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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 참고문헌1호 2000년 5월호


참고문헌 1.워홀라에서 드렐라 까지:앤디워홀의 유산( 강태희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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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란 단지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어떻게 이름이 나더라도 명성이란 무조건 좋은 것이 다.1)

나는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있다면 매일 캠벨스프강통을 그 리겠다. 그건 너무 쉬운일이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으니까. 생각하는 일은 도무지 너무나 힘 이 든다.2)

앤디워홀이 타계한지 5년여가 되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살아 남은 사람들은 망자 들에게 관대한 법인가? 그가 죽고 난 뒤 평소의 드높던 악명과는 달리 그가 비밀리에 교회에 다녔고 빈민들을 위해 봉사한 사실이 대서 특필되었다.작가의 생애나 사생활이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단언컨대 여지껏 워홀처럼 평생을 세인의 주목 속에 살다 간 작가는 없었다.그의 유지에 따라 이루어진 골동품과 허접쓰레기가 뒤섞 인 엄청난 양의 수장품의 경매는 다시 한번 그의 명성의 대단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 고, 헐리우드의 대스타 못지 않았던 그의 일생의 대미로 손색이 없는 큰행사가 되었다.

생전에 워홀은 어떤 사람들에게 대단한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었던 반면,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현역의 많은 젊은 미술가들이 그를 가장 중요한 선배작가로 꼽고 있기 도 하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 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작품 이나 작가적인 위상에 대한 평가는 논쟁의 대상이며,또한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그의 미술사적 업적을 정리해 보려는 근자의 학술토론회는 거기서 개진된 의견의 차이와 는 별도로 우선 그런 모임의 성사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그가 중요한 작가라는데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3)그렇다면 워홀 평가에 있어 무엇이 문제인가? 위에 인용된 것은 그 의 일생과 작업방식이나 취향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특유의 언급들이다. 그는 이런 말들을 진심으로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과연 농담조로 미술을 한 것인가? 그는 일각에 서 믿는 것처럼 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이 과대 포장한 엉터리에 불과한가?

워홀이 평생 명성과 부를 좇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그가 남에게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했고,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빈번히 차용했으며, 조수를 고용하여 작업의 상당 부분을 맡겼고, 같은 주제를 무수히 반복하고, 때로는 자신의 사인가지도 남들에게 맡기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는 것 역시 공개된 일들이다. 그는 상업성이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 으며, 작품을 주식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이런 행동을 통해 무엇을 의도했든 간에 (혹은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 있다.

워홀이 제시한 문제점들은 한마디로 미술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가없는 부정과 도전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대게 다음 몇 가지를 그 특성으로 열거 할 수있다 .즉 오리지낼리티의 부 정,작가의 손 수작업( authorship) 이나 기량에의 무관심,반복을 통한 작품의 유일무이성의 부정,그리고 무자비한 상업주의와 출세지상주의 등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술품에 따라 다 니는 천재와 영감이라는 아우라( aura)를 자각의 명성이 발하는 아우라로 대치하였고,고급정 통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부정하고,더 나아가 미술품을 상업시스템에 종속되는 이래 상 품으로 파악, 제시했다.그는 또한 미술가의 위상을 대중적인 스타의 그것과 큰 차이 없이 규 정하였는데,1980년대 미술의 여러 속성들을 예고한 이런 입장은 엘리트 모더니스트나 보수 진영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으로는 그의 이런 태도를 미술의 문화비평적인 기능 또는 현대미술의 전개과정에 대한 반성적인 관심으로 평 가 하기가 힘든데 있다. 다시 말해서 외견상으로는 마르쎌 뒤샹을 필적하거나 도는 능가 하 는 이런 우상타파적인 제스처가 워홀 자신의 미학적인 신념에 근거한 '전위적인'행동이라기 보다는 그어느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 ,소위 '미학적 몰 가치'의 한 방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4)

