클릭하면 뒤쎌 도르프 쿤스트 잠물룽으로 연결됩니다.

 

비베케 탄베륵 ,living together,1996

비베케 탄트베륵 (Vibeke Tandberg)

1967년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태어난 탄트베륵은 1995-97년에 괴테부륵의 대학에서 사진과 영화를 공부했으며 오슬로와 런던에서 작업하며 살고있다. 탄트베륵은 Living Together란 제목의 1996년에 제작된 사진작품들을 출품했는데, 첫 눈에 마치 쌍둥이 자매의 일상생활 스냅사진들을 확대해서 전시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두 쌍둥이 자매는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하는데; 한 침대에서 함께 자고, 여가시간도 함께 보내고, 심각한 대화도 함께 나누고 또 로맨틱한 저녁노을을 함께 바라본다. 뿐만아니라 설것이를 하거나 TV를 보는 장면, 엄마와 함께한 포즈, 한 사람은 손에 담배를 다른 하나는 방금 목욕한 듯하며 함께 카메라를 주시한 사진들도 볼 수있으며, 이 사진들 속에서는 사진찍히는 것을 의식한 모습들 이다. 그외에도 아무도 그들을 보고있지 않다고 이 두 자매가 생각하는 듯한 몇몇의 사진장면들이 있는데; 슬퍼하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다른자매를 위로하는 장면, 침대맡에 앉은 자매의 발을 말려주는 장면등. 이 사진들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찍은 스냅사진 들이 아닌, 탄트베륵이 아주 사소한 우연성까지 용의주도하게 계획해서 만들어낸 장면들 이다. 즉 이 사진들은 그녀의 사는모습을 사실 그대로 다보여 주고 있으며, 단 한가지 사실과 다른점이라면 가상의 인물인 또다른 자신을 화면에 등장시켜서 마치 쌍둥이 자매와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또한 그녀는 이 사진들을 만들면서 고전적이랄 수 있는 구도를 치밀하게 사용했는데, 즉 사진속 인물들의 행동등을 고려하여 거리감을 강조했으며-예를 들면 뒷모습의 인물을 찍은 장면- 화면의 이등분, 대칭 또는 들어가고 나오는 효과등을 고려해서 사용했으며, 그래서인지 이 사진들은 마치 아주 쉽게 찍은 사진처럼 당연하게 보여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순간 이렇게하고 싶지만 저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들, 그래서 내부의 자신과 갈등하거나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좌)부르스 나우만 ,Changing Light,1971 (우)부르스 나우만,나의이름,한 시간 동안 달의 표면에 쓴 그의 이름,1968

브르스 나우만 (Bruce Nauman)

1941년 미국의 인디아나주에 있는 포르트 웨인 (Fort Wayne)에서 태어났다. 1960-64년 Maidison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그리고 미술을 공부했으며, 1965년 Davis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조각으로 전향해 공부했다. 예술이 뭔지, 무엇이 예술이 되어야하고 그리고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있는지를 자문한것이 나우만에겐 그의 작업연구를 하게된 기점이 되었다. 나우만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단지 적절한 작업행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지 생각만 갖고는 얻을 수 없다."고 말한 것 처럼 그에게 있어서 예술은 "탐구행위"이며, 이를 위해 그는 끊임없이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즉 그의 이러한 사고는 1966/67에 제작된 사진작업에서 더 잘 엿볼 수 있다. '분수대로 변한 자화상'(이 작품은 16세기에 이태리의 루스티치가 제작한, 입에서 물을 뿜는 메르쿠어의 형태와 비교해 볼 수 있다)에서 뿐만아니라 자신의 발에 흙을 바른 '진흙 발'의 모습속에서 그는 자신을 살아있는 조각작품으로 연출했다. 초기에 제작된 이 작품들을 더 가까이 이해를 할 수 있는 그의 말을 인용하려고 한다. "그 당시 난 재료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작업실은 사실 비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자신 스스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뭘해야 할지를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커피를 많이 마셨는데, 그일이 주된 일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브르스는 그의 초기작품이랄 수 있는 네 개의 각기 다른 작품을 전시했다.

