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your own free website on Tripod.com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메일메거진 14호 2001년 04월호


다른 모습의 나. 20세기 말의 예술

Ich ist etwas Anderes Kunst am Ende des 20. Jahrhunderts

세번째호

뒤쎌도르프 쿤스트 잠물룽에서

유우숙(뒤쎌도르프대 미술사.)

*옆의 그림을 클릭하면 뒤쎌 도르프 쿤스트 잠물룽으로 연결됩니다.

 

3) 크리스티안 볼탄스키 (Christian Boltanski) 의 소유물품들 (Inventare)

1944년 프랑스 Paris에서 유태인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1986년 Biennale Venedig, 1987년 dokumenta 8.출품, 현재 Paris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1973년에 볼탄스키는 새로운 전시계획과 그 전시를 실현시키기 위한 협조를 부탁하는 한 장의 편지쓰고 그것을 복사해서 62군데의 자연과학 박물관과 몇몇의 미술관에 보냈다. " 어느 한사람이 그의 생전에 소유하고 사용했던, 그러나 그의 사망후에는 그 사람이 존재했었음을 알려주는 그의 모든 소유품들을 귀하의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물건들은 유리진열장 안에 전시될 것이며, 상세한 품목표시를 붙일 것입니다." 두달 후 Kunsthalle Baden-Baden에서 위의 편지처럼 볼탄스키가 계획했던 전시는 현실화되었으며, 그 도시에 살았던 한 여인의 소유물품들이 전시되었다. 가구, 부엌 조리기구들, 옷들, 사진들, 책들이며 온갖 잡동산 물건들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전시되기보다는, 마치 자연과학 박물관이나 고고학 박물관에서 학문적으로 기록이 되는 자료와 같은 차원에서 하나하나 나열되어 전시되어 졌으며, 전시된 물품들은 모두 하나씩 사진 찍혀져서 물품목록으로 비치되어 졌다. 그 이후 볼탄스키는 기회가 되면 반복해서 이러한 전시를 계속했다.

이렇게 전시되어진 물품들이 지녔던 사용가치는 소유자의 죽음과 함께 거의 사라져 버렸고, 그저 관찰의 대상으로 바뀌어졌다. 비록 몇몇의 물건들이 소유했던 사람의 흔적을 띄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흔적들은 자료 보고적으로 나열된 물품들의 홍수 속으로 사라진다. 또한 이 물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각 개인의 사적인 기억들을 생각나게도 한다. 이렇게 설치된 공간을, 전시된 물품들을 대하면서 관객 자신은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볼탄스키는 흔적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흔적을 창조해 내며, 삶도 만들어 낸다."고 볼탄스키를 잘 아는 비평가 G nter Metken은 그의 작품을 평가했다.

   

4) 유르겐 클라우케 (J rgen Klauke )의 사회적-정신적인 과정들의 거울속에 비쳐진 인간표정 (Das menschliche Antlitz im Spiegel soziologisch-nerv ser Prozesse)

1943년 독일의 코헴에서 태어났으며, 1977년의 dokumenta 6, 1980년에 Biennale Venedig, 1987년에 dokumenta 8에 출품했으며 쾰른에서 작업하며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976/77년에 제작된, 열두 장으로 구성된 클라우케의 자화상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각 사진들의 머리 윗 부분에는 각기 다른 직업이랄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표제로 쓰여있다: 위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내려가면 판사, 작가, 공무원, 무정부주의자, 군인, 살인자, 경찰, 호모, 성직자, 중독자, 목사, 백치 등을 기록했다. 모든 관객은 얼굴사진의 인상과 그 위의 표제를 보면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는 인상과 맞는지 틀리는 지를 하나 하나씩 머리 속에서 이미 비교했거나 하려고 시도해 본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작품은 단지 두 개의 사진만을 가지고 - 즉 웃는 모습과 인상을 쓴 모습 - 서로 번갈아 가며 구성 되어있다.

