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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1년 3월 메일메거진 27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을 우리눈으로 읽고 우리의 시각을 찾고자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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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뉴튼 전

옆의 그림을 클릭하시면 베를린 신 내셔널 갤러리로 이동합니다.

"신 내셔널 갤러리의 입구에 들어서면 아래와 같은 노골적인 누드사진과 그앞에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하는 독일 신사들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50여년을 대중잡지에 포로노 사진과 여체를 주로 찍어온 이른바 상업사진작가가 신성한 예술을 다루는 미술관에 들어선 것이다.그가 다루는 여인들은 에로틱한 감성을 유발하는 관음증의 만족대상이 아니다.그의 사진에 들어 있는 여성들은 아주 자신 만만하게 자신의 성을 드러내고 있다.강인한 신체미와 수치심을 모르는 이 여성들은 우리시대의 페미니스트들에게서 느끼는 파격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벌거벗은 누드 사진앞에 서 있는 남성들은 이 사진속의 여성에게 지배 당하는 것 같은 당혹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당당한 포즈와 함께 사진의 강한 콘트라스드가 이 효과들을 강화시키고 있다. 밝은 배경에 우뚝선 실제 인체크기보다 조금크고 관람자의 시선위로 배치된 사진들은 이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누드의 여성들은 관람자를 내려다 보고 있다.(지난 신년미술관 기행에서 )"

헬무트 뉴튼의 전시광경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찻았다.

"카메라는 속이지 않는다.그러나 내 카메라는 언제나 나를 속였다."

헬무트 뉴튼은 1920년 10월 31일 아주 성공한 단추공장사장의 아들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그때문이었는지 그는 벌써 12살에 자기만의 카메라를 구입할 수 있었다. 4년후에 그는 자신의 직업에대한 소망을 확고히 하게 된다.패기만만한 사진사가되고 싶었다.그의 이러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 16세에 학교를 마치게 된다.두번째로 그는 당시 베를린의 유명한 패션,인물,누드사진 전문가 야바Yva에 견습공으로 취직을 하는데, 이일은 알게된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경고를 했다."얘야! 너는 그저 무명작가로 네 인생을 마감하게 될거다."만약 그가 헬므트 뉴튼의 재능을 알았더라면 그런 잘못된 예견을 하지 않았으리라.그는 몇년 뒤의 자기 아들의 성공을 미리 내다 보지 못하고 있었다.

1938년 뉴튼은 나찌의 탄압을 피해 싱가포르로 이주했다.그리고 거기서 "Singapore Straits Times"에 자리를 얻게된다.일단 그의 직업에 대한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된 것이다.그러나 그는 보조 사회부기자직은 두주만에 그만두게 된다.왜냐하면 그는 사진을 찍는데에 너무도 느렸다.그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찍으려고 하기도 전에 모티브는 벌써 달아나 버리고 없었다.그때부터 벌써 그의 사진을 결정하는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의 사진은 실제를 기록하는 특성의 사진이 아니라 언제나 아주 효과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감동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1940년 그는 호주에 정주하게 된다.그리고 멜버른에 몇년뒤에 사진스튜디오를 하나 연다.거기서 그는 자신의 사진 모델로 일했던 지금의 아내 준June을 만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그녀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그는 저에게 한품도 주지 않았어요.그러나 그댓가로 저랑 결혼을 해주었지요."

비록 그의 사진 스투디오일이 결혼 이후에 아주 번성하였지만 ,그는 1956년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다."나는 사진사가 되고 싶지 사업가가 되고 싶지 않다"고 그의 의지를 표현했다.

