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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0년3월 8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사진과 새로운 미디어에서 그림과 사본,실재와 비실재(조망 3)

*옆의 그림을 클릭하시면 양석윤 과 주인숙의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한국작가들을 소개하는 란을 만들었습니다.독일에서 유학중이거나 활동하시는 한국작가 분들의 홈을 링크하거나 전시소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연락을 주십시오.

 

일요일 새벽 부터 새벽잠을 설쳐가며 예술사냥을 떠나는 것이 마치 내가 무슨 사명감에라도 사로잡혀 있는 전사갔다는 생각을 했다.지난하루는 본(Bonn)의 "시대전환 회고와 전망"전을 보기위해 바쁜 걸음을 했었는데, 오늘은 눈 내리는 새벽길을 달려 양석윤과 주인숙이 일년동안 장학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작은도시 렘고의 작업실로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이게 모두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을 인터넷위에 띄어 놓고 생겨난 나의 생활에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이다.어디 기사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나도 모르게 항상 찾고 있으니 말이다.다행히도 오늘 나는 헛걸음을 하지 않았다. 양석윤의 렘고 작업실에서 나는 그가 만든 CD-Rom하나를 받았는데,그가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온 인터악티브 예술의 결정판이었다.그는 그의CD-Rom작업을 통해서 관람자가 그의 작업실로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관람자는 그의 작업실 구석 구석을 다니며 벽에 걸려진 주인숙의 인체작품을 눌러볼 수도 있으며(그림을 클릭하면 그림이 여러가지 조형형태로 변한다.)양석윤의 유학 초기작업인 피망의 전개도를 클릭하면 전개도가 말려들어 입체 피망이되는 등등,3D그래픽과 인터악티브 프로그램들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었다.커서를 책꼿이 옆으로 이동하면,꼿혀진 카타로그들을 하나씩 꺼내어서 넘겨볼 수도 있도록 만들었는데,그동안 두 부부가 제작한 작업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었다.비디오 모니터 화면 앞에서는 비디오 필름들을 클릭해서 퀵타임 비디오도 감상할 수있도록 하였는데,그동안 그의 전시들을 기록한 필름이란든지,그의 퍼포먼스등을 볼 수있었다.문앞에 놓여진 신발을 클릭하면 그들의 작업실을 나오게 되었다.

이 작업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게 느낀 것은 양석윤이 제작한 CD-Rom안의 공간은 묘하게도 그가 생활하는 실제 아뜨리에 공간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아뜨리에에서 그의 작업을 보고있는 나는 실재로 내가 그의 아뜨리에를 뒤적거리고 있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쟝 보드리아르는 그의 책"시물라시옹(민음사출판,하태환 역)"에서 '실재는 무한정 재생산 될 수 있다.실재는 이제 합리적일 필요가없는데,그 이유는 실재란 더 이상 이상적이거나 부정적인 어떤 사례에 빗대어 측정 되지 않기 문이다.실재는 이제는 조작적일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때로 양석윤은 그의 작업이 실재일 수도 혹은 조작 혹은 시물라르크화 된 실재일지도 모르는 디지털이미지 여행을 시도한다.헛점을 드러내지 않는 완벽한 그래픽작업과 수 많은 시간을 컴퓨터앞에서 보내야 하는 중노동을 통해서 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그의 작업이 가지는 아우라는 디지털 코드의 무수히 복제가능한 기호로 둔갑하고 이것은 어느새 3D입체 화면의 가상실재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테마의 전시를 오늘 아침 나는 립슈타트의 쿤스트 페어라인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우연히도 이전시의 주제는"사진과 새로운 미디어에서 그림과 사본,실재와 비실재"이었다.이전시는 노드라인 베스트팔렌에서 각 소도시의 대표작가들을 추천해서 10명의 젊은 작가를 뽑고 1년에 걸친 장기간의 순회전을 하도록 되어있었다.하노버의 엑스포 특별전에도 참여한다고 하니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있는 전시가 아닌것은 분명하다.여기에 렘고의 추천작가로 한국작가 주인숙이 초대를 받았다.

