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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1년 3월 작가연구 4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을 우리눈으로 읽고 우리의 시각을 찾고자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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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구 4호

Shirin Neshat 쉬린 네샤트

독일의 작가연구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됩니다.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하고 있습니다.

 

짙은 눈섭의 여인의 눈,눈섭에 치장된 눈섭화장,누가봐도 중동지방 사람의 눈인 것을 알 수 있는 이 눈동자에는 아랍어 텍스트가 씌여져 있다.나는 이 여인의 눈동자가 연민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녀의 눈에 씌여진 아랍어들은 그녀의 눈동자가 말하듯이 연민의 내용을 담은 싯귀이거나 아름 다운 소설의 한 텍스트 일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왜냐면 우리는 아랍어로 씌여진 텍스트를 바라보면 곧장 이슬람교의 코란과 종교적 강령을 떠 올리게 된다.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작업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서 다가왔다.이 아랍어 텍스트는 다시 그녀의 연민 어린 눈동자를 지나 강인한 인상을 지닌 눈섭과 눈꺼풀에서 콘트라스트 강한 이 대조를 확인하게 된다.그리고 그녀의 눈이 아주 저항적이고 정치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무엇을 향한 저항일까? 나는 그녀가 이란으로 부터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가 이슬람의 소외된 여성성과 남성지배 사회구조에 대해 대항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서구 여러나라와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까지도 이슬람사회의 성차별에 대한 보도를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 ,그들은 샤도르를 써야 한다.그녀의 머리 카락이 남성들의 성적 흥분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하게 위해서 말이다.또한 심지어는 여성의 클리톨리스를 절단하여 여성이 성적 욕망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는 등의 서구언론 보도는 이슬람여성에 대한 서구식 스테레오타입에 입각한 보도의 대표적인 예이다.사회학과 심리학적인 서구문학의 경향을 잘 관찰한 서구의 많은 이슬람 전문가들에 의하면,(서구의 방송언론의 보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 여성은 이슬람 사회의 대표적인 희생물이다.이슬람 사회에서 남성은 여러명의 여자를 거느릴 수 있다. 만약 그가 돈이 많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자신의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면 그의 혼인은 합법적이다.그러나 여성의 경우 자신의 남편이 아닌 남자와 동침 할 경우 돌로 쳐죽인다.그들의 사회는 곳곳 남자들만이 갈 수 있는 장소가 정해 져 있고 여자들의 출입이 통제되거나 여성들만 갈 수 있는 곳이 있어 남성과 여성이 적절한 선에서 분리되어 생활한다.이는 이슬람교의 종교적 전통과 사고의 기반으로 부터 유래한 그들만의 특수한 현상이다. 쉬린 내샤트는 이러한 서구의 이슬람사회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대항하여 이슬람 여성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이슬람 남성 에게 있어서 남성성이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며,합리적인 성으로 규정된다.그리고 긍극적인 남성들의 섹스에 대한 관심은 그저 아이를 낳는 정도에 불과하다.그리고 자신이 섹스를 통해 만족을 느끼는 것은 "신의선물"로 이해한다.이슬람 여인 이 묶는 규방인 "하렘"은 자연스럽고 그들이 성적인 상상을 할 수 있는 성적인 공간으로 이해되어 진다.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이해이고 요즈음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가져온다.이슬람공화국 이란에서 이제 여자들은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엄마로,아내로 이상화하고 집안일을 하거나 사회적인 일에도 간호사나 비서정도의 일을 해왔었다.이러한 규정은 선지자 모하메트의 누나 파테메Fatemeh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그녀는 이후에 하자랏 알리 Hazrat Ali와 결혼해서 이만 후세인Iman Hussein을 낳는다.또 한편으로는 여자들은 아주 정치에 동참하도록 장려된다.그녀들은 거리의 시위에 동참하고 투표에 참여할 참정권을 가지며 전쟁시에는 전쟁에 참여하는등 서구에서는 여자들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은 일들을 하는 것이다.한여인이 베일을 쓰고 총을 든채로 탱크앞에 서 있다.이것은 집안일만 하는 여성의 사진이 아니다.여기서는 나라를 지키고 그녀의 남자형제들을 전쟁에서 지원하기 위해 애썻던 파테메의 딸인 하자레트 자이납 Hazrat Zeinab을 끌어 들인다.