그럼 워홀은 어떤 배경을 가진 미술가 였는가?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노동 이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하고 병약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어려서부터 유난히 통속적인 의미의 사회명사가 되고 싶어했던 그는 연예인이나 유명작가를 흠모하여 영화배우의 사진을 모으거나 팬클럽에 가입하는등의 특이한 열정을 보였으며,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그의 욕구는 성인 이 되거나 미술가오 성공한 뒤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정통미술과 상업미술의구분을 강조하 지 않았던 피츠버그의 카네기 테크 대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상업 디자이너로서 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그즈음부터 그는 자신에 대한 신화가 쌓이 는 것을 목적으로 나이나 배경등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으며,인터뷰때에는 얘기 꾸미는 것을 일삼았다고 한다.그의 주변 인사들은 한결같이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사 적인 것사이의 괴리르 인정하고 전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해 왔다.5) 도한 자신의 외모에 일생 열등감을 느꼈던 그는 팝 미술가로 알려지기 전에 코를 성형수술 하고 가잘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실은 그의 자전적인 초기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상업미술계에서의 성공 뒤에 그는 팝아트가 대두하는 시점을 계기로 정통미술가로 데뷔하는 데, 그의 작업방법은 상업미술의 테크닉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자신이 만들기보다는 이미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베끼거나 ( tracing) 신문이나 잡지의 이미지를 전사하는 방법을 택했 고, 가능한 한 쉽게 자업하기 위해서 조수를 고용하고 친구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유도했다. 한꺼번에 쉽게, 그리고 대량으로 작업하고자 하는 그가 실크스크린으로 옮아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상업미술의 이미지를 쓰고 또는 그것의 기계적인 테크닉을 사용한 것은 워홀만이 아니었고 사실 이것이 팝아트를 규정하는 특성이므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데, 특이할 것은 그가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는데 남다른 방법을 택했고,처음부터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관심 은 없었다는 점이다.그는 늘 알만한 사람이나 주변인사들에게 무엇을 그릴지를 물었으며, 그의 초기작으로 유명한 캠벨스프나 코카콜라를 그리게 된 동기  그의 방식을 잘 나타내준 다.즉 스프 강통은 친구에게서 돈을 지불하고 아이디어를 산것이고, 코카콜라는 두 개의 가 능성을 두고 일조의 시장조사를 한 결과 택해진 선택이다.6)그는 한때 상업미술가 시절에는 고치라면 고치는대로만 하면 되는 점이 좋았었다고 얘기한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전력이 그의 발상의 근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의 이런 방법을 창의력의 결핍으로 비난했을 때 미술잡지를 보고 아이디어 를 구하는 것이나 남에게 물어보는 것이나 다를것이 무엇이내고 대꾸했는데, 그의 말이 타 당하다 할지라도 그 사실을 어떻게 하든지 숨기려거나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그는 더 나아가 비슷한 아이디어로 더 나은 작품 을 만들기 위해 무명작가의 작업실을 둘러 보았고,예를 들어 프랭크 스텔라에게 들러 작품 을 주문한 것도 가까운 친구에게는 아이디어를 얻기위해 다른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것 이라고 털어 놓았을 정도였다.7)

다음으로 워홀의 특성으로 논의 할 것은 공동작업을 하거나 또는 전적으로 타인에게 맡기는 작업의 익명성이다. 그는 상업미술가 시절부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조수를 고용하였으며, 팝 작가로 알려진 후에도 상업미술을 상당기간 계속하면서 조수에게 많은 일을 맡겼다.그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에서 은퇴를 선언한 후에는 (1965-66)이런 사정은 더욱 심화 되었다고 봐야 한다. 워홀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공장(factory)' 라고 부른 것은 참으로 그 다운 발상인데, 마치 공장의 일관작업을 연상시키는 실크스크린 제작과정에서 정확하게 어디 까지 그가 직접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때 그의 조수 중의 하나가 워홀의 작품들은 자신이 제작한 것이라고 공개하고 그도 이를 수긍한 사실 때문에 수집가들이 작품 반환 요구로 소동을 벌인 것은 그가 스타일이나 수 작업의 개별성 등에 무관심했다는 것을 단적으 로 증명한다.8)

