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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1년5월 뒤쎌도르프 시위 행사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을 우리눈으로 읽고 우리의 시각을 찾고자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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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5일 뒤쎌도르프 극우파 반대시위 예술가들의 행위

백기영 (뮌스터 미대)

*위의 그림을 클릭하시면 행사 대책위인 베를린 리포트페이지로 연결되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신 나찌 한국 독일계 소녀 습격 -팔에 나찌 마크 새겨 넣고 구타하고 달아나.

2001년 4월 1일 한국 독일계 소녀가 머리를 빡빡민 스킨 해드의 신나찌에게 습격을 당한 사건이 벌어졌다.이 사건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대책위의 보도에 의하면"지난 4월 1일 오전 11시 20분 경 피해자인 10대 여학생은 뒤셀도르프의 어느 지역(피해자 보호를 위해 신원과 구체적인 사건 발생 지역은 생략하겠습니다)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머리를 빡빡 밀고 검은 색 계통의 옷을 입은 스킨헤드 4명이 이 학생을 습격한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이들은 너무도 놀라고 겁에 질려 목이 잠겨 비명 소리마저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 학생을 위협하여 근처의 지하 주차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들은 셔터가 내려진 지하 주차장 입구 앞에서 이 학생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으면서, 이마를 둔기로 타격하고 칼로 목을 긋고 왼쪽 팔뚝에 6 cm 길이의 나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를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은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습니다. 보통 이 학생은 일요일 이 시간에 부모와 함께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하필 이 날은 손님이 오셨기 때문에 혼자서 산책을 나섰다고 합니다." 이글은 4월8일 정금석님에 의해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게시판에 올려 졌고, 이 사건을 지켜보던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이 사건에 어떻게 대처 할것인지를 메일토론을 통해서 구체화 시켰다.일단 이 사건의 대책위 배너를 걸어 인터넷상의 지지를 표명하기로 결정했고.독일의 현대미술여행 우편에 빨간 배너를 달아 베를린 리포트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신속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단체중에 하나는 인터넷상에 웹진을 운영하고 있던 본에 본부를 둔 베를린 리포트였다. 그들은 4월15일 공식적으로 5월5일 평화시위를 기획하고 이 행사가 문화 시위의 형태로 진행된다고 연락을 해왔다.거기에 "한 하늘, 한 땅, 한 인류,"라는 평화적 테마도 전해져 왔다.

짧은 시간에 이런 정치적인 행사를 돕는 이벤트를 기획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으나 최선을 다해 도와볼 생각으로 일단 행위중심의 작가들을 섭외했다.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이라는 인터넷상의 구심점이 없었더라면 정말 엄청나게 어려웠을 일이다.베를린 리포트의 대책위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손빠르게 움직일 수 있엇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인터넷은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예술과 정치적 테마의 만남.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시위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프로파 간다적인 성격의 작업과 그 작업의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정치적 목적의 작업으로 오해 받는 것을 꺼려하여 참여를 거부하였고, 실제로 대책위에서도 가장 우려하였던 극우파의 대응 시위 혹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동참을 꺼려하는 이들도 있었다.예술가로서 이국땅에서 살아가며 이러한 부조리한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나는 이러한 소외받는 소수민족국가에서 온 한 외국인에 불과하고 그저 잠잠히 내 예술을 지속하며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가? 내게는 이러한 물음들이 계속되었다.예술가는 인권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말 할 수 있을까? 이번 행사에 가장 큰 고민들중에 하나였다.

예술과 대중들의 만남.

이번행사는 독일에 유학중인 유학생 교포, 교포 2세 독일인,소수외국인들 터키인, 중국인 일본인들을 포함한 대략 천여명이 참여했다.주최측에서 예상한 오백명에 두배를 웃도는 성공적인 행사였다.거리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독일인들이 사물놀이 풍물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도하고 환호의 격려를 보내주기도 했다.두번째 기획의 어려움은 아무리 예술적으로 소화된 작업이라 할지라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역시 어려움을 격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이해하는 예술이해는 우리의 이벤트나 행위를 예술의 문맥에서 소화해 내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책위는 필자가 올린 기획안을 보자마자 이 기획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환호에 찬 기대를 보내왔다.예산의 어려움과 척박한 상황을 모두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이 앞에 있었다.그리고 이 행사를 끝내곤 난 지금은 우리의 행위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해되었고 또 이해 시킬 수 있까? 하는 과제들을 안고 있다.