테마소개를 앞에서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작업들이 미디어 특히,사진매체에 관한 것이었다.사진에 관해 아는것이 별로 없는 필자에게 사진을 이론적으로 분석 기술하는 것이 쉽지않은 일이라 카타로그 서문과 전시 오픈 당시 위르겐 클라우스의 말을 빌어 몇자 적어본다.이 전시의 제목"전망 3"이라는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전시는 세기전환을 계기로 지난세기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를 전망하려고 한다.그러기에 아주 적합한 매체가 바로 사진이다.사진 기술은 19세기말에 개발되어 20세기 한세기를 새로운 매체로서 실험되어지고 발전되어 왔다.동시에 사진은 다음세기를 선도할 만한 미디어 임에 틀림이 없다.이와 같은 이유에서 사진을 통해 지난세기를 돌아보고 또한 동시에 다가오는세기를 내다 볼 수 있어지는 것이다.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모두 12명으로 대략 반정도의 작가는 사진의 고전적 기술을 그대로 이용하며 그것을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토마스 브레데 "새는 허공에

멈추었고,울부짓는다."1994-

19974부분의 연작 240*140 cm

여기에 대표적인 작가로 클라우스 혼네프는 토마스 브레데를 든다. 그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필름의 감광물질을 조작하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는 토마스 브레데의 커다란 사진에 몸의 흔적을 남겼다.사실 그 새는안에서 부터 밖으로 채광하게 만들어진 커다란 유리창에 충돌한 것이다.그의 물리적 충격으로 꼭 그림같은 흔적을 유리위에 남기었다.새는 죽었을까? 아니면 다시 푸드덕 거리다가 어디론 가 날아 갔을까? 알 수 없는 새의 흔적을 토마스 브레데는 네거티브 현상처리를 했는데,유리위의 먼지를 하얀색의 흔적으로 화면에 남겨두고 배경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서 새의 죽음을 암시한다.'작품의 제목은 "새는 허공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울부 짓습니다."이다.1994년에서1997년에 이르는 연작 중의 하나다.

토마스 브레데 ,사진 연작,1996,얼루미늄위에 바리포토그래픽,83.5*220

그는 이번 전시에 또다른 연작" "를 출품했는데,화면에는 이른 봄에 감자를 빨리 자라게 하기위해서 사용했던 비닐하우스의 비닐조각들이 땅에서 뒹굴고 있었다.처음 얼듯보기에는 아주 세련된 조형물처럼 다가와 그의 사진기술에 깊이 감동받게 된다. 땅의 어두운 색과 질감그리고 비닐의 반짝이는 색과 질감에서 이색적인 느낌을 줄 뿐더러 암울한 하늘 처리를 통해서 종말이라도 만난 세상을 예견하게 된다.그러나 그의 " "프로젝트와 앞에서 설명한 "새는 허공에 멈추었다.그리고 울부짓는다."를 통해서 그는 환경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린피스의 환경운동 포스터로 쓰이기에는 너무도 기교적이며 예술적인 그의 작업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의 이미지들로부터 정치적인 힘을 느끼게 된다.그는 덴마크의 삼소섬에서 일어난 환경스켄들을 고발하는것이다.감자농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곧장 농사에 사용했던 비닐들을 땅속에 묻고 숨겨 버린다.그러나 바람이 불어와 누웠던 비닐들을 다시 일으켜내고,토마스 베어데는 태양이 가장 높이 뜬 오후에 산업화된 농촌풍경의 찌꺼기들을 사진에 담는다.그리고 촬영된 흥미로운 풍경들은 "조립된다."빛은 진기한 중경의말려진 비닐들-몇몇은 벌써 썩어빛 바랜-위로 흐릿하게 비친다.그는 단순히 실재하는 대상들을 상대로 실험에만그치는 사진작가가 아니다.그의 대상들은 다시금 사회적, 정치적 고발의 목소리를 낸다.허공에 멈추어 울부짓는 새의 울음을 들려준다.