1967년에 그는 줄에 매달아 흔들리는 카메라로 여러장의 종이위에 알파벳이 반복 나열되어 씌여진 자신의 이름Bbbbbbbrrrrrrrrrrruuuuuuucccccceeeeeeee을 사진 찍었었다. 이미 반복나열된 이름은 사진위에선 부분만 알아볼 수 있었고, 무슨 단어가 씌였는지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이 전시에 전시한 작품중의 하나는, 일년후인 1968년 네온으로 그 작품을 다시 제작한 것이었으며, "마치 달의표면에 씌여진듯한 내이름"이란 제목이 붙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그때 당시 처음 실시되어 자세히 달을 관찰할 수 있게된 인공위성 촬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손으로 직접 쓴 그의 필체는 기계를 이용해 네온으로 재생산 되었으며, 이 변형된 그의 싸인은 그로인해 주체의 유일한 보증을 해주는 특성을 잃었으며, 게다가 복수화되어 생산되었다. 두 번째의 작품은 Art Make Up이란 비디오 작품이었다. 주황색의 배경속에 상체를 벗은 나우만이 흰색을 자신의 몸에 바르고, 그 위에 분홍색을, 다시 그위에 초록색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검은 색을 마치 화장을 하듯 바르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었다. 다르게 해석하면, 기존의 그림그리는 행위와 같이 그러나 캔버스위에다 그리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몸, 즉 자신의 몸을 캔버스화 해서 그림을 그리듯이 그러나 기존처럼 붓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자신의 몸에 물감을 바른다. 궁극에 가서는 그런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더 두드러지게 드러내기 보다는, 화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주황색 바탕의 배경속에 나우만은 까만 실루엣으로 그 외곽형태만이 남고 확실한 그의 모습은 사라져버린다.

60년대 말에 나우만은 이 작품을 San Francisco Museum of Art에서 열리는 전시에 출품하려고 했으나, 그 당시의 큐레이터는 조각작품 전시라는 이유로 이 작품을 거절했다. 세 번째 나우만의 작품 속에서 우리의 인체는 인지의 도구로 사용된다. 1971년에 제작되었고, 이 전시에 재 설치된, Changing Light Corridor with Rooms (Wechsel-Licht-Korridor mit R umen)이라는 건축적인 설치작업은 겉에서 보기엔 그저 좁은 입구에 그에 속한 복도만이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왼편엔 삼각형의, 오른편엔 사각형의 흰 공간에 각각 한 개의 전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삼각형 공간의 전등은 7초동안 불이 들어오고 2초동안 꺼져있고, 사각형공간은 10초동안 불이 들어오고 4초동안 꺼져 있도록 장치를 했다. 이 두 공간의 불이 켜지고 꺼지는 리듬은 반복해서 겹쳐지고, 멀어지는 시간차이로 인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며, 관객이 복도를 지나거나 한 공간안에 들어 섰을 때 아마 자동탐지기를 이용해 불이 들어오게 한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이러한 사실은 빈공간 속에서 자신이 주시되는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네 번째의 작품으로 나우만은 자신이 1974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Konrad Fischer 갤러리에 설치했던 "Body Pressure-신체 누르기(K rperdruck)"을 전시했다. 설치작업이란 단어에 걸맞지 않게 설치되었던 것은 흰 벽과 그 벽의 한 모퉁이에 걸린 액자가 전부였다. 액자 속에는 "신체 누르기" 란 제목하에 관객이 어떻게 나우만의 설치작업에 참여해야 할지를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나우만은 벽앞에 관객을 세우고, 동시에 그 관객은 자신이 그벽의 다른 쪽에 다다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관객은 그 순간 나우만의 작품이 된 동시에 자신을 돌이켜 보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체 누르기

* 당신의 상체를 가능하면 가능한만큼 세게 벽에대고 누르시오. (손 바닥을 안으로하던지 밖으로 하고, 왼쪽 볼이든지 오른쪽 볼이던지 상관없음)

* 매우 세게 누르면서 정신집중을 하시오.

* 당신 스스로 어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과 같은) 상상을 해 보시오. 마치 당신이 이벽의 다른 쪽에서도 매우 세게 누르고 있는것과 같다고.

* 더세게 누르시고, 세게 눌러지고 있다는 상상에 집중하시오.

* (매우 세게 눌림에 대한 상상)

* 당신 몸의 앞면과 등쪽의 겉면을 서로 누르면서, 벽의 두께를 무시하기 시작하시오. 아니면 정신으로 분해하시오.(벽을 없애시오)

* 당신 신체의 여러 부분이 벽을 누른다고 생각하듯이, 신체의 어느 부분이 벽에 닿고 어느 부분이 벽에 닿지 않는지를 생각해 보시오.

* 벽을 누르는 당신 신체의 부분들을 주시하시오; 더 세게 누르시고, 당신 신체의 앞면과 뒷면이 서로 누르고 있는 듯 느껴보시오.

