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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2001년9월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제날레 1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을 우리눈으로 읽고 우리의 시각을 찾고자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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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 베니스 베엔날레 아르제날레 1

백기영 (뮌스터 미대)

*옆의 그림을 클릭하시면 베니스 베엔날레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올해로 49회를 맞이하는 베니스 베엔날레가 전시기획의 귀재로 불리는 헤럴드 스제만의 기획으로 열렸다.유럽인들의 정신문화의 상징이었던 베니스는 이제 관광산업으로 얼룩져 더이상 정신문화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찾아 볼 수 없는 죽어 있는 관광지에 불과한 장소로 전락하였다..지난 1995년 이후 두번째 이 도시를 찾는 필자는이 도시의 실제가 어디에 있는지 궁굼했다.구비 구비 늘어선 낡은 옛 건물들과 그 사이를 줄지어 다니는 관광객들의 꼬리를 쫏으며 든 생각이다.이러한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콘도라를 저으며 아리아를 불러 제치는 가수의 노래소리가 베니스 해변으로 퍼져 나오면 나는 마치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이 도시가 만들어 내는 아우라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러다가 나는 골목사이를 만국기 처럼 가로지르고 있는 빨래들의 행렬을 보면서 이 환각에서 빠져 나왔다.그리고는 낡은 창문 사이로 화분에 물을 주는 한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그제야 이곳에 사람들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죽어 있는 고성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난 것이다.마치 미로 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에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수단 좋은 상인들과 레스토랑들 ,그리고 환전소 ,대부분의 일상용품 가게들은 베니스 밖을 벗어나 있어 나는 한동안 관광객들의 섬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쿤스트 포름의 하인츠 로버트 족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베니스는 마치 베니스 수면에 비쳐진 하늘과 같은 도시입니다.찬란하고 파랗게 눈을 시리게 하는 이 하늘은 물이 아닌것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바닷냄새 나는 물이지요.베니스의 실상을 가리우고 있는 이 찬란한 빛들이 걷혀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베니스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니스 베엔날레를 준비하면서 헤럴드 스제만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들은 이러한 베니스의 실제에 대한 판단 착오에서 온것 이었다. 스제만은 말한다."베니스는 온 도시가 여행객들로 오염되었습니다.베니스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언가 득이 되는 것이 있는 지를 생각합니다.배를 모는 사람에서 공무원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한결 같습니다.문화 행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문화는 문화에 대한 기대로 투자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언제고 득과 실을 계산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법이지요."

론 뮤엑,(1958년생,런던 거주)무제(베이비).조각 2000

지난 노병에 들어 죽어가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젊게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던 48회 비엔날레의 기획자 스제만은 이번에도 사람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아르젠날레를 가득채운 그의 초대작가들의 공간하나 하나는 지나는 관람자를 숨죽이게 만들었다.지난 비엔날레와 어떤 차이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제만은 "완전히 다릅니다. 참여작가 118명중 단지 두명의 작가만이 중복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매일같이 자전거도 타지 않고 비엔날레 전시장 전체를 걸으며 기획을 했다는 스제만은 관람자들이 어떤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될지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또한 작가선정과 공간선정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든 작가선정과 위치 선정 동선배치에 의미가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모든 이유들을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사실 제가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하게 된 것도 이러한 총체적인 전시의 연관성때문이 아닌가요?"하고 되물었다.

카를레스 쎈디손(1969년 영국생,핀란드 거주),리빙룸,2001 설치

인간을 둘어싼 실존의 환경을 언어화 하고 있는 카를로스 쎈디손의 작업"리빙룸"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의 말대로 우리 실존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을 개념적으로 나열하고 있다."엄마.아빠.삶,죽음,젊음,늙음,등등.."의 단어들이 공간을 둘러싸고 관람자 주위를 맴돌고 있다.이 단어들은 어렴풋이 나타났다가는 어느순간엔가 빙빙돌던 크라이스를 벗어나 사라져 버리고 만다.마치 개개의 단어들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꿈틀거리는데, 이 꾸물거리는 단어들을 쫏다보면 관람자는 어느덫 의미의 파편화된 언어들이 만들어낸 생명공학의 실험실에 와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인류의 지평-인간의 보편적 실존에 대한 물음

