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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물 2호 6월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전해 드립니다.회원등록을 하시면 전시와 관련해서 혹은 현대미술관련 여러가지 테마의 발제,그리고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등 다체로운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삶으로서의 예술


예술이 추구하는 실제상의 변화

예술은 인간의 이상을 반영하는 것일까 ? 아니면 인간의 현실을 더 나아가 우리 삶에 있는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것일까? 미술사이래로 이 둘은 서로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왔다.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속에 숨어있는 이상적 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그래서 그들이 찾아낸 인간은 인간세상에서는 존재할것 같지도 않은 혹은 한두명이나 존재 할까하는 8등신 등 미적 균형을 갖춘 인간형태를 창출해 냈다.이런 인간을 창출하는 예술가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은 그의 재주를 칭찬하고 그의 조각과 회화는 숭배의 대상이 된다.이러한 예술의 전통은 르네상스에 오면 더욱 그빛을 발하는데,인간의 실제를 깊이 탐구하고 그 속에 있는 질서를 찾아 내려고 애를 썼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 실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기 보다는 인간 속의 질서를 찾아 규칙화하고 그 규칙을 통해 이상적 형태인 "모나리자"를 그려내는 것이다.거기에는 절대적인 미에 대한 희망이 관계한다.원근법은 자연을 연구한 아주 과학적인 기술이었지만 ,그것은 평면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 세상을 옮겨 놓은 하나의 환상(illusion)에 불과했다.그러나 그것이 실제와 닮으면 닮을수록 작가의 재주는 칭찬을 받았다.

낭만주의가 문학적 소재들을 찾아 격동적인 화화들을 그려내고 있을때 ,쿠르베와 도미에 같은 사실주의 작가들은 "안녕하세요? 쿠르베씨!"와같은 일상적인 소재가 주는 리얼리티 그리고 삼등열차간의 주름진 노파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있었다.무엇이 이상이고 무엇이 리얼리티인지? 하늘에 속해있던 종교와 그 개념을 뒷바치고 있던 예술이 만들어내는 이상이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 엘그레코의 "베르낭 백작의 죽음"에서 우리는 하늘로 오르는 백작과 슬픔에 안겨있는 가족들을 동시에 같은 화면에서 보게된다.기독교적 사후세계가 약속된 것 같지만 그속에 아픔과 슬픔의 현실이 같이 공존하는 백작의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실제를 찾아 떠난 예술가들의 탐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데,인상주의는 자연주의 화가들이 아틀리에에서 어두운 빛깔로 자연을 그리고 있는 모순을 발견하고 야외로 이젤을 들고 나간다.그리고는 자연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색채들을 찾아낸다. 인간의 관념속에 숨어있었던 나뭇잎의 빛깔과 하늘의 빛이 아닌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빛의 변화들을 찾아낸다.르느와르의 여인들의 볼에 그늘진 보라빛 그림자를 '퍼렇게 멍든 여인을 그렸다'고 비난한 그 시대의 예술관을 이해 할만하겠다.세잔같은 이는 더욱 이부분에 있어서 실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해간 사람중에 하나인데,그가 그린 원근법은 르네상스의 원근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사과와 정물들은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꾸정물에 빠진것 처럼 지저분하고 매끄러운 붓질대신에 어설푼 면의 나눔으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은 시제를 찾고자 애쓰는 작가의 강박관념을 들어내준다.

지난 메일메거진에서 예로든 피카소와 브라크의 예는 예술가의 아뜰리에가 과학자의 실험실과 맛바뀐 현대미술의 실상을 들어내준다.입체파작가들은 캔버스 혹은 정물이라는 대상이 가진 실제에 더욱 접근하려고 시도한다.이미 이 행위는 실제에 대한 표현이라기 보다는 "관념"이다.이들의 관념은 실제를 표현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실제를 실제로 가져다 붙이는 꼴라쥬를 찾아내게 된다.이러한 아뜰리에 안에서 실제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비웃으며 우리의 일상속으로 파고 들었던 러시아 구성주의는 1918년 12월 <공산주의 예술지>에 "우리는 죽은 작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우리는 인간정신이 살아있는 공장,길거리,노동자 거주지등 도처에 살아있는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선언하였다. 그후 구성주의는 1920년의 페브스너와 가보의 사실주의 선언 이후 예술은 생활에 유용한 편익을 줘야 한다고 기능성을 주장한 사회참여파인 로드첸코와 타틀린의 '생산주의(Productivism)'와 예술은 인간의 창조활동을 지배하는 생명력이 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수파라 일컫는 페브스너와 가보의 '사실주의(Realism)'로 갈라선다.여기에는 리얼리티를 찾는 문제보다는 예술의 순수성에 관한 논쟁이 포함되어 있다.

인체를 입체파의 기법을 따라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그려 파괴적이라고 지탄을 받았던 마르쎌 뒤샹이 아모리 쇼 "병기창고 전" 에 변기를 출품하게 된 동기는 어디에 있을까? 실제에 대한 관념이 실제로 대체 하는 행위보다 더 적나라하게 대상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뒤샹 이후의 예술가들은 이제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취한다.예술에 대한 이상론을 가진 사람들은 이와같은 행위를 예술로 받아들 일 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예술가의 인위적인 행위 즉 재주를 들어낼 길이 없기때문이다.1923년 이후 뒤샹은 더이상 예술을 하지 않는다.그리고는 자신을 숨쉬는 사람"braether" 로 규정하고 맨날 체스만 뚜면서 시간을 보내는데,국제대회에서 수상을 할정도로 체스에 몰두했다고 한다.그는 예술을 포기하고 삶을 선택했다고 보면 그를 지나치게 신화화 하는 것일까? 어쨋든 뒤샹의 신비는 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이글을 계속 정리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참고문헌

Ich ist etwas anderes,전시의 카타로그,.(독문)

Paolo Bianchi,lebenskunst:Gastarbeit zwischen Kunst und Laben,(독문)

Paolo Bianchi,Das LKW,(독문)

wilhelm Schmid,Das Leben als Kunstwerk,(독문)

 

백기영,현대미술에 있어서 신체개념의 변화 ,기독교 현대미술 연구회,1995(국문)

로슬리 골든버그,행위미술 의 마지막 장 70년대의 퍼포먼스,1989,동문선 (국문)

강태희,다시보는 뒤샹의 샘,(현대미술의 문맥읽기 ),1995년 미진사.(국문)

강태희,요셉보이스의 모자 ,(현대미술의 문맥읽기 ),1995년 미진사.(국문)

참고문헌은 클럽의 자료실에 있습니다.회원이 이니시더라도 인티즌에서 "독일 현대미술" 클럽을 찾으시면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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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물 2호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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