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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표현주의 表現主義 Expressionism (1905~1930...)

1>표현주의의 개요

1.예술사와 비평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예술의 기본 목적을 '재현'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 며 르네상스이래 유럽예술의 전통적 규범을 떨쳐버리려 했던 20세기 예술운동의 하나.

2.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회화의 선,형태,색채등은 그 것의 표현 가능성만을 위해 무시되었으며,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3.표현주의가 명확한 강령으로 자리잡게된 것은 1905년경부터이지만 그 싹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880년경이며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 되었으나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동시에 시작 되었 다. 특히 독일은 1933년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기까지 다른 어떤나라보다 발전 했었다.

4.표현주의라는 명칭은 1910년 쥴리앙 에르베가 자기작품을 설명 하면서 처음사용했고 현재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베를린 신분리파>전시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막스펙슈타인의 작품을 보 고 '아직도 인상주의(Impressionism)인가?'라고 물었을때'아니다 표현주의(Expressionism) 이다'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한다. 표현주의라는 말이 보편화된 것은 헤르바르트 발덴이 미술 지 스트룸(Strum)에서 표현주의라는 표제로 모든 혁명적 미술운동을 취급한 이후이다.

5.표현주의는 그뤼네발트나 엘그레코같은 화가들에게 적용하여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였고 더 넓은 의미로는 낭만주의나 바로크와 유사한 미학,비평 용어로 통용되기도 했다.그러나 여기 서의 표현주의는 20세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나타난 예술의 한 경향을 말한다.

6.대상의 객관적 표현을 배격하고 개인의 자아,혼의 주관적 표현을 조형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 면적인 세계의 표출이라는 형태를 이루며 나타난 운동으로 작가들은 아름다움 자체 보다는 불 안,고뇌,비통을 딛고 일어선 파토스적 감성을 환상적,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7.표현주의는 두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드레스덴에서 건축학도들에 의해 구성된 다리그룹과 뮌 헨의 '신 예술가 동맹에서 파생되어 1911년에 칸딘스키를 주축으로 구성된 청기사그룹 운동 이다.

8.사회와 현실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미술사 가운데 확인할 수 있는데 1차 세계대전 전후 의 상황에서 예술의 후진국이었던 독일에 근대 예술의 막을 연 중요한 운동이었다.

9.표현주의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목 받게 되는데 그때까지 국제전의 기회가 폐쇄 되어 있었던 것이다.르네상스 이후 자아발견은 의식의 각성을 이루었고 표현주의 작가 들은 자아표출에 가장 드려졌다.인간의 내면적 자아발현에 드려졌던 이들의 작업은 추상미술 등 현대미술의 제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2>표현주의의 발생배경

1.188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유럽은 대 소요의 시기였는데 매음,빈민굴,노동자의 작업환경의 열악함,사회악의 폭로,여권주장,개인주의,표현의 자유,모든 인습에 대한 비판적 고찰등이 나타났다.

2.독일은 1870년 국가의 통일로 인한 권력분립에서 중앙집권으로의 변이,농업새활에서 도시 생 활로 가는 급격한 변혁으로 혼돈 가운데 있었고, 또한 자연과학의 지식이나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진보사상의 기초가 되어 문화적 발판을 이루고 있었다.

3.세기의 전환점에 들어선 독일의 심각한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반영하듯 독일 의 표현주의는 신비주의와 종교적 감성 그리고 기계문명에 대한 반발 등의 영향으로 비물질적 비세속적 정신적 표현을 갖게 되었다.

4.독일 표현주의에서 설화적 테마의 유행이 지속되고 신비적이며 환상적인 경향의 화가들이 꾸 준하게 나왔던 이유는 무엇보다 기후와 지정학적 요인에 두고 있는데 음산한 날씨와 사색하기 알맞은 자연조건 이었다.

3>표현주의의 전개와 양식

A.독일 표현주의에 미친 뭉크의 영향

1.독일 표현주의는 감정을 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인상을 마음에 기록하였던 것이었고 이 러한 경향은 고호,고갱에서도 나타나지만 집단적인하나의 운동으로 발전시킨 기폭제는 뭉크 였다.1892년 베를린의 첫 개인전은 자연주의적 독일화단에 충격을 주었다.

2.독일의 혼란상황에서 탈출구로 프랑스에 눈을 돌리고 세잔,고호,뭉크의 북구적,심리적,사색 적인 작품이 가장 호소력 있었는데 때를 맞추어 프르지비쩨프스키의 이론화 작업이 병행됨으 로써 표현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게 된다.

3.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극적인 형태는 단순한 암시로 요약되며 원근법은 무시되고 색채는 상 징성을 띠게된다.

4.뭉크의 작품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절규><불안><생명의춤>이다.그중<절규>는 표현주의 스타 일의 초석이 되는작품으로 공포,불안,절망이 작품 곳곳에 드러나고 있는데 리드미컬한 선의 율동을 따라 공포심이 환기되고 육체감을 상실한 스케치풍의 테크닉은 혼란된 무우드를 부채 질함으로써 표현력을 획득하고 있다.<불안> 역시 절규에서의 상황과 유사하며 19세기말의 작 가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예술관이기도 하지만 뭉크의 북구적 우울성이 심각한 병적 불 안으로 표현되어 있다.<생명의 춤>은 1890년대 그의 시도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표현주 의의 기본적인 요소가 진보되는 것을 볼 수 있다.형태가 단순화 되고 뚜렷한 유곽선은 사실주 의적 세부사항을 생략되고 공간이 넓은 단색면으로 처리되고 파도결 모양의 선이 강조된다. 모티브의 모든 표현적 요소들이 포름,색,선에 있어서의 표현력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과장과 생략이 나타나 있다.