   

5)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의 Palazzo Regale

1921년 독일의 크레펠트에서 태어나 1964년부터 1987년까지 dokumenta 3-8까지 출품. 1986년 뒤셀도르프에서 사망했다. 보이스는1971년 자신이 늘 입는 옷차림의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포스터(191x102cm, 120개)를 만들었고, 그 위에 서명을 했다. 보이는 바와 같이 모자, 낚시용 조끼, 청바지, 그리고 부츠를 착용한 그는 한 건물에서 나와서 자신있게 앞으로 걷는 모습이며 포스터의 하단부분에 그의 서명과 "우리는 혁명"이라고 이탈리아어로 표기했다. 이렇게 전진하는 모습의 사진과 표어로 그는 스스로를 선구자 또는 개척자로 분명하게 제시하며, 사회와 주체성의 변화를 추구하는 그의 목표를 향한 그의 전진에 관객으로 하여금 잠재적으로 동행하게 한다. 이것을 통해서 그는 자아(das Ich)와 이 자아로서 사회를 새롭게 개편하려고 하던 그의 목표를 설명하고 있다. 이 완벽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목표가 도달되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의 당당한 등장과 자신의 언어와 행동 등으로, 평범한 사고과정을 깨뜨리는 지휘자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서 인간 보이스 뿐 만이 아닌 그의 복장들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항상 그가 착용했던 복장뿐만이 아닌, 그의 오브제인 "펠트양복(Filzanzug-1970, 100개)"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양복을 본으로 재단을 했고 팔과 다리는 더 길게 만들어 졌으며, 단추와 단추 구멍이며 단의 처리 등은 생략했다. 왼쪽 가슴호주머니에 거의 보일락말락하게 "주전류(Hauptstrom)"란 도장이 찍혀있다. 1971년 10월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행해졌던 행위예술 action the dead mouse/ Isolation Unit 때에 겨우 한번 보이스가 입었었을 뿐, 그 이후로 이 양복은 빈 껍질로서 옷걸이에 걸려있다. 이것은 입기 위해서 만들어진 옷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펠트로 만들어진 오브제인 것이다. "이 양복은 한번은 인간을 외부인 들로부터 차단해주는 집 또는 동굴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양복은 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의 격리를 표시한다.

이세대의 다른 어느 작가 못지않게 보이스도 우리의 물질사회를 분석하고 비평해왔다. 예술작품들 만을 통해서 만은 어느 사회도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문제해결을 위해 자신 스스로를 바치기로 일찌감치 결정을 했다. 그는 다른 문화적이고 시대적인 관련성들에 기인한 행동표준에 자신을 동화시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데, 혁명가뿐이 아닌 양치는 목동, 무당 등으로 자신을 동화시킨다.

60년대에 제작된 그의 드로잉 속에서 이미 무당의 형상을 볼 수 있다. 많은 아시아의 나라들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낮은 계층에서 였지만 미국의 문화 속에도 무당이 있었으며, 이 무당들은 병을 낫게 하고, 나쁜귀신을 쫒고, 죽은 사람의 영혼과의 접촉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64년에 제작된 무당이란 제목의 드로잉 뒷면에 "요셉 보이스 무당"이라고 서명함으로서 그는 스스로를 무당으로 인정하면서 그에게 다른 정체성을 부여한다. "오래된 무당들의 형태를 나는 미래의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렸다. 왜냐하면 무당은 물질적이면서 정신적인 것을 하나로 연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나는 이 그림 속에서 표현하려고 했다. 만일 우리가 이 물질주의의 시대에 이 형태를 제시한다면 우리는 뭔가 미래적인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보이스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양치는 목동 또한 양들을 초장으로 이끌고,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돌보는 점에 있어서는 무당과 같다고 볼 수 있다 1973년에 보이스는 자신의 초상화를 양치기 목동으로 그렸다. 짧고 불안한 선으로 삼각형의 조그만 종이 위에 얼굴을 그렸는데, 눈, 코 그리고 밑으로 사라지는 듯 한 입을 알아볼 수 있다. 흰 바탕의 역삼각형 얼굴윤곽을 고동색으로 처리했으며 이 그림은 고동색십자가로 바탕이 칠해진 그림의 가운데에 붙여졌다.