이와 더불어 그가 작품 제작과정에서 생기는 실수나 우연의 효과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 며, 한 동안은 그의 어머니가 작품에 사인을 도맡아 한 사실도 그의 철학을 반영하는 좋은 예이다. 기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유명한 발언과 팝이란 가장 쉬운 일을 하는 것이라 는 정의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논란이 되는 것이 그의 철저한 상업주의와 이에 연관된 도덕성의 시비 이다. 그는 일단 어떤 이미지로 실크스크린을 만들면 그 스크린을 두고두고 써먹으며, 같은 주제를 숫자와 배열방식을 바꿔 가면 배치하여 여러 개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스 크린의 여분의 잉크를 닦아낸 모나리자 이미지가 찍힌 천까지도 작품으로 만들어서 저명한 평론가의 진지한 분석까지 유도한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작품 값을 올리 기 위해 작품의사이즈를 불렸으며, 큰돈을 번 초상화 분야에서도 가장 상업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조수들에게 일정의 할당금을 약속하여 고객유치를 독려 했는가 하면, 심지어는 크레 디트 카드 고객을 향한 판촉선전에도 등장하며"워홀과 함께 신화를 !"이라는 문구로 자신의 작품을 유행상품화 하였다.9)

그는 '공장'시대의 방만한 생활의 후유증으로 총격을 당한 뒤 작업실을 옮기면서 부터는 호 가이기보다는 사업가로 자신을 규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업미술(Business art)은 미술의 다음단계 이다. 나는 상업미술가로 출발하여 사업미술가로 끝을 마치고 싶다. 나는 '미술'이라고 불리는 것을 (또는 무엇이라고 불리든지 간에)한 두에 사업으로 옮겨 갔는데, 나는 미술사업가 또는 사업미술가가 되고 싶었다. 사업에 수완이 있 는 것은 가장 매혹적인 예술의 일종이다.10)

그는 상업미술가로 이름을 얻을 즈음 체코시의 이름인 워홀라( Warhola)에서 끝글자를 떼 어 버려 노동이민 출신의 배경과 결별하는 변신을 꾀했고, 팝작가로 명성을 얻었을 때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드렐라(Drella :드라큘라와 신데렐라의 합성어)로 통할만큼 패션과 미술계 의 신데렐라로 군림했으며, 사업미술가로 자처했을 때는 조수들로부터 보스라고 불리었다. 결국 이런 사업미술은 그의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하는 골간이 된 것이다. 그는 미술품을 '순 수한 '상품으로 취급했고, 그것도 미술품이 일종의 신분과시용의 상품으로 변질하게 되는 보 드리야 식의 교환가치를 지닌 사인으로 인식했다. 물론 이러한 철저한 상업주의는 비판진영 의 주된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 예를 들어 타락하고 결국은 몰락한 이란 왕가와의 유착은 그의 도덕성에 대한 심각한 비판을 야기 시키기도 하였다.

워홀은 뒤샹을 존경했지만 뒤샹식 의 미술비판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의 파괴적인 생활태도는 허무적이고 위험스러운 것으 로 비판받기도 했는데, 그의 이러한 미술에 대한 "무 신념"은 1970년대 말에 제작된 <산화 그림 Oxidation Painting> 에 단적으로 나타난다. 원래 <오줌 그림>으로 명명되었던 이 그 림들은 물감에 금속가루를 섞어 칠한 캔버스에 오줌을 갈김으로써 재작된 것으로 미술사적 으로는 폴록의 액션 페인팅이나 추상표현주의 회화 전반에 대한 패러디가 된다.11)이 작품 은 위에 언급한 모나리자 그림과 함께 그의 미학적 몰가치를 나타내주는 단적이고 극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워홀 평가가 쉽지 않은 이유를 납득하고 동시에 적지 않은 의문과 회의에 직면하게 된다. 미술이라는 창조적 작업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이런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정말 형편없는 엉터리가 아닌가? 이미 밝힌 대로 그를 실제 로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각자그이 판단에 맡기는 수 밖에 없는데,그 대답은 또한 현대미술이 제기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한 우리들각자의 나 름대로의 평가와 연관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워홀의 이러한 측면의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의미술을 '사기극'으로 속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우선 오리지낼리티의 부정에 관한 것으로 한가지 고려 해야 할 것은 많은 미술가들이 선배나 동료 작가들의 작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으며, 실제로 서로의 작 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독창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하는 것은 명확하게 규명하기 가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어떤 아이디어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온 전히 워홀의 선택이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작품의 익명성의 강조나 상업시스템의 이용,치부 등의 문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뒤샹, 여타 팝 작품들, 또는 미니멀 등에서 이미 다루어졌거나 또는 워홀과 거의 동시에 제기 되었던 것들이다. 더욱 특기할 것은 그의 이런 유산이 1980년대 이후의 미술에서 중요하게 모방, 또는 참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사의 문맥에서 보았을 때 캠벨스프는 재스퍼 존스의 유명한 <채색된 브론즈>(1960)에 대한 언급이며, 코카콜라는 워홀이 더욱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던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콜라 병을 이용한 코카콜라 풀랜(1958)과 연관 이있다. 이것이 워홀 자신의 두 선배 작가의 작품 에 대한 대응이었다면 ,지금 현재 오리지낼리티와 차용의 이슈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셰리 레빈 이나 마이크 비들로, 제프쿤스 등은 바로 이러한 워홀의 유산을 재검증하고 있는 작가 들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워홀은 뒤샹이 일용품을 가지 고 문맥을 바꾸어 미술품으로서의 통과제의에 도전한 이래 가장 노골적으로 독창성과 개성, 수작업, 스타일, 또는 상업성의문제를 공략한 작가가 될 것이다.