기획의 첫 단추-온정을 가진 정체성

기획의 첫 단추는 이미화의 작업에서 풀렸다. 오랫동안 그녀의 작업을 지켜 봐왔던 필자에게 이 행사와 함께 다가온 작업 비물질성과 개념성 행위의 의미성에 주목을 해 작업을 해오던 이미화의 작업들에 집중되었다. 그녀는 "Waermentsusch온기의 교환"이라는 행위를 보였던 적이 있었다. 공중전화나 슈퍼마켓의 시장바구니 앞에서 "동전이 필요하세요 동전을 바꿔드립니다."라는 문귀와 함께 그녀는 동전을 바꾸어 주는 동시에 주머니에 넣고 있던 따뜻한 동전을 전해 주는 행위를 했었다."한 하늘, 한땅, 한 인류"라는 호소력이 적은 듯해고 평화적인 주제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이 행사에 적합한 작가이었던 것이다.그녀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그녀는 행사 당일 눈에 파란 렌즈를 끼고 시위대와 함께 시위하면서 등에 "나는 파란색으로 보지 않습니다."라는 문귀가 씌여진 셔츠를 입고 움직였다.그녀는 아시아인이 가질수 없는 눈의 색을 착용함으로해서 생겨나는 정체성의 혼돈과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혼동을 유발시키는 상태를 행위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좌) 이미화의 파란 콘텍트 렌즈 작업.2001(우) " 나는 파란색을 보지 않습니다. Ich sehe nicht in blau"라는 문귀의 티셔츠를 입은 이미화.2001

(아래) 시위대속의 이미화 .2001

두번째 고리 -동질성

두번째 이 기획의 중요한 힘을 부여해 준것은 이현정의 슬라이드 프로젝트 설치 작업이었다. 그녀의 작업을 나는 프랑크 프르트 "Screening 07"전에서 처음 보았고,그녀에게 이 행사에 같이 할것을 선뜻 제안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업은 그녀의 자신의 남자 친구 독일인 토어분과의 관계를 그린 슬라이드 프로젝트 작업이다.두개의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업은 계속해서 영상을 쏘는 그림화면과 텍스트를 보여주는 텍스트 화면으로 나뉘어진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작은 비누방울을 매개체로 삼는다.어느날 그녀는 자신의 공간에 날아든 비누방울에 주목한다. 아주 인위적인 물질이면서도 신비하게 날아다니는 이 비누방울은 그들만의 공간에 은밀한 침입자 역할을 한다.비누방울은 인식하기 쉽지않은 아주 민감한 것이다. 그 비누방울은 자고 일어난 토어분의 침대에도 토어분의 욕실에도 따라다니지만 토어분은 눈치채지 못한다.그녀는 자신 만이 알고 있는 이 비밀 이사실에 대해 토어분이 알고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묻는다."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그 어떤 것을 볼 수 있냐?"고....그는 고민한다."그녀가 보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 그러던 어느날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나는 네 어깨위에 있는 비누방울을 보고 있어."그녀는 말한다.언제고 강력하게 주장한다.사람은 서로 같다고 ...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를 뿐이라고...

처음에는 뒤셸도르프 반호프에 그녀의 작업을 설치 하기로 계획을 했었고,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행사전 장소 답사에 들어 반호프 관계자를 만나고 나니 우리의 생각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우리는 어떻게든 거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 해야 했다.천막을 치는 방법에서 가건물을 짓는 일까지 모든 궁리를 다했으나 그녀의 작업을 담을 적당한 공간이 없었다. 행사 이틀전에 그녀는 이번 행사에 빠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가슴 아픈 결정이었지만 대안은 없었다.대책위가 변호사를 통해 급히 시위행사장에 가건물을 지어도 좋다는 허락이 내려왔지만 그녀의 작업이 설치되기에는 적합하지 못했다.

바로 전날 우리는 낡은 폭스바겐 자동차를 뒤를 들어 올리고 그안에 프로젝트를 설치 할것을 결정하였다. 두개의 프로젝트가 나란히 비추었을때, 공간이나 관람자의 시선을 전혀 문제삼지 않는 적합한 형태를 찾아낸 것이다.나는 지금 이자리를 빌어서 그녀에게 감사한다. 이 시위에 같이 해준것에 대해서...다음에 남는 문제는 전원공급이 문제였다.대책위가 급하게 일을 추진하면서 시위현장에서 전원시설 사용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대책위도 마이크 장비와 전원공급장치를 따로 구입해야 했던 것이다. 두개의 프로젝트를 돌리기에 자동차용 밧데리는 적합치 않았다.당일날 현장에서 약국과 호텔에서 사정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거의 한시간이 넘게 졸라보다가 건너편에 있는 베커라이에서 만난 한 한국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우리는 우여곡절끝에 전원공급을 받았다.

(좌,우)이현정의 자동차 설치 장면. 두대의 슬라이드 프로젝트.2001

 

하늘을 향한 염원-익명의 독자를 향한 편지.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면 권리를 쟁취하려고 하기 이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중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 시위행사가 문화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적극 찬성하고 이것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자유라든가,평화라든가,진리라든가, 선이라든가,예술이라든가를 외치는 사람들은 왠지 맹목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한국인들이 천명이 모여 뒤쎌도르프를 뒤집었다고 하자. 독일에 소수민족의 인권이 하루아침에 변화를 가져 올수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지 않는 호소는 더욱 적대감을 자극시킬 뿐이다.나는 이번 시위를 통해서 함께 사는 사람들의 평화와 사람들간에 신뢰의 회복을 바라는 염원을 했다.마지막까지 '너희들의 정치적 행위는 독일의 극우파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라는 한심한 네티즌의 글들이 난무한 베리의 게시판을 보며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치적이라는 생각조차 않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우리의 시위를 길가는 독일인 몇이 보았을까? 그리고 몇이나 공감을 했을까? 한국인들이 모여 뒤쏄도르프 거리를 걷는 일은 정치적인 일이 아니다.우리의 권리를 위해 모였다지만 이것처럼 허무해 보이는 일은 없었다.그러니 시위의 명분을 물으면 구차하고 당연한 답을 줄뿐이었다.시위가 이렇게 이해되어지는데, 우리의 행위는 오죽하겠는가?