보이스는 처음부터 그의 삶과 작품을 하나로 해석해왔다. 그는 1964년 "이력서/작품이력(Lebenslauf/Werklauf)"라는 책자를 만듦으로 해서 이러한 그의 생각을 기록했다. 1921년 자신의 출생을 그는 "Ausstellung einer mit Heftpflaster zusammengezogene Wunde-반창고로 집중된 상처의 전시"라고 기록했다. 그 은밀한 출생과정은 공공행사, 즉 전시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인간 요셉 보이스, 그의 사고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이렇게 강하고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외에도 그의 마지막 전시였던 Palazzo Regale이라는 설치작품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1985년 12월 23일, 정확히 그가 죽기 4주전에 이태리 Neapel의 Museo di Capodimonte에서 이 전시가 열렸다. 너비 7미터 50, 길이 16미터가 되는 공간엔 그리 많지 않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이 설치 전은 그의 이력과 작품의 이력을 총괄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여는 작품이었다. 이후에 Kunstsammlug 은 Nordrhein-Westfalen주의 후원으로 이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Neapel의 전시공간과 흡사한 공간을 만들어 이 작품을 재 설치했다.

약간 길쭉한 공간에 두 개의 진열장이 놓여있고, 벽에는 일곱 개의 도금된 황동판 액자들이 걸려있다. 황동과 유리로 구성된 진열장안엔 보이스의 삶을 대신해주는 물건들이 하나하나 잘 정돈된 상태로 놓여있다. 한 진열장 안에는 파란 실크로 안을 댄 여우털 코트, 심벌즈, 무쇠로 뜬 입을 벌린 두상 그리고 큰 소라가 들어 있다. 이 진열장 안의 화려한 색상과 귀한 소재들에 반해 다른 진열장에 진열된 것들은 초라하고 더러운 듯하게 보인다: 배낭, 두 개의 동으로 된 지팡이, 세 덩어리의 말린 고기 그리고 두 개의 강한 전류용 집게가 꽂힌 동으로 된 긴 형태. 마치 무덤의 수장품처럼 이 전시 공간에 전시된 이 물건들은 모두 보이스의 생활과 작업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여우털 코트는 1969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행해진 행위예술 "Iphigenie/Titus Andronicus"에서 착용을 했으며, 심벌즈와 큰 소라도 그때에 사용되어 졌었다. 고통에 못이겨 입을 벌린 두상의 목 부위에는 노란색의 십자가가 표시되어져 있는데, 이 두상은 1976년 Biennale Venedig에 참석했을 때, 그의 작품이었던 "전철 정류장(Stra enbahnhaltestelle I)"을 위해서 제작되어진 것중의 하나. 보이스는 그 형상이 니더라인(Niederrhein) 지방출신의 남작 클로츠(Cloots; Gnadental b. Kleve 1755 - Paris 1774)라는 사람의 초상과 거의 흡사하다고 생각하고 그 형상을 그 남작과 동일시한다. 남작 클로츠는 자신을 무정부주의자임을 표명하고, 프랑스 혁명당시에 귀족과 교회의 세력에 억매인 인권의 자유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의 풍부한 어휘력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그는 비록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지만, 그는 이성의 막대한 힘을 증명했을 뿐만이 아니라 비범한 사고로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사실은 보이스로 하여금 그와 자신을 동등시 한 계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진열장속의 배낭, 지팡이, 말린 고기덩어리, 기름 덩어리등은 방랑자를 암시 해주며, 그 방랑자는 거기에 자신의 중요한 물건들을 내려놓고 갔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배낭은 보이스가 1978년에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죠지 마큐나를 회상하며" 란 제목하에 백남준과 함께 피아노연주를 할 때 사용된 것으로 간주되며, 지팡이는 이 연주회에서만이 아닌, 그 전에 행해졌던 행위예술(1971, Celtic, Basel/ 1974,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 Galerie Rene Block, New York)에서 물건을 끌어당기거나 서로 연결하기 위한 도구로 이미 사용되어 졌었다. 한 지팡이는 펠트로 부분이 말려져 있다. 기름 덩어리는 열을 가함으로 단단한 형체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무형의 물질에서 형태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특성으로 보이스를 언제나 매료시킨 재료들이다.

*이글은 4회로 나뉘어서 연재될 예정입니다.그 중 세번째 호를 보내 드립니다.

지난 첫번째호 보기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유우숙 (뒤쎌도르프대 미술사)-이글은 "Ich ist etwas anderes "전시의 카타로그를 편역한 것입니다.이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글쓴이의 허락없이 무단복제나 상업적인 목적의 사용을 금합니다.


독일의 현대미술여행 메일메거진 14호 2001년 04월호

독일의 현대미술여행은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소식을 전해 드립니다.회원등록을 하시면 전시와 관련해서 혹은 현대미술관련 여러가지 테마의 발제,그리고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등 다체로운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