이란에서 부터 서구세계로 뒤쳐나온 수많은 여성들은 서구에서 여성학과 새로운 문화의 영향으로 개몽되었다.그들은 샤도르를 집어던지고 머리를 들어내고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베일에 가려있던 그간의 이슬람 여인은 이제 더이상 신비로울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우리는 무언가를 보면 볼 수록 거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을 상연해 줄것을 기대한다.서구의 시각에서 이슬람 여인으로 정체성을 부여 받던 이슬람여인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그녀들은 이제 "비밀"을 상실해 버렸다.

이란 혁명이 있었던 시기에 이슬람 여인 들은 이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샤도르"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였다.그들에게는 샵Shab이 이끌었던 서구화에 대한 반대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1978년 이슬람여인들은 모두 검은 샤도르를 쓰고 거리의 정치반란대 앞에 섰다.그들은 아냐 톨랍 호메이니 Ajatollab Khomeini를 지지하고 샵을 몰락시키려고 했다.이 처참한 테헤란 거리의 전쟁에서 그리고 이라크전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무기로 중무장하고 탱크앞에 서있는 이란의 샤도를를 쓴여인들을 보게 되었다.이것은 서구가 생각했던 집안일 만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이슬람의 여인상과는 사뭇 다르고 충격적인 그림이었다.이것은 단지 서구인들만을 놀라게 한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이슬람세계는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Turbulent(소란),2채널비디오프로젝트,1998

그녀의 1998년도 대표작 Turbulent(소란)은 두개의 체널 비디오로 이루어져 있다.한편에는 샤란 나자리 Sharan Nazeri라는 이란의 유명한 대중가수가 서 있고,다른 한편에는 샤도르를 쓴 여인의 뒷 모습이 있다.샤란 나자리가 서 있는 화면에는 같은 옷을 입은 남자들 관람객들만 가득하다.이 가수는 아주 상투적인 내용의 가사가 담긴 이슬람의 가용를 부르고 있다.이 가사에는 어느곳 에서나 어떤 시대에는 있어 왔던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그는 동질성으로 부터 무언의 힘을 받고 있는 듯하다. 같은 옷차림의 남성관객들이 그의 노래에 환호하고 박수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청중들은 그 노래에 대해 별로 감동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남성동료를 격려하기 위한 하나의 제스쳐에 불과하다.

그의 다른 한편의 여인은 아주 대조적이게도 아무도 없는 무대에 혼자서서 관람자를 등지고 있다.그녀는 아주 우울하고 슬퍼보인다.그녀의 노래를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슬람사회에서 파편화된 여성성의 상징처럼 검은 샤도르의 여인은 호흡을 가다듬고 작은 소리로 신음하듯 입을 벌린다.그리고는 고음의 비애와 슬픔이 담긴 탄식같은 내성의 노래를 부른다.이것은 제대로된 가사도 없고 흥얼거리는 콧노래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애절하며 ,그녀는 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그녀의 소리는 건너편에 정지된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남성들에게로 울려퍼진다.여기서 쉬린 내샤트는 분절된 이슬람 사회의 남성과 여성의 공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며,이 공간들을 서로가 나뉘어져 있음으로 해서 공허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 대해 소외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The Rapture: 환희,2000.