5,이러한 파격적인 스타일은 1905년 드레스덴에서 공동의 아뜰리에를 쓰고 있던 키르히너,칼 슈미트,로틀로프헥켈등에 큰 영향을 주어 독일 최초의 표현주의 그룹인 다리그룹이 결성된다 B.다리그룹(Die Brucke)

1.다리파는 다리(橋)의 뜻으로 1905년 6월에 드레스덴의 기술학교 건축과 학생인 에리히 헥켈 (1883~1970),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1880~1938),칼 슈미트(1884~1976)에 의해 창설되 었다.이외에 1909년에 그룹을 떠난 프리츠 브라이르(1881~1966)이 있으며 1906년에는 막스 펙슈타인(1881~1955)이 가담하였고 2 동안이지만 에밀 놀데(1867~1956)도 가담하였다.마지 막으로 1910년에는 오토뮐러가 참여 하였다.

2.다리파는 모두가 평범한 시민 가정의 출신이었으며 그림수업을 정규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 라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하였다.그러나 그들은 독학자 이상의 미적 감각과 비평에 대한 안목 을 갖고 있었다.

3.다리파의 본래 목적은 전시를 위한 공통의 장을 갖는다기 보다는 예술과 생활의 새로운 태도 를 발견하려는데 있었고 그래서 인습에 대한 항거와 젊음에대한 호소 자유로운 창조적 충동의 확인 외에 어떤 명확한 미술강령은 없었다.

4.다리파 형성당시 사회는 경직되어 있었고 획일적이었으며 회화면에서도 막스 리베르만을 중 심으로한 <베를린 분리파>가 인상주의적 자연주의를 이끌어가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상징주 의적 경향의 <유겐트 스틸>이 새로운 조류로 파급되고 있었다.

5.다리파는 19세기말의 풍조인 <유겐트 스틸>에서 선의 묘미와 다양성만을 그들의 회화에 도입 했다.1906년 드레스덴의 한 램프 공장에서 개최된 다리파의 제1회 전시회는 주목을 끌진 못 했고 화랑 격식을 갖춘 에밀 리히터의 미술살롱에서의 제2회 전람회도 약간의 반향밖에 불러 일으키지 못했으며 1908년과1909년은 양식의 변화를 격었다.

6.다리파는 그들의 공동 양식을 위하여 공동 생활을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미숙함을 깨닫 고 새로운 스타일이 나올때까지 싸인도 하지않고 작품토론을 하였다.각 개인의 강한성격과 특징을 앞세워 단결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작품이 쉽게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운동도 유 명무실한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7.1913년에 다리파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해 다리파의 지도적 입장에 있었던 키르히너는 동 료로부터 다리파의 연대기 집필을 위임받았는데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쓴 것이 거부당했던 것 이다.이후로 다리파는 해체되지만 그들의 개성적 작품활동을 통해 표현주의는 보다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

8.다리 그룹은 그래픽 분야에 현대화를 성취하여 그 당시 뒤떨어져 있던 독일의 그래픽 예술을 세계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현대 그래픽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회화에 강한 사회의 식을 체득하여 도시예술로 승화 시켰다.

9.다리그룹은 출발시 불투명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독일이 독자적 예술을 정립해 나가 는데 중대한 이정표로 자리잡고 있으나 해체후 독자노선,청기사같은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여 더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는 커다란 아쉬움을 갖게한다.

C.청기사 그룹(Der Blaue Reiter)

1.청기사 운동은 뮌헨을 무대로 일어난 현대 독일의 미술운동으로 '조형적 표현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리파의 날카로운 심리적 불협화음의 세계와 대치되는 조형적 조화와 시적이며 때 로는 신비주의적인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것으로 필연적으로 추상적 조형에로의 길을 트는 움 직임이기도 했다.

2.1901년 당시 독일의 예술적 상황에 불만을 가진 몇몇화가들, 즉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1866~1944),알레세이 폰 야우레스키(1864~1941),미국출신 리어널 파이닝거(1887~1914)등의 인물들이 <신 예술가동맹>을 결성했다. 이것이 2년후 탄생하는 청기사그룹의 출발점이었다.

3.1909년,1910년 열린연맹전이후 칸딘스키는 의견차이를 느끼고 협회에서 탈퇴 후, 가브리엘 뮨터(1884~1910),프란쯔 마르크(1880~1916),알프레드 쿠벵(1887~1959)등과 함께 1911년 12월 새로운 그룹 청기사를 창설하고 <탄 하우저 화랑>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4.청기사 그룹은 광범위 하고도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모든 혁신적인 예술 움직임을 포괄 하려 했고 어떤 명확하고 특정한 형태를 취하려 하지않고 표현되 형태의 다양성을 통하여 에 술가의 내적 욕구를 다양하게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어떤 특정한 미학적 규범을 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다.

5.청기사 그룹은 독일 본연의 표현주의적 경향과 함께 프랑스의 입체주의,들로네의 오르피즘, 그리고 기타 추상경향을 낭만주의 경향과 합류시킴으로써 20세기 미술에 있어서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