 

나는 또 한명의 인상적인 풍경 사진가를 만날 수가 있어는 데,그는 토마스 푈러 였다.그의 사진은 일상적인 사진의 시각을 벗어나 창의적인 시점에서 제작되어 진다.비스듬히 비탈진 언덕의 눈이 내린 풍경에 눈에 밀려 마치 떨어질 것같은 아슬아슬한 두채의 집을 찍은 사진에서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조감투시를 사용해서 더욱 긴장감을 얻고 있다.그의 들판사진들에는 이른해 초봄에 씨 뿌리기 직전에 트랙터로 갈아 없은 들판을 소재로 했는데,여기저기 드문드문 남아 있는 풀 숲과 잔디들이 화면에 등장한다.이 광경은 절제된 추상화가의 필치처럼 화면을 수평으로 가른다.소실점 가까이에 있는 수평선에 조밀하게 누은 흔적들이 넓은 들의 공간과 함께 어울어져 ,그다지 크지 않은 사진위에 깊은 공간을 그려놓았다.

토마스 푈러 기원 2,1996,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고있던 회화작품들과 작가 자신의 초상사진을 접합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획득하는 사진 작업을 1980년대부터 해왔던 클라우디아 반 콜빅 은 한 바로크 회화작품앞에 서있다. 얼핏보아서는 작가 의 모습자체도 회화의 한장면인것처럼 착각하기 쉽다.비통에 빠진 그림 안의 인물들은 벌거벗은 채로 죽음을 맞이한 한 여인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다.바로크 풍의 같은 조명아래에 있는 작가는 이 속에 침몰한다.그러나 이 사진에서다시금 우리가 발견하게 것은 시간이다.그리고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윤기도는 유화가 그려진 캔버스의 화면이 아니라 화면전체가 동일한 질감으로 이루어진 사진의 한장면을 보고 있다는 것은 확인하게 될 때 ,우리는 다시 날카로운 그녀의 눈빛을인식하게 된다.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클라우디아 반 쿠윅,발젠카,사진 연작 1981-1998 /무대위의 보고미어"커다란 음식"

그리고 대략 반 정도의 작가들은 사진을 화학적인 매체로 현상용액에 담그지 않고 건조한 사진 이른바,디지털 이미지로 다가간다.사진의 원 이미지는 컴퓨터안에서 다시 조작되어 질수 있고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선다.위르겐 클라우스는 디지털이미지와 관련된 작업들을 설명하면서 주인숙의 작업을 언급힌다.그리고 그는 그녀의 작업을 "눈(Augen)"을 조형의 가능성 Gestahltungsmochlichkeit으로 보았다는 데에서 새로운 미디어와 예술과의 관계를 연결지으려 하였다.눈은 우리가 가진 원초적인 미디어이다. 우리가 켄버스의 천위로 그려진 붓자욱과 물감덩어리로 옮겨 가기 이전에 카메라의 암실 상자와 렌즈의 반사경을 거쳐 가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눈은 우리의 뇌신경에 시각적 자극을 주기위한 하나의 미디어임에 분명하다.그는 주인숙의 작업을 그렇기 때문에 보다 정확히 이해 할 수있었다.주인숙은 그녀의 눈 안에 그녀가 그동안 제작했던 작업들을 집어넣어 놓았다.눈은 이미 조형의 대상이 되었다. 눈의 모양이 바뀐다. 사실 우리의 눈은 갈색이다 녹색이다 정해진 형태를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은 정해진 형태가 따로 없다. 우리가 보는 대상에 따라 우리눈은 형태와 느낌을 나타낸다.그녀의 작업에서 처럼 미디어와 예술이 일치된 세계를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분사잉크인쇄(Tintstrahldruck)을 통해서 출력된 디륵 슐리히팅의 작업을 보면서 마치 인상주의화가의 풍경화 한폭을 보는 것 같았다.그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옮겨서 사진의 인화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인쇄를 시도했다.결과는 아주 매끄러운 인화지위에 값나가는 상품처럼 치장된 사진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거칠고 투박한 회화의 느낌을 끌어내고 있었다.

 

디륵 슐리히팅,항구,1998,잉크분사인쇄,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2000년 3월 8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발행원 :백기영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m/k.pe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