* 근육들 속의, 그리고 눌림으로 인해 근육의 형태가 변해 뼈들이 만나 생기는 고통의 긴장에 대해 집중하시오; 신체의 털, 땀 그리고 냄새 (향내)를 생각하시오.

* 이건 어쩜 에로틱한 훈련이 될 수도 있오.

한나 빌케,S.O.S Starification objekt serie,1974-82

한나 빌케 (Hannah Wilke)

1940년 미국의 뉴욕 시티에서 태어나 필라델피아에서 미술공부, 1971-1991 뉴욕의 School of Visual Arts에서 조각을 가르쳤고, 1993년 림프선암으로 사망했다. 60년대에 조각가로서 작업을 시작했고, 70년대에는 미국내에 Body Art의 선구자 역할을 하며 여성주의자적인 인상을 강하게 한 한나 빌케는 그 때문에 그녀의 작가경력에 대해서 자기도취라고 비하하는 비평에 맟서지 않을 수 없었다. 1975년 그녀는 갤러리 Paula Cooper에서 열린 Lynda Benglis의 전시회오프닝에 상체를 벗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래켰으며, 그 행위를 그녀는 Invasion Performence 라 선언했다. 또한 그녀는 필라델피아의 미술관에 소장된 Marcel Duchamps의 "Das gro e Glas"라는 작품뒤에서 진짜 Striptease가 되어서, 암호같은 그 유리작품의 또 다른 제목 "Die Braut von ihren Junggesellen nackt entbl t sogar- 게다가 그 신부는 그녀의 총각들에 의해 빨개 벗겨졌다."의 내용을 그대로 실행했다.(Through the Large Glass,1977)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작품의 한 일환으로 그동안 그녀의 남자관계와 그들이 보내온 연애편지들, 심지어 자동음답기에 녹화된 사랑고백들까지 하나도 숨김없이 공개했다.(Intercourse With...., 1978) 한나 빌케는 " 다른 사람이 나를 이용해서 내가 흡족해 하지않는 뭔가를 만들기 이전에,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것..."이라고 그녀의 작업동기를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가 실행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시리즈 작품들과 사진을 이용한 작품들을 대할 수 있었다. 1974-1982사이에 제작된 "S.O.S.Starification Object Series- 우상화 오브제 시리즈"라는 이 사진 작업은 60년대에 그녀가 부드러워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재료 즉, 라텍스, 껌 또는 흙을 사용해서 조형적인 형태를 만들었던 흔적을 조금 경험할 수 있다.

한나 빌케 ,I object.1977-78

한나 빌케는 그녀 전시의 오프닝에 참석한 관객들에게 껌을 나누어주고, 씹게해서, 씹음으로 인해 부드러워졌고, 형태가 주어진 그 껌들을 그녀의 얼굴과 가슴, 등등에 붙이고는 모델사진을 찍는 사진작가앞에서 여러포즈를 취했다. 마치 종양 또는 상처와 비슷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의 몇몇 종족에게서 볼 수 있는듯한 성스러운 흔적을 흙백사진의 효과를 이용해 잘나타내었으며, 동시에 이것을 통해서 한나 빌케는 아름다운 자신의 몸을 우상화하려는 듯한 시도를 했다. 1977-78년에 제작된 "I OBJECT: Memories of a Sugargiver"의 작품은 또 다시 Marcel Duchamps과 연결을 시킬 수 있다. DIchamp의 마지막 작품으로,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설치된 "Gegeben sei 1.der Wasserfall, 2. das Leuchtgas - 주어진 것은 1.폭포, 2.등잔용 가스" 란 제목의 작품은 우선 낡은 나무 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나무 문에 뚫린 조그만 구멍을 통해서 폭포가에 벌거벗고 다리를 벌린채 드러누워있는 여체를 볼 수 있으며, 그녀는 손에 등잔을 들고 자신의 몸을 비추고 있다. 이 작품을 관람한 관객은 모르는 새에 훔쳐본 자가 된다. Duchamps의 작품과 한나 빌케의 사진작품을 비교해 보자. 여체의 벗은 모습이 우선 비슷해 보인기도 하다. 한나 빌케가 붙인 제목 "I OBJECT"에서 OBJECT를 동사로 보면 "나는 항의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고, OBJECT을 만일 나와 같은 주격으로 본다면 "나-오브제"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두 가능성 모두 어떻게 보면 Duchamps의 작품과 관련을 시킬 수도 있겠다. 빌케는 Duchamps의 작품에 등장하는 생명이 없고 부분만 보여지는 마네킨의 육체대신 그녀 자신의 몸체 전체를 작품에 제공했으며, 이렇게 함으로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오브제화 했고, 스스로가 작품이 되었다. 그녀가 사망하기전에 제작된 "Intra-Venus"(183,57x122,61)란, 마치 제단화와 같은 성격을 가진 이 작품 둘은 암과 투병하는 동안의 빌케를 찍은 사진들이다. 암으로 인해, 그리고 그 치료를 위해 투여된 약물에 의해 천천히 쇠약해가는 한 여인의 모습이 4 개월의 시간차이를 두고 이 작품속에 기록되어 있다. "예술은 상품이 아닌, 자신을 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밝힐수 있을까"라고 한나 빌케는 그녀가 죽기 얼마전에 메모를 남겼다.