<산화 그림>이 미술에 속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현대미술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곤혹 스럽게 만드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 제작과정을 모른다면 더욱 그러하고, 혹은 알더라도 그 에 관계 없이,이를 미술품이 아니라고 하기는 힘들다. 미술의 영역이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 현대미술에서는 그 경계를 묻는 일 자체가 미술 작품이 되기도 하며, 이미 어떤 작품의 외 양이나 제작방식이 미술, 비 미술을 결정짓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 를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미술품이 제시된 그 문맥, 즉 미술관이나 전시장 또는 미술잡지 등의 제도적 환경이 관건이 라는 시각이 제시된 것도 이미 근 20년 전의 일이다.12)어떤 작 품이 기존의 테두리를 벗어나면서 대두되면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질 것이며 이런 개념의 확장이 현대미술가들이 해온 일이라면 워홀 역시 이일을 했으며 ,그가 우리를 혼란시키는 그만큼 우리는 더욱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껏 내가 그려온 워홀의 이미지가 악마의 그것이라는데 모자람이 없다면 마지막으 로 한가지 더 보탤 것이 있다. 그는 사후에 대부분의 유산을 미술계로 환원되도록 조처했으 며, 그의 유지에 따라 이미 그 수혜자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이 이같은 결정을 미술에 대한 그의 최종적인 신념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공은 우리들에게 돌아와 있 다.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예술가에 대한 개념은 반고호 같은 근대적 인간상이다.예술가는 항상 고뇌에 잠겨 있으며 그는 돈대신 예술을 택하고 빵을 사는 것보다 물감을 사는 것을 우선으로하는 고집스러운 인간이다.그는 예술에 관하여 처절하게 고민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때로는 광적이고 정신병환자처럼 보통사람과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이즈음 되면 하나의 종교가 가지는 도그마와 우리시대의 예술가들을 매료 시킬만한 설득력을 파괴력을 가지게된다.누군가 그의 예술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서 자신이 서명만하고 내다 팔았다고 한다면 이보다 더한 사기 행각이 어디 있겠는가?예술가는 개성이 가득한 고뇌의 상징인 예술품이 돈이라는 저속한 가치와 맞바뀐다고 하는 것 자체도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의 독창성을 가늠지을 예술품자체도 그의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의문스러운것이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다른 참고문헌 찾아보기

다섯번째 주요요소 돈이냐 예술이냐?전시의 카타로그 ,Das fuenfte Element-Geld oder Kunst.jan.2000,dunont.(독문)

juergen raap,Kunst forum international 149 호 ,테마 -돈의 운명,중에서 mony makes the world go round( 돈이 세상을 돌린다.).(독문)

juergen raap예술과 자본(kunst und Kapital),.(독문)

마사로즐러,구경꾼 그리고 구매자 화상 그리고 제작자-관객에 대한 생각들,시각과 언어,1998년 이영철이엮은 현대미술지형도의 444-478 페이지. (국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토론발제물 1호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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