이 허무한 시위대의 등뒤로 나는 풍선백개를 날렸다.거기에는 국문학을 전공하신 엄정화님의 글이 독문학을 공부하시는 박용해님에 의해 번역되어 애절한 호소문으로 매달려 있었다.이 풍선들은 뒤쏄도르프 시내의 건물들 사이사이로 지나 제 갈길로 날아 갔다.세시간 정도를 떠 돌다보면 헬륨가스가 빠지고 어느 들에 어느 길가에 떨어져 잊혀지거나 어느누군가에 의해서 읽혀지겠지. 누군가 이글을 읽고 공감한다면 나의 주소로 이 카드를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을 했다.얼룩진 흔적들이 남아 있을 이 카드를 나는 지금 기다리고 있다.부당한 폭력을 당한 한 소녀의 아픔을 실은 이 글은 독일내의 극우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고발하는 것이다.

(위의 사진)풍선을 날리고 있는 백기영.(옆)풍선을 하나 주워 오토바이 뒤에 매달은 독일 경찰.

그리는 것 자체가 나의 호소

변웅필은 이 행사에 이사짐 차량을 세워 놓고 그안에서 드로잉을 했다. 주로 사람들의 어울어 짐과 사람들의 존재적 고민을 담고 있는 그의 드로잉들은 알기쉽고 다가가기 쉽게 사람들에게 접근해 갔다.엉덩이를 맞대고 있는 두 사람,풀밭에 누워 있는 두사람.생각하는 사람.간단한 선에 의해서 그려지고 간결한 붓터치로 그려진 그의 드로잉들은 차안에 걸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그의 드로잉에 반한 몇몇 시위 참여자들에게 기념으로 자신의 작업을 나누어주기도 했다.그는 그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사람들을 드로잉한다, 내가 그리는 그들은 어떠한 선입견도 가지지않는 모습이다. 의상과 머리카락, 성별의특징 등을 표현하지 않고, 또 그들의 행동모습에서 원인과 목적이 들어나 보이지않도록 하는데 , 이러한 드로잉을 통하여 나는 세상에서 대하게되는 모든 사물,또는 인간을 대할때 드러나는 선입견의 모순을 배제하고 대상의 순수함을 야기하려한다."

(위의 사진)드로잉을 하는 변웅필와 그림.(좌)이삿짐 자동차 안 광경.

시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과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목청을 놓아 외쳐도 못마땅한 마당에 예술가들은 우리 옆에서 장난질이나 하고 있다.''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정치적 행사에 끼여 들어 어울리지 않는 들러리나 서고 있다.'라는 비판을 우리에게 퍼붓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사실 시위에 참여한 한국인들보다도 길을 지나는 독일인들에게 더 많은 격려와 찬사를 받았다는 작가의 고백과 한국인들의 평화주의와 문화적 힘을 한 몸에 느꼈다는 호위 경찰의 고백과 지금것 보았던 전시중에 가장 인상적인 전시였다는 한 외국인 작가의 고백은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었다.문화적인 시위를 기획한 대책위조차도 문화적 시위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한 경험이 너무 적었다.아니 한국인들 에게 있어 밥먹고사는 문제 이외의 예술이니 기타 등등의 문제는 무가치하게 보여진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대중이 있는 곳으로 예술가들은 자꾸 내려서야 한다. 그래서 잦은 만남을 가져야 한다.예술이 삶에 어떤 유익을 줄수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궁굼해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시위와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이렇게 말하고 싶다.'작가들은 그곳에서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고 생각해주시죠.'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해보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참여작가 모두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었다."내가 그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그리고 내 작업이 같이 있어서 더 기뻤다."라고 한 작가는 행사가 끝나고 메일을 보내왔다.우리의 갈길은 아직 멀다.우리의 예술을 이해 시키려는 노력과 일반인들이 함께하는 공간에 같이 서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는 교훈을 되세기며...독일하늘 아래 뿐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 든지 피부와 성별과 종교에 차별이 없는 모든 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여기에 참여한 작가들의 행위와 작품을 모은 기록작품전을 기획중입니다.

작가들의 전시를 후원해 주실 분들을 찾습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으로 메일주십시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2001년 5월5일 뒤셸도르프 시위 행사보고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발행원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m/k.pe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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