시린 네샤,Schadow an the Web,1997

시린 네샤(Shirin Neshat)

1957년 이란의 Qazvin에서 태어나 74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74-82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1995, 1999년 Biennale Venedig에 참가했으며, 뉴욕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한 공간속의 네 벽에 각기 다른 화면이 비쳐지고 있고 같은 공통점이라면 화면속의 여인이 바삐 걷는 모습이다.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얼굴만 겨우 내어놓고 까만 천으로 온 몸이 둘러 쌓여진 그여인은 각 화면 속에서 각기 다른 장소들을 뛰다시피하며 바쁘게 지나간다. 오래된 성벽을 따라가고, 시장을 지나가고, 이슬람교회를 그리고 이른아침 아무도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이 설치작업에 속하는 소리 즉 음향효과는 단 하나의 소리이지만 그러면서도 각기 다른 네 개의 화면과 동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쁘게 숨쉬는 소리이다. 이동, 출발, 장소변경, 道上위치등이 끝임없이 반복되어 보여지는 이 설치작품의 주제라 할 수 있겠다. 네 화면에 반복되면서, 어디론가 계속 달아나는 이 동작은 이상할 정도의 강도, 즉 끊임없이 선동하며 주장하는 듯한 효과를 지니며,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관객인 자신도 함께 동행해야만 할 듯한 감정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네샤가 이 작품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슬람 복장을 한, 그러면서도 바삐걷고 있는 여인은 그녀 자신을 암시해 보여주고 있을뿐만이 아니라, 이슬람세계의 여성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들의 역할을 이 작품을 통해서 고발하고, 또한 전통에만 매달려 수동적으로 주어진 역활만을 수행하는것에 대항해서, 자신유지를 위한 현대적인 행위,즉 빨리 걷고 전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앞에서 말한것과 같이 그녀는이란에서 태어나서 열일곱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술공부를 했으며, 거의 서양의 문화에 익숙해진 16년후에 그녀의 고향을 방문하게되고, 예전의 페르시아에서 이슬람공화국으로 변한 그녀의 고국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동시에 그녀에게 새로운 작업동기를 제공했다. 서구의 시각으로 그녀는 이슬람 문화가 그녀에게 제공하는 소재를 잘 병합해서, 즉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잘 이용해 작업했다.

라이너 루텐벡,"거울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되는 흑과 백 ",1997

라이너 루텐벡 (Reiner ruthenbeck)의 "거울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되는 흑과 백 "

1937년 독일의 벨버트 (Velbert)에서 태어났으며,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했고, 1972,1976,1982년에 dokumenta 5, 6, 7에 출품했다. 뒤셀도르프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전시의 마지막 출구에 240 x 300 cm 크기인 두 개의 거울이 3m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게 설치 되어 있으며, 한 거울의 표면에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흰색의 대각선이 그어져 있고, 다른 한 거울의 표면에는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검은색의 대각선이 그어져 있다. 거울의 앞에 서면, 두 거울의 간격사이를 두고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흑백의 교차사이에 깊은 사각형의 터널속으로 끝이없이 이어진다. 비록 거울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두 거울사이의 나를 중심으로, 앞과 뒤에 환상의 세계가 끝이없이 이어지면서 볼 수 없을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모든 것이 이 두 거울을 통해서 복수화되고 또 다시 반복되면서 궁극에 가서는 사라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글은 4회로 나뉘어서 연재될 예정입니다.그 중 네번째 호를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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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유우숙 (뒤쎌도르프대 미술사)-이글은 "Ich ist etwas anderes "전시의 카타로그를 편역한 것입니다.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글쓴이의 허락없이 무단복제나 상업적인 목적의 사용을 금합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메일메거진 14호 200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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