욕망하는 주체

1000년대에서 2000년대로 들어서는 우리시대에 뉴튼의 사진은 더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텔레비젼을 통해서 전달되는 이야기들과 진짜같은 폭력장면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기때문이다.그저 더 다른 어떤 것이나,좀 더 깊이있게 다룬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뉴튼이 세계를 거꾸로 돌리는 논술을 통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획득하게된 한 위대한 사회연구의 다른 형태를 보게 되는 것이다.거기에 이 세기말의 여성의 성적인 위치를 파악하게 되는 여자들의 사진이 보여 진다.20세기 사진역사에 헬므트 뉴튼이 끼진 공헌은 단지 성동적인 사진에 있는 것은 아니다.여성들을 이렇게 보여지게 함으로서 얻는 예측되어진 직관과 상상력,육감 또한 중요하다. 이것들은 2000년대를 시작하는 요즈음 우리는 그러한 게임을 절제하기보다는 즐긴다.그리고 사랑하고 욕망한다.누군가 원한다면 그가 원하는대로 모든 정열을 다하고 건강이 닿는데 까지 자신의 육체를 날씬하게 하고 정력을 왕성하게 가꾸는 것이다.(서구인들의 개방된 성 개념을 이해할때 이 텍스트는 보다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책임을 지는 그런 자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이다.자기 스스로 자신의 성을 결정할 능력을 상실당한 여성들은 뉴튼의 사진에서 욕망하는 주체로 부활한다.하나의 대상으로서 나약한 여성으로 부터 거리가 멀고 여성멸시와 향락적으로 남성에게 지배 되는 그런 여성들이 아니다.처음으로 인류상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성을 주장하고,이제는 더이상 모태를 위해 제한되고 강요된 여성성에 대해 반대한다.

왜 뉴튼의 사진들이 그렇게 충격적일까?에 대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그의 연출된 사진들은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이 사진들은 여성의 새로운 자유에 암암리에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게 해주며,이러한 자유를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을 통하여 성인들의 인식속에 계속해서 갈등하게 만든다.뉴튼의 사진들은 결과적으로 이 자유공간에의 정복과 일치하게 된다.여기서 유태적이고 기독교적인 도덕은 폭발되고 만다.

뉴튼의 개혁적인 창조물들은 계속되어 발전되었고,나중에 모든 이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정리되었다.그것들을 통해서 동시에 총체적이고 우주적인 사고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파울 엘루라드가 말한대로 우리는 "뉴튼의 사진은 모든 다른 예술품처럼 무언가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헬무트 뉴튼 전에 당당히 자신의 성을 드러내는 여성들

뉴튼이 찍은 독일의 수상 슈뢰더의 사진(이 사진은 누드여성들의 크기와 비슷했다.)

장르

뉴튼은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패션사진,누드사진,인물사진,으로 구분했다.그것은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면 그의 패션사진은 동시에 누드이기도하고 누드가 동시에 패션사진이기도하다.이런식으로 그의 인물사진에 대해서도 누드사진과 의심의 여지를 남겨 준다.헬무트 뉴튼은 그는 장르를 뒤섞는 것을 아주 즐긴다.그리고 그 장르를 다른 것에 포함 시킨다든지 그 카테고리를 혼용하는 방식으로 그 경계를 아예 없애 버린다.결국 그러나 그는 항상 일반적인 형태의 장르로 결정해버린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보다 편하게 이해하게 하기위해서라고 말한다.너무많은 설명을 덫붙여 보는 이들을 골치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방법을 경제적으로 수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단한가능성과 시각적인 효과와 설득력을 얻기위해서 자주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기를 즐겨한다.똑같은 상태나 포즈,같은 크기의 누드에서 옷을 입고 입지않은 여성을 바꾸어 가며 찍는 것이 그것이다.

1980년 이래로 그는 "커다란 누드""벌거벛은 여성과 옷을 입은 여성","가정적인 누드",변형된 누드,걷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들은 뉴튼에 의해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하나의 레퍼터리이다.

이전시를 위해서 프란코아스 마르퀴트Francoise Marquet의 전시 서문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백기영 뮌스터 미대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2001년 3월 메일메거진 27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발행원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m/k.pe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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