론 뮤엑,(1958년생,런던 거주)무제(소년).조각 2000

미래를 내다보는 거인이 된 어린소년의 공포,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르제날레를 들어서는 관람자들을 노려보고 있다.극사실주의 조각 기법으로 제작된 이 소년조각은 아르제날레 입구의 한 공간을 천장에 까지 닿도록 확대되었는데,그의 웅크리고 있는 자세는 그의 커다란 규모를 아주 작고 협소하게 만들어 주었다.21세기를 시작하며 더욱 박차를 가해가고 있는 인류의 유전공학기술은 가까운 미래에 예술가가 힘들여 제작한 이 조각작품보다 훨씬 더 쉬운 방법으로 인간의 몸을 확대 시킬지도 모른다.거대한 살덩어리 육체를 조작하는 이 기술이 정말 인간의 공포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세계에 대한 많은 두려움과 하잘것 없는 삶의 경험을 소유한 한 소년이 몸집만 비대해 진채로 공포에 질려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이 조각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크리스 커닝헴,(1970년생,런던 거주)All is full Love,2000 .비디오

시종일관 에머럴드빛 조명아래서 한 여성 사이보그를 조립하고 있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크리스 커닝헴의 영상작업은 오늘날 유전공학과 사이보그 기술의 영상적인 실현이었다.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영상작업은 인간의 표정을 가진 것처럼 조작된 한 여성사이보그가 자동차 공장의 기계조립공정에서 처럼 작업대에 앉아 군데 군데 아직도 완성되지 않는 부품들이 조립되어 가고 있다.시종일관 이 사이보그는 애절한 노래를 부른다. 이후 같은 여성 사이보그가 등장해서 서로 간의 애정을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성애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기계 사이보그가 느끼는 인간의 육감과 사랑을 표현해 주었다. 사이보그가 정말 인간의 육감을 소유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사이보그와 사랑을 하고 사이보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이는 섬찟하고 차가운 기계미학을 아름다운 음악과 성적 환상을 뒤섞은 애로티시즘이 영상안에서 하나로 융합시켜주어 가능했던 비젼이다.

크리스 커닝헴,(1970년생,런던 거주)All is full Love,2000 .비디오

끝없는 욕망덩어리의 육체는 이제 현대 예술가에게 있어서 더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우주공간의 무중력 상태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촬영된 크리스 커닝헴영상작업의 초기 화면은 두 남녀의 신체를 아주 심미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관음증적인 시각으로 서로의 신체를 훑어 보던 두 남녀는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한다.그리고는 상대를 향해 극도의 적대감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러한 적대감은 서로를 치고 때리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까지 번져간다.쌔디즘적인 환상과 매저키스트 적인 환상이 서로 오고 가도록 실현된 이 작업의 크라이 막스는 서로에게 행한 폭력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은 듯 고요한 두 사람만의 신음소리만이 간간히 들리는 장면이다.쓰러져 누운 여인의 눈에 발기된 남성의 몸이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환상이 스쳐 지나간다.그리고는 쓰러진 남자에게로 헐떡이며 기어가 떨리는 손으로 쓰러진 남자의 몸을 더듬어 안는다. 둘은 서서히 하나가 된다.(무슨 삼류 소설에 나오는 한 야한 장면을 배껴다 놓은 것 처럼 글이 촌스러워 지는군요. 후후~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진전되는 이 영상작업은 숨죽이게 하는 긴장을 유발시킵니다. 서로 치고 받는 폭력의 자극 ,피 흘림,죽을 것 같은 공포감,그리고 섹스,짧은 단편영화에 우리는 극장에서 느낄수 있는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요소들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빌 비올라 (1951년생,뉴욕 ,롱 비치 거주)흔들리는 사람,2000,비디오

비애가 가득 어린 한 여성이 거울을 바라보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은 빌 비올라의 이 영상작업은 이 인물의 그림자처럼 아래로 비추어진 또다른 인물이 서로 다른 표정으로 대립되고 그림자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아주 사실적인 영상의 느려짐을 이용해 제작된 이 작품은 인간의 비애가 담고 있는 수만가지 표정들을 순간순간 영상기술을 이용해 잡아내고 있다.전시장의 비디오 작업이 관람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면, 그것은 빌 비올라와 같은 작업이 전달해 주는 시각적 쾌와 가슴을 순간적으로 울리는 감동이다.지극히 회화적인 방법을 빌어 그림을 그리듯 작품을 제작하는 빌 비올라의 작업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이다.