쉬린 내삿트(Shirin Neshat)가 이슬람 지역의 여성들의 삶을 사회적,정치적,심리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데,서구에서는 상징적인 풍자화의 형태로 베일(Tschador)을 쓴 여성의 관점에서 상징화된 이슬람의 성정치에 대해서 보도한다.내트가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화된 표현에 대해서 저항하기로 결단할지라도,그녀의 작업은 명백히 논쟁할만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복잡하고 지적인, 종교적인 그리고 세계만방에 알려진 모슬렘 여성의 정체성의 영향을 받게된다.

그녀의 설치작업 Rapture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양쪽 벽면에 서로 바라보도록 설치되었다.이 비디오 화면들은 네삿트의 지도 아래 마로코에서 실재로 연출을 했고 ,그녀는 이를 영상에 담았다.그녀의 배경음악은 알려진 이란계 음악가 수잔 델힘에의해서 제작되었고,아주 특별한 효과를 더해주었다.이 작품은 돌로 쌓은 성 과 황량한 해안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이 성은 한번 화면을 채우고는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바지를 똑같이 입고 ,빠른 걸음으로 한 낡은 도시의 돌 들이 잘 깔린 길을 지나 성가로지르는 100명의 남자들위로 포개진다.동시에 반대편에 있던 해안풍경에는 보잘것 없이 초라한 풍경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모두가 예외 없이 같은 폭의 손가락 길이 정도의 검은 베일을 ,이른바 (Tschador),쓴 100 명의 여인들이 등장하고, 화에 포개진다.

네삿트의 작품에 나오는 배우들은 두부분으로 나누어진 영상 시나리오를 따라 억양이 생략된 단일조의 리듬으로행동하고 행동을 멈추고 ,행동할때 다른 한편은 정지하고 있으므로 상대를 인식하지 못하고, 행동을 정지하고 있을때에야 비로소 상대를 인식하게 되는 ,일제히 전진하고 후퇴하는 동작을 연출한다.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남자들이 무리를 지었다가 일제히 흩어지고,여인들이 해안에 모일 때 이다.서로 서있는 여인들의 간격무질서하게 관람자의 응시점으로부터 비스듬히 남자들 쪽으로 조밀 해진다.이야기의 절정은 남자들이 여인들의 서서 발로 북을 두리는 소리를 듣고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이 음악이 가장 정절에 다다랐을 때,양쪽편의 화면이 동시에움직인다.여인들은 해안을 가로질러 바다로 들어간다.

조금후 여인들은 나무로 소박하게 만들어진 보트를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끌어내려고 애쓴다.성의 흉벽위에서 남자들은 벌써 여섯 명의 여자들이 올라타고 있는 보트를 처다보고 있다.그들은 서서히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여인들의 보트를 굳은채로 서서 응시하고 있다.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란계 여류예술가로서 네삿트에게는 이 작품은 존재의 말살과 불안전한 어딘가로의 정치적 추방을 의미한다.그녀는 베일을 벗어던지고 방랑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엇보다 불확실하다.그녀와 바다로 배를 저어나간 여인들의 저항은 어찌보면 자살행위와도 같은 것이다.이란의 저술가 Monirou Ravani'pur의 말대로"물에 빠져 죽기에 충분한 용기(tapfer genug,um zu ertrinken)"인지도 모른다.

The Shadow under the Web,4채널 비디오 프로젝트,1997

그녀의 4채널 비디오작업 The Shadow under the Web은 동시에 네개의 비디오화면이 네개의 서로다른 장소를 보여준다.이 화면에는 검은 샤도르를 거친 여인이 시장과 텅빈 거리 그리고 집들이 모여 있는 뜰과 모슬렘사원을 달리고 있다.이것은 공공장소와 개인적인 장소를 서로 가로지르며,현실세계와 종교적인 세계를 가로지르고 ,과거와 현재가 서로 충돌없이 공간의 자유가 살아 숨쉬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저항의식과 관계한다.그녀는 이슬람의 정해진 규칙들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그녀는 이 비디오를 이스탄불에서 찍었다.

작가를 정리하고 나서

쉬린 네샤트를 정리하면서 나는 곧바로 에드워크 사이트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그의 책은 벌써 1978년 에 씌여졌고.프랑스와 독일에도 번역소개 되었으며 포스트모던의 사상중의 커다란 맥을 형성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포스트모던 논의가 한창 유행이던 1991년도에 번역출간 되었다.이 책에는 서구의 역사이래로 서구인의 의식속에 숨겨져 있는 "동양"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스테레오 타입화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디즈레일리는 "동양은 평생을 바쳐야 하는 사업이다."라고 말해 서양의 영토확장과 인종차별주의,반셈주의를 들어내고 있다.또한 마르크스는 "동양인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인 스스로에게는 서양에 대한 열등,우등한 서양에 대한 웨스터니즘 내지 옥시텐탈리즘을 형성 시킨다.역자 박홍규는 그것을 서구로 부터 일본이 배워왔다고 말하고 있다.지난 일제청산에 대한 학문적 표본으로 그는 "오리엔탈리즘" 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트는 팔레스틴 사람이다. 그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쉬린 네사트와 같은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을 경험한다.이러한 비슷한 경험이 오리엔탈리즘에 씌여진 사이트의 폭로전술과 쉬린 네샤트의 전술이 서로 일치 하지 않지만 무언의 공조체제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쉬린 네샤트 의 사진과 영상들은 이슬람 여성의 정체성을 들어내는 총을 든 여성들과 탱크앞에 나선 여성들,그리고 손바닥에 씌여진 코란을 읽고 있는 여성들을 보여주며 당당하게 이슬람사회의 현실과 정체성에 대한 해부를 한다. 반면 사이트는 서구사회에 숨겨진 동양에 대한 인식들을 해부한다.이것은 서로 같은 선상에서 같이 읽혀 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쉬린 네샤트

이란계 뉴욕거주

교육

1982 UC 버클리 대학 회화과 석사, 캘리포니아, 미국

1981 UC 버클리 대학 미술 이론 석사

1979 UC 버클리 대학 회화과

개인전

2000 카스텔로 디 리볼리, 튜린, 이탈리아 Kunsthalle Wien, 비엔나, 오스트리아

1999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일리노이, 미국

1998 테이트 갤러리, 런던, 영국 휘트니 미술관 (필립모리스) 뉴욕, 미국

1997 Annina Nosei 갤러리, 뉴욕, 미국 Lumen Travo, 암스텔담, 네델란드

1996 현대 미술관, 프리보그, 스위스

그룹전

2000 시드니 비엔날레, 시드니, 호주 휘트니 비엔날레, 뉴욕, 미국

1999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이탈리아 " Looking For A Place", SITE SANTA FE, 뉴멕시코, 미국

1998 "끝나지 않은 역사", 워커 아트센터, 미네아폴리스, 미국

1997 제5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이스탄불, 터키

1996 시드니 비엔날레, 시드니, 호주 "가상의 존재들", 엑시트아트, 뉴욕, 미국

1995 제4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이스탄불, 터키

1994 " 신예 사진 작가 3인", 샌프란시스코 하이네스 갤러리, 캘리포니아, 미국

▷수상

1999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상

1995 미국 작가상, 제 4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1957년 이란 태생인 쉬린네샤트는 UC 버클리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현재 뉴욕에서 활동 하고있다. 사진과 함께 최근엔 비디오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제3세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과 가설에 대한 제시와 비판을 바탕으로 하고, 여성학적 관점에서 제3세계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한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국제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은 민족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 정체성에 의해 규정된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다.

이 발제를 위해서 참고한 자료.

옥타비아 쟈야Octavia Zaya,독어번역 Birgit Herbst,shirin Neshat, 뮤지움 프리드레치아눔,1998.

시대전환 Zeitwende카타로그,본미술관 ,2000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샤이드,박홍규 역,교보문고,1991

발제:백기영 (뮌스터 미대)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2001년 3월 작가연구 4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발행원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m/k.pe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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