죠에오 오노프레(1976년생,리사본 거주)캐스팅,2000,DVD비디오 프로젝션

서로 다른 나라와 지역에서 모인 청년들이 시종일관 똑같은 대사를 반복하도록 고안된 죠에오 오노프레의 영상작업은 똑같은 언어의 대사를 반복하더라도 거기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국어 발음에서 마치 서로 다른 나라 말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유발시킨다.단어를 내뱉는 악셍트가 서로 틀리고 어떤 이에게는 아주 여려운 발음이 어떤이에게는 아주 쉽고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 서로 섞이고 섞여 글로벌 리즘을 말하는 오늘날 언어를 배우고 익혀 서로가 소통되고 서로의 충돌과 갈등이 상쇠되는 것 같지만 인간의 본질속에 남아 나만의 특성을 드러내게 하는 지역주의, 소멸되어져 가는 소수민족의 언어,또 그러한 발음들 , 완전히 동화될 수 없는 어리숙함, 부자연스러움등을 작가는 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치옹 앙(Tiong Ang)(1961년생,암스테르담 거주)학교,1999,디지털비디오인스톨레이션

인도네시아의 치옹 앙(Tiong Ang)은 인도네시아 교육의 비논리적이고 열악함, 그리고 부폐된 현실을 폭로한다.한 초등학교 교실을 영상화한 그의 작품에는 나이든 한 할머니 선생님이 곱게 옷을 차려 입고는 " 원, 투, 드리,.."숫자를 하나씩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따라하도록 한다.큰소리로 한 자씩 소리를 내 지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숫자는 선생님과 주고 받는 하나의 노래처럼 들린다.지리하게 숫자가 반복해서 커지고 나면 고요한 정적과 함께 작가의 카메라는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멈춘다.이 초롱 초롱한 아이들의 미래를 담보로 구태의연한 교육을 일삼고 있는 패기없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한 늙은 여 선생의 흐리멍텅한 눈빛을 대조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타츄미 오리모토,(1946년생,카와사키 거주)아트 마맘,1996-2000,설치

"아트-마마"로 이번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 받은 일본작가 타츄미 오리모토는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예술교육을 마치고 늙은 노모와 함께 예술게임을 시작했다.대단히 외모가 서로 닮은 이 두 모자는 서로 아주 재미있는 사진들을 만들어 냈다.아들은 어머니를 업고 있기도 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만들어준 예술(?)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한다.자기 삶을 진솔하게 대하는 태도가 만들어준 자연스런 삶의 이야기들은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해준다.동양인들에게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행하는 것은 얼마나 덕스러운 일인가? 그의 예술은 효를 행하는 일 인것처럼 읽혀지기도 한다.그러나 그의 작업들은 이런 교훈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작된 것들이 아니다.그의 작업들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삶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일종의 파괴적인 도발이다.그는 서울 행위 예술제에도 참가해 빵을 얼굴에 묶은채로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빵 인간 행위"를 선보인 바 있다.전혀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작가의 자신만만한 삶의 표현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읽어 낼 수 있다.

살라 티케(Salla Tykka,1973년생 헬싱키 거주),라쏘,2000,비디오

한 소녀가 남자 친구의 집을 찾아 벨을 누른다. 벨소리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자,이 소녀는 자신의 친구가 집안에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문을 돌아 뒤뜰로 나있는 거실의 창가로 돌아간다. 거기서 간신히 블라인더 사이로 자신의 남자친구가 유도훈련시 체력단련에 사용하는 라소 줄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아무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줄기차게 줄넘기를 지속하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소녀는 간편한 조깅복 차림으로 지금것 달려와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헐떡이는 호흡으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온다. 얼굴이 벌개 지도록 라쏘 줄넘기에 열중하는 웃통을 벗어재친 사내아이의 몸동작은 인간의 육체가 낼수 있는 모든 힘을 분출하는것처럼 힘차고 거칠다. 거실공간에서 움직이는 이 사내아이의 에너지는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바깥공간에서는 은밀한 소녀의 시선이 블라인더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는 이 묘한 순간은 남과 여의 에너지가 교류하는 신비의 교감을 느끼게 한다. 카메라는 슬며시 이공간을 돌아나와 바닦에 깔려진 잔디들과 아직도 그늘에 녹지 않고 쌓여 있는 하얀눈위로 비쳐진다.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하얀눈위로 그림자지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화면은 서서히 페이드 아웃한다.

한 페이지에 작품설명을 다 담지 못해 다음페이지로 연장합니다.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제날레 2 로 가기

국내 대부분의 월간지 기사에서 혹평에 혹평을 퍼부은 베니스 비엔날레를 필자는 꼼꼼히 집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과연 그들의 비판이 어느정도 정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위해서 쿤스트 포름 156호의 글들을 참조하고 도판을 사용했음을 밝힙닙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2001년 9월호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제날레 1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발행원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홈페이지:http://members.tripod.com/k.pe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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